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선 국민차 카니발이 1억이 넘는다고?

벤츠와 테슬라를 거리에 쏟아낸 부자들의 가오

by 나름


학교 등하교를 위해 가장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은 ‘이동 수단’이었다. 대중교통이 전무한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넘어 장기 거주를 한다면 그랩만으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가격표를 보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에서 패밀리카의 대명사인 기아 카니발 상위 모델이 이곳에선 299만 바트, 우리 돈으로 1억 1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한국 가격의 거의 두 배다. 알고 보니 수입차에 붙는 사악한 관세와 세금 탓이었다.


"아니, 이 돈이면 한국에서 포르쉐 카이엔을 고민해 볼 법한데."


혀를 내두르며 나선 거리에는 벤츠와 BMW가 달리고 있다. 센트럴 페스티벌 세차장에는 포르쉐가 거품 목욕을 즐기고, 마야몰 전기차 충전 구역에는 테슬라들이 나란히 식사 중이다. 한국에서야 이미 흔한 광경이지만, 이곳의 경제 지표를 떠올리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잠시 숫자를 들여다봤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3만 6천 달러 수준이지만 태국은 7,300달러 내외로 약 5배가량 차이가 난다. 월급은 더 드라마틱하다. 태국의 일반적인 대졸 초임은 약 50~70만 원 수준이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국립대 교수들조차 각종 수당을 합쳐 월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를 받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 가격은 한국보다 2배 가까이 높은데, 소득은 5분의 1 수준인 셈이다. 도대체 이 압도적인 가격 차이와 낮은 소득 수준이라는 괴리 사이에서, 저 수입차들은 어떤 마법으로 태국의 도로 위를 점령하게 된 것일까?


이 미스터리한 풍경의 바탕에는 태국 사회의 견고한 자산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태국의 중산층 이상은 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안정적으로 세습되어 온 경우가 많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희미해진 대신, 이미 부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자산이 자산을 낳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즉, 도로 위의 저 수입차들은 누군가가 월급을 한 푼 두 푼 아껴서 산 '근로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이미 다져진 가문에서 흘러나온 ’자산의 배당금’에 가깝다.


여기에 태국 특유의 체면 문화인 '나 따(Na-Ta, 얼굴)'가 결합한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배우며, 가진 것을 드러내는 일을 경계하곤 한다. 하지만 태국은 다르다. 자신의 부와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집은 타인의 눈에 띄지 않지만, 자동차는 어디를 가든 주인의 사회적 위치를 증명하는 움직이는 명함이다. 집값보다 비싼 차를 타더라도 그 차에서 내릴 때 받는 대우와 시선을 즐기는 것이 이들에겐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처음 아이 학교 주차장에서 낡고 바랜 도요타와 번쩍이는 최신형 벤츠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저 낡은 차 주인은 왠지 기가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한국식 열등감을 대입한 오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먼지 쌓인 낡은 도요타에서 내리는 건 실용성을 중시하며 치앙마이에 스며든 외국인 거주자들이고, 햇살을 튕겨내는 벤츠에서 내리는 건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내는 태국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주차장 한 칸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서로 다른 삶의 철학이 주차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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