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새 Jun 08. 2024

6. 순간순간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들, <소울>

-피트 닥터, 켐프 파워스 <소울>

  소설이 좋아 00 대학 국문과를 지원했었다. 면접에서 노교수가 『파우스트』를 읽어보았냐고 물었다. 부끄러웠지만 읽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노교수는 그런 책도 읽지 않았으면서 감히 국문과를 지원했냐며 화를 냈다.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화는 전염성이 강한지 면접장을 나오면서 화가 치밀었다. '아니 내가 모르니까 배우러 간 거지, 읽고 싶어서 간 거지, 그까짓 책 하나 안 읽은 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이후 중·고등학교 시절 꿈이었던 국문과를 포기하고, 다른 학과에 진학했다. 결과적으로 국어가 아닌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국어'였으면 어땠겠냐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국어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만큼 지금의 과목이 좋다. 삶은 이렇게 살아내는 것이고 목적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다.


  영화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중학교 밴드의 기간제 교사다. 교장이 정규직을 제안하지만,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그는 재즈 음악가가 되는 게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자의 권유로 시내 최고 재즈 밴드의 피아니스트가 되지만, 불의의 사고로 '태어나기 전 세상(지구로 가기 위해 대기 중인 영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떨어진다. 그곳에서 '22'의 멘토가 된다. 멘토의 역할은 22가 지구통행증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지구통행증을 받기 위해서는 스파크(불꽃)를 채워야 하지만, 22는 도무지 지구나 삶에 대한 관심이 없다.




  문윈드라는 영혼의 도움으로, 지구로 내려오는 도중 조는 고양이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22는 조의 몸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들은 재즈 밴드의 첫 공연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발소를 간다. 이발사 데즈에게 머리 손질을 받으며, 조의 몸속에 들어있는 22가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만난 멘토들의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뭔가를 가지고 태어난다고들 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내 말은 만약 잘못된 것을 집어 든다면, 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집어 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데즈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딸이 아파서 학비가 더 싼 이발 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22는 그런 데즈에게 이발사로 살아야 해서 불행하겠다고 말하지만, 데즈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사람이 혈액 저장 기술을 발명한 찰스 드류가 될 수는 없어, 내가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생명을 구하고 있어"


  이발을 통해 그는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내 사람들에게 매력과 행복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발을 하는 동안 손님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수의사가 되지 못했다고 데즈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데즈의 이발소 의자에 앉는 순간 조의 몸속에 들어있던 22는 삶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온 조에게 밴드 멤버는 이야기한다.


 "100번 하면 1번 좋은 게 공연이야, 오늘 같은 날은 흔치 않지."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조가 묻는다.


 "내일 밤 다시 돌아와서 또 공연을 하는 거야. 모든 것을 다시 하는 거지."


 평생 기다려온 삶의 목적을 이룬 순간 매우 기쁘지만 허탈하기도 하다. 희망할 삶의 목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조에게 있어 불꽃은 삶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22에게도 삶의 목적을 찾으라고 하지만, 22는 '하늘을 보는 것'이나 '걷는 것'이 자신의 불꽃이 되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조는 그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일 뿐이라고 말한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영혼의 카운슬러 역할을 하는 제리가 있다. 그는 양자역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존재이 다. 지구에서 태어날 어린 영혼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그는 조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린 영혼한테 목적 같은 건 안 주는데, 불꽃은 목적 같은 게 아니에요. 열정, 목적, 삶의 의미 그런 말들은 너무 단순해."


  삶의 지침서라 우기는 베스트셀러는 삶의 목적을 설정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자신이 잘하는 일, 좋아하는 것, 가치 있는 일,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 등을 열거한다. 그러한 사항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부지런히 체크하며 삶의 목적을 정하고 한숨 돌렸을 때 <소울>의 제리는 그러한 일이야말로 '너무 단순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시시하다고 여겼던, 나이가 들어 힘겨울 때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우리의 삶을 지속시켜 주는 불꽃은 아닐까.


  <소울>에서 단풍나무의 씨앗이 부드럽게 회전하며 조(22)의 손바닥 위로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단풍나무의 씨앗은 날개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날개 두께의 차이로 회전하며 멀리까지 날아간다. 수직으로 하강하기를 거부하고 수없이 많은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내린다. 모든 씨앗의 목적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도착 지점은 모두 다르다. 땅에 닿는 순간 비로소 그 씨앗은 많은 잎과 씨앗을 만들어 내는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씨앗은 목적을 잊은 채 닿기만을 희망하듯 지면으로 안착한다.


  연소를 위해서는 타는 물질과 발화점 이상의 온도, 산소가 필요하다. 삶에서 발화의 대상이 '나'라면 산소는 '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발화점 이상의 온도는 무엇일까. <소울>이라는 영화에서 말하는 스파크가 '발화점 이상의 온도' 같다. 조와 22를 묶어주는 불꽃, 불꽃은 어쩌면 조우의 순간이다. 삶에서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만나는 순간 그 자체가 불꽃이고, 특이점이 된다. 비로소 연소하기 위하여 나에게는 타인이라는 산소와의 접촉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5. 왜 죽였을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