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에 부처님 사리 없다(6)

- Episode 6 부처님의 사리는 8 과가 수습되었다 -

by 뜨레스

- Episode 6 부처님의 사리는 8 과가 수습되었다 -


부처님 다비식 후 기대했던 것보다 적은 수의 사리가 수습되면서 진신사리 쟁탈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대반열반경 Mahāparinibbāna Sutta에 나타나 있으며 8 부족 + 1 바라문 + 1차 탑건립단체까지 쟁탈전이 있었고,

이를 도나가 “공평 분배” 로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7일 오전 11_26_29.png 부처의 다비식 후 수습된 사리 8과


그런데 부처님 진신사리(진신사리 봉안처)가 모셔져 있다는 ‘오대 적멸보궁(五大 寂滅寶宮)’은 총 5곳이다.

그렇다면 위 북인도 8 부족들이 약 2,500년 전부터 보관해 왔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북인도 봉안처 5곳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긴가?

그것도 총 8과 중 5 과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가져왔다는 부처의 진신사리 100과?

그럼 조선 초기 조선 사찰을 탈탈 털어 명나라에 보낸 조선의 사리 1,665과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신발끈 단단히 묶고 부처님의 진신사리의 행방을 찾아 신라 27대 왕 선덕여왕(善德女王)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 당시 신라는 당나라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로 당나라(唐, 618–907)는 수나라 멸망 후 이연(李淵)이 건국한 동아시아의 정치·군사·문화 초강대국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동아시아 문명권의 ‘세계적 중심’이었고, 불교는 그 시대 정신문화의 중심축으로서 절정의 철학, 경전, 교단체계를 확립한 막강한 나라가 바로 당나라였으므로 신라의 스님들은 당나라로 유학을 많이 갔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 당나라로 유학한 스님은 자장율사(통도사 창건)와 의상대사(부석사 창건), 원효대사 등이다.

자장율사(590~658)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당시 당태종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 왔다는 기록이 전해지나 이는 황제 태종이 준 것이 아니고 자장이 공부하던 오대산 문수보살이 준 것이다.


조선의 실록과 같은 당나라 기록물인 구당서, 신당서 어디에도 황제가 자장에게 부처님 진신사리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고려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는 자장이 귀국할 때 “당 황제가 내린 것(唐帝所賜)”은 ‘경(불경), 상(불상), 가사(법의)·비백(비단)이라고 분명히 구분하고, 사리 100粒은 ‘오대산에서 받은 것(五臺所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시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은 부처의 지혜의 몸(법신)을 대신하여 주재하는 보살로 유명한 승려로 당나라에서는 부처를 대신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문수보살이 준 사리라면 진신사리와 진배없다는 논리이다.

이 정도의 당시 기록만으로도 자장율사가 얻어 왔다는 부처님 진신사리 100과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 당시 신라의 유명한 스님이었던 자장율사(慈藏律師)에 대하여 삼국유사와 해동고승전 기록을 토대로 역산해 보면 자장율사는 서기 590년도에 출생하였고 40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는데 당시 자장율사의 체류지를 기록에서 찾아보면 아래 3곳이다.

1차 체류지 — 당(唐) 장안에서 계율과 교학을 배우고, 문수신앙 접 (수학)

2차 체류지 — 오대산(五臺山)에서 수행,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불교성지(수행)

3차 체류지 — 인도(서인도 또는 중인도 권역) 순례. 부처 사리와 불교성지 참배 (관광)

자장율사는 2차 체류지인 오대산에서 불경을 수학하고 귀국하면서 이곳 문수보살에게 사리 100 과를 얻어 신라로 돌아와 통도사를 창건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장율사가 얻어 왔다는 사리는 부처님 진신사라가 아니고 아쇼카 왕이 약 2.300년 전에 분신사리한 상징적인 숫자 84,000개 중 100과 아니면 누군지 모를 고승의 사리 100과일 확률이 크다.

자장율사의 진신사리 100과는 한국 사리 성역화의 시원(始原)으로 서사적 근거로 쓰여온 이야기일 뿐인데도 이들은 오대산 상원사·설악산 봉정암·사자산 법흥사·태백산 정암사·지리산 대화사의 적멸보궁에 지금도 부처 님의 진신사리가 실재한다는 믿음 아래 통도사는 불상조차 모시지 않은 채 절하게 하고 있으니, 이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의심 없이 전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결과로 이를 사실로 믿는 불교신자들만 변함없는 든든한 물주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4일 오후 02_28_51.png 자장율사

-Episode7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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