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분지족, 삶의 고난, 용감과 극복, 성장. 김명인 '아들에게'
아들 녀석이 외국에서 초등학교 (프라이머리 스쿨)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여섯 살, 영어라고는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금요일 오후 그날도 아이를 데리러 간다. 저기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지 그저 싱글벙글, 보는 우리도 그냥 좋았다. 이 녀석이 갑자기 친구들에게 그런다 - '시 유 트모로우', 손을 흔들면서. 우리는 천재의 탄생을 보았나 싶었다. 차에 타더니 제 엄마에게 대뜸 그런다 - "엄마, 트모로우가 뭐야?"
한 달쯤 지났을까? 학교 알림장에 선생님이 이번 주 언제 시간될 때 학교에 한번 오란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바로 그 다음날 학교로 갔다. 미세스 맥미니스, 영국인답지 않게 자그마한 체구, 그냥 얼굴에 선한 사람,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쓰여져 있다.
다행히 우리를 맞는 얼굴이 좋다, 웃는 모습이다. 잔뜩 긴장한 우리 둘에게 하는 말 - 어제 수업 시간에 낱말 공부를 했지요. 아이들에게, m으로 시작하는 단어 말해보자. 자 누구?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고 말한다. 머더 (mother)/멍키 (monkey)/마우스 (mouse)/머니 (money)...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손을 들더니 '마케팅' 그러더란다. 일순 조용해진 교실 분위기. 선생님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조금은 궁금했다고 한다, 뭐지 이 아이는?
그제서야 우리는 얼굴에 웃음을 되찾고 내가 설명을 한다. 네, 제가 마케팅을 합니다. 지금도 학교에서 마케팅 공부를 하고 있구요. 지금껏 집에서 늘 제 아이가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주로 마케팅 얘기였을 겁니다.
욕심에 대해 말하려고 이리 서설이 길다. 나에 대한 경구로 이 글을 쓴다. 요즘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는 욕구와 욕망, 그런 욕심을 젊잖게 내리누르려고. 자칫 심하게 다스리면 성을 내고 그렇게 덧날까봐.
그 후 한국에서의 세월이 흐르고 아들 녀석이 다시 세컨더리 스쿨에 들어갔을 때다. 첫 일주일 동안은 내가 늘 학교까지 함께 갔다. 아직 제대로 정착하기 전이라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또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다시 마을 버스를 타고, 그리 먼 길을 험하게 갔다. 버스 안에서 얌전하게 생긴 중국인 형아가 그 어두운 공간에서 핸드북 사이즈의 작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아들에게 살짝 말한다. 내 아들도 언젠가는 저렇게 영문 책을 술술 읽었으면 좋겠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술술 잘 읽는다. 이미 저장된 지식의 양과 질도 나의 것보다는 훨씬 많고 높은 품질일 것이다. 작년에 아들 녀석 집에 갔을 때 마침 집에서 일을 하는 날이었다. 그룹 화상회의를 이끌고 가는 그의 모습이 대견하고 흐뭇했다. 충분히 공정하고, 충분히 전문가적이고 충분히 날카로웠다. 내 나이 그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도 가끔은 불쑥불쑥 말하고 싶은 '지적질'이 나를 충동질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여기저기를 떠돌며 익힌 내공이 그런 충동적인 유혹을 막아준다.
좋은 말만 한다, 많이 묻지 않는다, 그가 꺼내는 얘기에 귀를 귀울인다, 그리고 그것을 단초로 얘기를 끌고 나간다.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니?/며칠의 휴가에 비행기 값이며 호텔비며 비싼 식비하며, 글쎄 그만큼의 가치와 효익이 있는 여정이었을까? 이번에 그 일로 꼭 가야만 했을까?/이제 그 취미활동, 충분히 오래 한 것 아닌가? 그 시간과 열정을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곳에 쓰면 어떨까?',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고맙게도 하지 않았다. 내게도 그에게도 고맙고 좋은 일이다.
하나, 충분히 나이 먹었다. 완전한 성인이다. 나는 그 나이에 이미 그 아이를 나의 아들로 두고 있었다. 둘, 그에 대한 존중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이미 나보다 낫다. 단지 어떤 것들이 내 눈에 조금 아닌 것 같이 보일 뿐이다. 그에게는 그의 판단과 그의 생각이 있다. 셋, 가문의 진보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 그리 생각한다. 내가 걸어온 그 길, 나의 생각과 판단과 결정, 실행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이 맞다. 무릇 모든 진보와 성장은 그런 식으로 온다. 넷, 그것 말고도 우리 둘이 나눌 얘기, 아니 꼭 나누어야 할 얘기는 많고도 많다. 우선 순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의 시를 본다.
시인이 63세 되던 때에 쓰신 시다. 어쩌면 시 속의 아들은 그때 30세 초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폭풍주의보가 발효된 바다 험한 날이다. 굳이 아들 등을 떠밀며 '일 가라. 놀면 뭐 하냐.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이리 정 없이 말할 아버지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속 깊은 아들이, "아버지, 저 오늘 바다에 나가겠습니다. 쳐놓은 그물도 있고 오늘 걷지 않으면 그물도 고기도 다 버리게 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새로 마련한 큰 배이니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된 겁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지난번 이런 날씨에도 별 문제 없었잖아요? 하지만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이리 말한다.
이런 아들에게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아버지 또한 아니다. '네 파도는 또박또박 네가 타 넘는 것' / '모든 외로움도 결국 네가 견디는 것' /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 이런 단호함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니까.
직접 원시를 읽어보시라고, 이 시는 꼭 읽으셔야 한다는 뜻에서 굳이 여기 적는다.
아들에게
- 김명인
풍랑에 부풀린 바다로부터
항구가 비좁은 듯 배들이 든다
또 폭풍주의보가 내린 게지, 이런 날은
낡은 배들 포구 안에서 숨죽이고 젊은 선단들만
황천(荒天) 무릅쓰고 조업 중이다
청맹이 아니라면
파도에게 저당 잡히는 두려운 바다임을 아는 까닭에
너의 배 지금 어느 풍파 갈기에 걸쳤을까
한 번의 좌초 영원한 난파라 해도
힘껏 그물을 던져 온몸으로 사로잡아야 하는 세월이니
네 파도는 또박또박 네가 타 넘는 것
나는 평평탄탄(平平坦坦)만을 네게 권하지 못한다
섬은 여기 있어라 저기 있어라
모든 외로움도 결국 네가 견디는 것
몸이 있어 바람과 맞서고 항구의 선술로
입안 달게 헹구리니
아들아, 울안에 들어 바람 비끼는 너였다가
마침내 너 아닌 것으로 돌아서서
네 뒤 아득한 배후로 멀어질 것이니
더 많은 멀미와 수고를 바쳐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