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종교에 대한 정의와 입장은 다양하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높고 순수한 사유 철학이자 실천 철학으로 진리, 깨달음, 가르침, 믿음, 실천, 변화를 한 번에 담은 의미다. 인간, 이질적인 존재가 진리에 이끌려 한 덩어리로 되는 길이다. 지금에서 변해 고결한 어딘가를 거쳐 가는 과정으로 궁극적인 상태는 해탈이나 희생이다.
통념상 종교로 일컫는 많은 것들이 종교가 아니다. 실은, 사람을 조직이나 계급에 종사토록 하며 재화를 특정 세력에 이익이나 기득권으로 귀속시키는 사사로운 당위와 관점에 따른 망상인 경우가 많다. 숭배와 미신은, 자타 전반에 대한 지각 오류, 소외된 자아의 역할 찾기와 종속, 확증편향과 신념 강화 같은 ‘인지 및 심리 메커니즘 고장과 자발적 무지 및 보상 기제‘가 본질이지, '종교 같은 외피를 덮은 것'과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효용으로 접근할 양식(樣式)이나 문화, 제도가 아니라 믿음과 실천에 관한 태도다. 그 시작이 힘든 마음일지라도 혼자 마음 편하다고 끝나는 건 종교가 아니다.
진리에 수렴하는 과정에서 정합성과 일관성을 잡고 그에 따라 시비, 선후, 경중, 본분이 명확해진다. 제대로 아는 것에 대한 실천으로, 무지와 거짓에 비롯된 혼란에서 길을 찾는 것이다. 진리에 친하게 자신을 구축하고 남은 모든 타자에 저항하는 것이 순서이다. 따라서 현실과 부조리를 외면하는 종교는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그러한 ‘종교인’ 있다면 틀림없이 사이비 위선자이거나 거짓을 파는 장사꾼이다.
지성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과학 사고와 지식을 배척하는 교리를 강요하는 것 역시 사이비다. 진리를 향한 다른 언어인 종교와 과학의 본질은 상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욥기'에는 저술자가 가진 당시 우주관 한계가 담겨있고 신의 권위에 기대어 한 말씀이라도 천체 운행에 관해 지금 과학지식과 배치되는 구절이 있다. 이때 자구 그대로 믿고 과학 지식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최신 과학 지식을 바탕에 두고 해당 구절을 새로 해석해야 한다. 이는 신성에 맞서는 불경한 일이 아니다. 신은 관대하고 자비롭다.
반대로, 과학이란 지성 성취는 위대하고 명백하지만, 여전히 유한하다. 지금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과학은 종교와의 관계에서 독단을 경계해야 한다. 미지와 부존재는 다르므로 과학이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악한 거짓 주장과 미신이 과학과 다툴 순 있어도, 종교는 과학과 같이 갈 수 있고 같이 가야 한다.
사람은 유한하고, 언어와 사회의 한계 안에 있으므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은, 구도자가 속한 문명 양식과 도그마를 도약하는 의미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각 종교가 제시한 교리와 과학 사고방식이다.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가 유리된 편견에 익숙한 건 종교를 무지와 맹신과 친한 반지성으로 허수아비 세운 이유다. 일탈 종교 행위와 종교에 관한 판단은 구별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진리를 향한 다른 접근으로 결국 진리에 가까운 어디서 만난다.
하지만, 나는 내 전제와 상충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신비한 경험은 과학 관점에서 착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정말 착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정의와 입장도 다양하다. 나는, 나만의 불가지론, ‘신’과 ‘내가 지각하는 물질세계와 다른 세계’는 있고 유한한 내가 잘 알 수 없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구교와 신교를 아우르는 많은 기독교 신자가 인격신을 신봉한다. 하지만, 신은 유한한 인간 지각과 지성으로 가늠할 수 없는 존재로 추정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인격신은, 진리와 논리적으로 별개의 우상으로 경계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위대한 원효대사가 '나무아미타불' 외는 일념으로 많은 중생이 구원받을 길을 제시한 것처럼, 유한하고 또 유한한 사람을 진리로 이끌 길(way)로서 인격신은 '나무아미타불'과 같을 수 있다. '이것이다' 보다 '이거라도' 의미로 분명 의미 있다.
신은 진리의 화신이자 스승이다. 세계(cosmos)의 어딘가 혹은 그 밖에 존재하며 ‘선각자의 깨달음과 가르침 혹은 예언자 통한 전언’으로 진리를 전한다.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실천으로 이어진다. 신은 이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원리 행하는 존재다. 내게 가톨릭은 신과 진리에 관한 태도다. 나는 신의 존재를 남들 얘기만 듣고 맹신하거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회의 품었다, 경외감을 경험한 뒤 정말 믿는다. 크게 마음 꺾여 원망하고 멀리 있을 때도 신의 관대함과 자비를 믿었다.
나를 이계로 초대한 초월 존재는 인간과 격이 달랐다. 신화보다 외계 지적생명체 이미지에 더 가까웠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 길 없어 신이라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초월 존재의 응답은 일방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스키너 박스 안 비둘기다. 나는 응답의 조건을 모르고, 조건을 통제하면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과학과 큰 간극이 남아있다.
내가 이 어려운 문제에 답을 말할 수 있으면 기만이다. 결론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