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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소니아 Feb 15. 2024

오사카에서의 첫 아침

일본여행 16일차(2024.01.30.화)/나 자신에 대한 정의/어른

I. 아침

  1. 조식

 내가 숙박하고 있는 '신사이바시 그랜드호텔 오사카'의 조식은 뷔페식이라고 설명되어 있어 매우 기대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08시 30분쯤 기상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확실히 뷔페식이라 넓기도 했고 앞에서 조식 식권을 직원분께 드리고 식판을 받고 들어갔다. 아주 기대했으나 야채를 거의 안먹는 나에게는 야채류가 너무 많아서 슬펐다. 그래도 가라아게, 구운 소시지, 반숙 계란후라이, 빵이 있어서 다행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소스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찍어 먹기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 어제 교토숙소에 매일을 보냈던 것처럼 12시~13시 사이에 교토로 간다고 했기 때문에 1시간 정도는 숙소에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 다시 교토

 교토에 있던 숙소(오미야 역)에서 왔던 길이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구글맵으로 길찾기를 하지 않고도 갈 수 있었다. 다시 가는 길이 좀 짜증나고 귀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교토의 숙소에서 놓고와서 다행이지 후쿠오카 숙소였으면 돌이킬수도 없었다라는 생각을 하며 어느정도의 정신승리도 했다. 내가 숙박했던 교토숙소에 들어가서 놓고간 여권케이스를 받고 나왔다. 내가 점심을 먹지 못하기도 했고 마침 13시정도라 교토에서 항상 첫끼를 먹고 시작했던 마츠야에 가서 규동을 먹었다. 이 시간때에 근무하던 여성 직원분의 목소리가 아주 청량한건 여전했다. 잡음 속에서도 귀를 뚫고 오는 여성 직원분의 청량함. 이 분이 젊었을 때 가수의 길을 걸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II. 탐방

  1. 이바라키시역

 오늘은 대학 탐방을 하기로 마음 먹고 오사카 대학 가는 길을 검색해봤다. 오사카 대학은 오미야 역에서 이바라키시 역까지 간 뒤, 이바라키시 역에서 서쪽 출구로 나와 50108이라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이바라카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 갔는데 구글 맵에서 출발 예정 시각과 정류장이 가리키는 곳에 50108번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가 서있었다. 다른 버스를 타야하나 생각했으나 그 버스의 주요 노선도에 오사카 대학이 적혀있어 구글맵에 적혀있는 출발 예정 시각, 가리키는 정류장이 일치하는 점을 종합해서 믿져야 본전 식으로 탑승했다. 결국 그 버스는 오사카대학병원까지 갔다. 오사카대학병원은 약간 특이했다. 내가 한국에서 봤던 대학병원들은 보통 도시에 따로 독립되어 있었는데 오사카대학병원은 오사카대학의대 바로 앞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이라 신기했다.


  2. 오사카대학(大阪大学)

 오사카 대학병원을 가로 질러 오사카 대학 탐방을 시작했다. 오사카 대학은 대학 안에 호수와 그 호수를 가로 지르는 다리가 숲 속에 있다는 것이였다. 

 대학 안에 숲이 있는 경험은 매우 신선했다.

 또 오사카 대학은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가 도로와 건물들이 모두 세련되어 있으면서도 옆에 산이였던 것의 일부로 보이는 언덕과 나무들이 항상 도로와 함께했다. 어떻게 보면 대학 안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 대학이 있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사카 대학의 정문으로 가기 위해 나는 오사카 대학 의대를 시작으로 사이버미디어 센터 메인홀, 이누카이이케, 대학 내 버스정류장, 정보과학 기술 대학원, 컨벤션 센터를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학생들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체대 학생들은 운동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책을 펴서 공부 혹은 과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보였다.

 그렇게 오사카대학 정문까지 왔다.


3. 간사이대학(関西大学)

     (1) 가는 길

 오사카 대학 정문에서 간사이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는 센리반파 공원 속을 지나 중간에 빠져나온 뒤, 야마다 역에서 기차를 타야했다. 센리반파 공원을 약 30분 정도 걸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을 별로 없었고 차들만이 많이 지나다녔다.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여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야마다역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먼저 갔다가 로손에서 내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먹었다. 이 빵은 정말 귀국한 뒤에 계속 생각날 것 같다.


 (2) 간사이대학 탐방

야마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간다이마에 역에서 내리자 계단에 간사이 대학 길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고 북동쪽으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바로 앞에 서쪽 입구가 있었다. 서쪽 입구에서 올라가다보니 여기서도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꽤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일반 계단 바로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나도 대학 다니면서 캠퍼스 내에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었는데 간사이 대학은 한펀 올라오면 그 다음부터는 거의 다 평지이거나 아주 작은 경사의 오르막길 조금 있는 정도였었어서 너무 편했다. 

이곳에서도 자전거 주차장을 봤다. 일본에서는 정말 자전거가 대중적인 것 같다. 그 후 정문을 찾아 떠났다.

 정문도 정말 웅장했다. 정문을 지나 도서관, 공터, 학생식당들을 둘러봤다.

학생식당 윗층에는 매점이 있었다. 간사이 대학이 새겨진 볼펜 하나를 기념품으로 사가고자 했으나 간사이 대학 로고가 들어간 노트나 볼펜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특이했던 것은 간사이대학의 체육대학 혹은 운동부들이 입을 법한 트레이닝복, 점퍼, 바람막이, 티셔츠들과 심지어는 야구모자까지 판매했다는 것이다. 바람막이나 모자가 구매욕구가 솟구쳤으나 바람막이는 10,000엔이였고 모자는 대학 야구부라 차라리 살거면 일본 프로야구팀 모자를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서 구매하지는 않았다,


    (2)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사람들이 많을 때 찍은 것이 아닌 탐방하고 마지막에 돌아갈때 쯤 찍은 사진이라 뒤에 나오는 뛰어노는 아이들은 없음.

 종합도서관 옆 스타벅스 옆에는 공터가 있었다. 이 공터에서는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약간 수건돌리기 같은 것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반대쪽에는 대학생들이 사진찍으면서 놀고 있었다. 또 마침 해가 지고 있었던 시기라 영화속의 한장면인 것 같았다. 한쪽은 유년기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고 그 옆쪽에서는 20대 청년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이 곳에서 뛰어노는 유년기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 20대가 되고 그들도 뛰어노는 유년기의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나이가 먹었음을 실감할 것이고 20대 청년들도 시간이 지나 사회의 일부가 되어 생활하며 자신들이 과거에 뛰어놀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이제는 그럴 수 없음을 느끼고 그때를 그리워할 것이다. 


 간혹가다 SNS에서 보이는 말이있다. '평생 스무살하고 싶다.'라는 말이다. 아마 신체적 나이와 스무살이라고 하면 매일 음주가무를 즐겨도 '아직 젊으니까.','그럴 나이니까.'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책임에 대한 무게감이 없기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언제부터 스무살 혹은 이십대 초반은 매일매일 음주가무를 즐겨도 되는 나이대가 된 것인지 정말 의문이다. 20대 초반을 지나면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하고 가정이 생기면 책임을 져야하니 지금이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여서 이런 말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스무살 첫 해에는 보통 입시가 끝난 나이고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1년쯤은 그래도 될 것 같기는 하다. 딱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다음해부터는 다시 자기관리 및 개발을 해야하는 것이 '성인'으로서의 참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 스무살 이후에도 음주가무가 주는 쾌락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스무살 이후 이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가 '성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진정한 성인인가로 갈라진다고 생각된다.


  4. 요도야바시 카페벨로체 (淀屋橋 Caffe veloce)

 간사이대학 탐방 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숙소로 돌아가기 전 카페 벨로체로 향했다. 건물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회사단지인 것 같다. 이곳 요도야바시 카페 벨로체의 장점은 2층까지 있고 창문으로 강의 야경을 보면서 한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옆에서 쉬고 있거나 대화를 하거나 퇴근 후 공부를 하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글을 쓰고 있다.


 III.  나 자신에 대한 확정

 홀로 19일간 일본으로 온 목적 중 하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함.'이였다. 내가 인간으로서 진로(꿈)가 아닌 어떠한 가치를 가장 좋아하는가가 큰 궁금증이였다. 후쿠오카에서 paypay돔구장을 간 날 바로 앞에 있던 백화점에서 어린 여자아이, 엄마, 할머니 셋이 화목하게 쇼핑을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세상 중 아름다운 부분, 계속 이런 모습이였으면 좋겠다는 모습을 느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세상이여야하고 나는 굴복하여 모든 것을 내주고 얻는 평화가 아닌 당당하게 힘으로 지켜낸 평화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하며 평화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장교로서의 장기복무를 할까 계속 고민했다. 본래 세워뒀던 장교로 4년 복무후 학자로 가는 길과는 대비되는 진로이기도 했고 내가 사관학교 출신도 아니기도 했고 1~2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녀야했기에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현실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이 쓰였다.


 이러한 고민을 결국 간사이대학에서 끝을 맺었다. 내가 현재 애국심이 넘치고 군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다하더라도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능력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임관 출신에 대한 차별로 인해 전장에서 벗겨난 한직으로 튕겨나가 부속품으로만 군생활을 해야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정말 전장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능력이 출중하고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내가 한명있는 것보다는 내가 사회에서 학자->국방고위관료가 되어 능력이 출중한 인재들이 군에 들어오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능력이 출중한 인재들이 군의 지휘관, 간부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꿈꾸던 힘으로 지켜낸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매일매일 호기심이 생겨나기 때문에 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나는

 들어왔던 정문을 다시 나가며 진로와 내가 좋아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히 했다. 

나는 공군장교로 4년 복무하며 대위로 전역한 뒤, 대학원에서 국제정치석사학위를 받고 한국국방연구원에 들어가 국제전략,국방전략에 대한 연구 서포트를 하고 다시 대학원으로가 박사학위를 받고 본격적으로 국제정치학자로서 국가안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국방부차관, 국가안보실장이 되어 국방고위관료로써 뛰어난 인재들이 군에 들어오는 정책을 만들고 더 효율적이고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한 정책들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계속 보고 싶어하고 이 평화를 위해 헌신하여 업적을 남기고 위인이 되고자하는 야망가' 라고 나 자신에 대해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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