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공평한 양식(糧食).
처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복음 중 하나가 ‘포도밭 일꾼’ 말씀으로, 새벽에 온 일꾼과 저녁에 온 일꾼이 일한 시간이 달라도 같은 품삯으로 계약하면 같은 품삯을 받는다는 말씀이었다. 강론에서 신부님은 '하느님의 셈법과 사람의 셈법이 다르다.' 하셨는데, 이는 예수의 다른 말씀, '땅에 매인 자는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와 어떤 면에서 배치되기 때문에 의아했다.
이 화두로 고민하다 시간 흘러, 태양은 그늘진 곳 아니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빛을 비추는 사실에서 은총의 속성을 조금 이해했다 여겼다.
몇 해 전, 보통 가톨릭 신자들이 으레 그렇듯, 평소에 성당 안 나가다 지 힘들고 고달프면 병원 찾듯 안 좋은 것들에 절어 기어나갔다. 그것도 늦게 가 맨 뒷자리 유아동반실 창문 등지고 앉았다. 제2독서가 끝날 무렵 한 가족이 허겁지겁 들어와 옆에 왔다. 나이 많은 아빠, 나이 적당한 엄마, 늦둥이 딸이 각자 개성 있는 땀 냄새로 하모니 이뤘다. 역시 각자 다른 등산복 차림으로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산했다. 딸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고 부모는 이를 제지했지만 산만한 건 유전 같았다. 내색 안 했지만, 사람도 상황도 싫고 자책도 하고 미사에 집중하려 애썼다. 성체를 모시자 조화로운 가족은 얌체처럼 성당을 빠져나갔다.
자책 연장선에서 왜 내가 지금 이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걸까 생각하다 내가 정당했다는 착각을 알았고 자랑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성당에 와 받는 은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는 양식이고 그 가족은 성체를 모시는 것이 좋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민폐 끼치는 사람들이지만, 모두에게 두루 비추는 태양 같은 신에게 나와 그 사람들은 같은 예쁜 자식이다. 은총을 받는 것에 평가나 판단은 없다. 누구나 찾아오면 그냥 받는 것이다. 은총 받는 것이 좋은 줄 알고 성전을 찾는 게 현명한 것이다. 교리에 더 충실한 쪽은 그 가족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전을 멀리하는 게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디아블로(Diablo), 신과 인간을 분리하고 멀어지게 하는 악마의 본질에 가깝다.
그 가족을 누군가 보내준 사자라 여기고 고마워했다.
그 후로, 준비하고 가다듬고 비워야 미사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성전에 들어가는 것에 예의 갖춰야 하고 경건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각자 형편과 깜냥에 따라 최선을 다할 문제고, 살기 어렵게 뒤틀려 있으면 타고난 태가 그러하다면 받아먹는 것에 체면 없어도 된다. 생명은 제 살기에 좋은 양식을 먹기 위해 어쨌든 성전 찾아가는 게, 성전 피해 그늘진 곳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