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몰입(Flow)’은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다.
심리학 서적은 몰입을 다루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유튜브에서는 몰입이 성과를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시킨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몰입은 자기계발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며 집중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평가받는다.
모든 몰입이 정말 유익한 것일까? 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건강한 몰입이 어느 순간 과몰입(hyperfocus)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몰입, 나에게는 재능이자 무기였다
나 역시 몰입의 힘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새로운 과제나 문제가 주어지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세우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에도 한 지인으로부터 책 소개 글을 부탁받았는데, 요청을 받자마자 머릿속에는 이미 글의 구조와 내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틀 만에 두 편의 완성도 높은 글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이런 순간들 덕분에 몰입이 생산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몰입은 언제나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몰입이 나의 의지로만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쉽게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지 않는다. 단지 게임이 재미없을까 봐가 아니다. 한 번 시작하면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계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일상을 중단한 채 몰입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흥미를 잃으면 다시는 그 게임을 손대지 않게 된다. 이처럼 몰입은 때때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시키고 정서적으로도 피곤함을 남긴다.
대학 시절 프로젝트 과제도 비슷했다. 한 달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과제가 주어진 후 2~3일 동안 밤을 꼬박 새우며 과제를 몰아쳤다. 과제가 끝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또한 과제를 제출 할 때까지 만들어진 과제를 계속 보면서 수정을 하며 다른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결국 생활 리듬이 무너지고 건강까지 해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삶속의 과몰입
이런 몰입은 단순히 큰 프로젝트나 취미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결정들조차 과몰입의 대상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며칠 후 구매할 물건이 있으면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그 제품의 사양, 가격 비교, 사용자 후기, 배송 일정 등으로 가득 차버린다. 물건을 실제로 구매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선택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머릿속 회로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과몰입의 한 형태다.
갈등 상황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동생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던 날, 나는 그 불편함을 며칠간 마음에 담아 둘 수 없었다. 바로 연락해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해야만 비로소 내 마음이 편해졌다. 일시적인 감정이나 불편함조차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며 나를 사로잡는 것이다.
때로는 저녁 식사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춰야 할 때에도 몰입 상태를 끊지 못해 식사를 거르고 결국 피로와 짜증이 겹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름 붙이지 못했던 과거에 대하여
과거의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단순히 ‘성격적인 집착’이나 ‘성실함의 일종’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ADHD 진단을 받으며 이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몰입이 단지 주의력 결핍 때문이 아니라 주의력 조절의 어려움 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주의를 분산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대상에 너무 과도하게 집중하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 바로 이것이 과몰입(hyperfocus)이다.
몰입을 잘 사용한다는 것
몰입은 여전히 나의 강점이다. 하지만 이 강점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나를 해치는 칼날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약물을 통해 몰입의 강도를 조금씩 조절하고 일상에서 ‘멈추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 태도였다.
몰입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 몰입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