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 자동차
아버지 몸에는 총상에 의한 흉터가 많다.
전쟁 중, 적의 총탄이 가슴 끝을 관통한 자리는 지금도 선명하다.
종다리와 허벅지에는 수류탄 파편으로 움푹 파인 깊은 흉터도 있다.
특히 6. 25. 전쟁 중 강원도 철원 북쪽에 위치한 도솔산은 전략적 요충지로,
미 해병이 수 주일 동안 공격했음에도 탈환하지 못하고 철수하자,
이어서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도솔산 전투를 맡게 되었고,
제1연대 소속이셨던 아버지도 도솔산 탈환을 위해 전투에 참여 하셨다.
중대장 명령에 따라 칠흑 같은 야음을 틈타 팬티 한 장만 달랑 입고,
칼빈총에 대검을 착검하고 적진에 침투하여,
손으로 더듬어 옷을 입고 있으면 대검으로 찌르는
전쟁 역사에 전무후무한 전투를 벌여 결국 도솔산을 탈환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잠기고
듣고 있던 나도 눈 앞이 흐려진다.
이때부터 미국 여자 종군기자에 의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 전사자는 200여 명이고 적군 사망자는 2,500명이라고 한다.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그 치열했던 전투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불과 열여덟 살의 꽃다운 나이에 적과 직접 백병전을 벌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지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병약한 아버지와는 도무지 겹쳐지지 않아 더욱 숙연해진다.
나는 오래전에 자동차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LPG 차를 사려고 했다,
당시에 LPG를 연료로 하는 자동차 구입은 장애자와 국가유공자만 가능했기에
나도 LPG 차량으로 구매하고자 하였으나 국가유공자라 해도 상이 등급이 없으면 구입이 안된다고 하여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국가유공자가 상이등급이 있으면 장애자인데 마치 국가유공자 누구도 가능한 것처럼 홍보하는 정책이 못마땅 했다.
한 날 볼멘소리로 여쭈었다.
"아버지는 깊은 상처가 많으신데 왜 상이등급이 없어요?"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산 정상에 매복해 있다가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사격하다 보면,
적의 포탄에 좌, 우측 전우가 온몸이 찢겨 죽어나가고,
이성을 잃은 기관단총 사수였던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도주하는 적을 향해 총신이 벌게지도록 사격을 하곤 했다"고 한다.
마치 전쟁 영화 한 장면 그대로다.
당시에 같이 훈련받고 생활해 왔던 동료와 함께 전사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해 잠 못 들 정도로 죄스러웠다고도 하신다.
상처 치료만 받고 움직일 수 있으면 다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고 하고
상이등급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고, 설사 알았다 해도 먼저 간 동료 미안해서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란다.
물어본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한솥밥을 먹고 함께 잠들고 다음날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하신 열여덟 살 해병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라 먹먹해진다.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젊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셨던 그 당시 분위기를 아버지를 통해 조금이라도 느껴 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인대 지금 대한민국은 어찌 되고 있는 것인가?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