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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f Jul 14.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아니고,,,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며,,,”

최승자 시인은  ‘기억의 집’ 시집에서 자신이 시를 쓴다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처음에는 루 리드의 같은 제목의 오래된 노래를 여러 번 다시 들었다. 평온한 소리 아래 침잠하는 그 가사를 살펴보던 젊은 날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의 출근길 장면에 흐르던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은 새로운 새벽이 오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만은 아닐지라도, 하루를 마치고 평온하게 잠들 수 있는 마음 길에 대한 화두 같기도 했다.


그리고 최승자 시인의 낡은 시집까지 기억 속에서 올라왔다. 작은 위안을 찾아  채워지고 있는 불요불급한 것들,,,


빔 벤더스 감독은 주인공 히라야마(야큐쇼 코지)의 도쿄 일상을 통해 무엇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영화에서는 선불교의 선방처럼 단순하고도 단정하게 정리된 주인공의 방, 공공 화장실 청소부의 소임을 간결하고 단호하게 정성을 다해 임하는 모습이 한동안 반복된다. 출퇴근길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올드 팝,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흑백 필름으로 그날의 빛을 기록하고 퇴근하면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 간이식당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 돌아와 책을 보다 잠이 든다.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을 설정한 것은 그저 흔히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유지되는 도시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의 이면을 드러내고 치우는 일을 선택한 주인공의 어떤 삶의 서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잠시 가출해서 자신을 찾아온 여동생의 딸은 ‘삼촌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라고 한다.


불교 경전 ‘숫따니빠따’의 무니(Muni_성자를 의미) 편에 보면 ‘똑바로 오가는 (베틀의) 북처럼 자제하여,,,’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마치 선승처럼 말없이 웃고 가련한 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고 도와주고 흔들림 없는 일상을 베를 짜듯이 왕복한다.

그런 히라야마도 동료 젊은이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혼자 밤늦게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화를 내며 회사에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족을 만난 후 조용히 흐느끼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시 또 평심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세간은 기쁨이 속박한다.

사유(思惟)가 그것을 찾아다닌다.”

우리가 사는 세상(세간)에서 늘 갈망하는 즐거움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출가자가 아닌 이상 그 드나드는 생각들을 멈추고 벗어남의 길을 가기는 쉽지 않다.

빔 벤더스 감독은 새로운 기쁨의 것들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사소한 것들을 계속 음미하며 고요히 살아가는 세상 속 성자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매일매일을 맞이하는 일은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무거운 공포이기도 하고 충만한 기쁨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필링 굿이 아련하고도 슬프게 다가왔던 이유가 주인공이 밤마다 꿈을 꾸는 찰나들이  지나가 버리고, 또 다가온 아침에 출근을 하며 듣던 이 노래에 눈물이 맺히던 모습 때문이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흐르고 나오는 마지막 쿠기영상은 이 모든 번뇌를 녹일 만큼 아름다웠다. 나뭇잎 사이로 일렁거리는 햇빛(코모레비)은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다는.  그 순간을 기억할 줄 알고 기록할 수 있는 히라야마가 조카에게 들려주던 말도 겹쳐진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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