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아쇼카 왕 -
-Episode 7 아쇼카 왕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이 바로 부처의 열반 200년 후에 나타난 아쇼카 왕이다.
아쇼카(Aśoka) 왕은 고대 인도 마우리아(Maurya) 왕조의 제3대 왕(재위 약 BC 268~232)으로 인도 역사상 최초의 ‘불교국가적 통치’를 실현한 왕으로 평가된다.
아쇼카왕은 남아 있던 사리들을 다시 수습하여 이를 84,000개의 탑(Stupa)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하여 그때부터 부처의 사리는 84,000개가 된다. 부처님 사리가 84,000개가 아니라 봉안탑이 84,000개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부처님 사리수가 84,000개라고 우기는 계기가 된다.
더구나 84,000란 실제 숫자라기보다 인도 불전의 상징수로 인도 불교문헌에서 84,000은 “한량없는 가르침” “온 세상 곳곳에 두루 퍼짐” “불법의 총수(불교 전체 가르침)”를 상징하는 상징수(象徵數)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어느 전승에서는 아쇼카 왕이 8과 사리를 전부 분쇄하여 84,000개의 사리탑에 봉안했다는 주장도 얼핏 보인다. 상당부분 발칙한 생각이다.
수습되는 사리 1과의 크기는 쌀 한 톨 내지 콩 한 알 크기가 일반적이고 평균 무게는 0.05g 정도다.
0.05g x 8 = 0.4g 진신사리 8과의 총무게는 0. 4g
0.4g의 사리를 84,000개로 나누면 1과의 무게는 0.0000047619g이다.
이 무게는 먼지보다 가벼워 분쇄하는 과정에서 전부(날아가버림) 소실된다. 따라서 분쇄를 주장하는 전승의 기록은 발칙한 생각이긴 하나 설득력은 전혀 없어 보인다.
정리해 보면, 아쇼카의 84,000 사리·사리탑 이야기는 실제 역사적 숫자라기보다, 부처의 사리를 온 세계에 ‘분신’하여 전법과 일치·통합을 구현하려 했다는 불교적·정치적 선언을 수치로 상징화한 전승이다.
더구나 당시 아쇼카 왕이 분신사리한 사리탑 84,000곳(상징적 숫자)중 현재까지 보전 중인 곳은 아래 5곳 정도이고 이마저 대부분 방치된 상태라고 한다.
1. 산치(Sanchi)
2. 사르나트(Sarnath) 담마라지카 스투파
3. 람그람(Lamagrama) 스투파 전승
4. 보드가야(Bodhgaya) 주변 유적 일부
5. 아쇼카 석주(Edicts) 부근 스투파 잔해들
그럼에도 얼마 전 한 tv 프로에서 통통한 스님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 부처님은 온몸이 사리였다. 그래서 다비식 후 나온 사리수는 84,000개다" 8 과가 84,000 과가 되는 공중파에서의 설법이다.
사리수가 스님의 도량을 측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왜 부처님의 8과 사리를 84,000개라고 어마무시하게 늘려 주장하는 것인가?
궁금하다. 정말 통통한 스님은 부처님 다비 후 수습된 사리가 84,000개라고 믿는 것일까?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검증이 어렵겠지만,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몰라도 통도사에 봉안 중이라는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는 얼마든지 검증이 가능할 텐데 어떻게 공중파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 통통하게 놀랍다.
그렇다면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글의 제목 "적별보궁에 부처님 사리 없다"라는 주장의 근원을 찾아 이번에는 조선태종실록을 뒤져보러 서둘러 떠난다.
-Episode 8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