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좋은 음악’ 이란

유준재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생)

by SNUDH

히사이시 조는 일본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드는 영화 대부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영화음악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다. <이웃집 토토로 (1988)>부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벼랑 위의 포뇨 (2008)>, 작년에 개봉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까지.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 히사이시 조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그가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와 나눈 대화가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 담긴 그의 음악 철학과 취향을 한번 살펴보자.


음악적으로 순수한 음악

96호 병원보 33.JPG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 1988년 ©Ghibli studio


96호 병원보 34.JPG 2023년 발매된 히사이시 조의 지브리 OST 앨범 ©Ghibli studio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음악에는 어떠한 감정이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테마가 확실해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노래를 더 편안하게 여긴다. 그러나 히사이시 조의 취향은 이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는 감정이나 의식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음악보다는 음악적인 요소 그 자체에 집중한 음악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감정에 기반한 작곡은 특정한 계기가 있을 때는 가능하지만,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작곡가로선 영감이 찾아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할 수가 없다. 이때 음악의 구조화를 추구하고, 음악적인 요소를 결합하고 구체화해 나가면 지속적으로 많은 곡을 만들 수 있다. 그에게 작곡이란 한정된 음을 재료로 하여 음악이라는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건축과도 같은 과정이다.


건축가들도 영감에 따라 건물을 지을 때가 있지만, 보통은 건축 요소 자체에 집중하여 집을 쌓아 올리지 않는가? 이렇게 음악적으로 순수하게 만든 음악은 뇌를 방해하지 않는다. 감정이 과잉된 시끄러운 음악도 아니고, 메시지로 가득 차서 듣기에 부담스러운 음악도 아니다. 그저 음악 그 자체일 뿐이다.


나선형의 음악

96호 병원보 35.JPG 오케스트라 앞에서 지휘하고 있는 히사이시 조 ©LA Phil
96호 병원보 36.JPG ©Omar Cruz

리듬을 시각화하면 아마 나선 모양이 나올 것이다.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성질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히사이시 조가 20대 때 심취해 있던 ‘미니멀 뮤직’이다. 이 음악 장르는 하나의 음형을 끝없이 반복하는 게 특징인데, 중간에 약간의 변주와 왜곡을 주면서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원래의 음형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니멀 뮤직은 클래식 음악의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은 발전을 끝없이 거듭한 탓에 결국 20세기에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음이 너무 많이 쌓여서 악보는 음표로 뒤덮였고, 리듬도 조성도 없이 불협화음 범벅인 음악마저 등장했다. 미니멀 뮤직은 이런 흐름에 반하여 조성도 있고 리듬도 중요시하는 민족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 민족 음악은 단순한 리듬 안에서 비슷한 음형을 끝없이 반복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근원적인 음악이다.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극단적으로 원초적이지만 그렇기에 제약 또한 없는 음악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니멀 뮤직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예술적이긴 하지만 사회적인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은 결국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 점은 음악으로서 다소 치명적인 단점이다. 히사이시 조는 일반인들이 들어줄 음악이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에는 대중음악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미니멀 뮤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보인다. 그의 미련을 엿보고 싶다면 <Sinfonia for Chamber Orchestra: I. Pulsation>을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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