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이 나라 저 나라 '방랑'이 내게 가져다 준 것

- 구도의 길 떠나기, 궁즉통, 내려놓음. 아르튀르 랭보 '환타지'

by 가을에 내리는 눈

일전에 방황과 방랑은 분명 다른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어쩌면 그들의 '일종의 반드시로서의 방랑'의 문화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러저런 이유로 우리는 방랑과는 그리 친하지 않다. 나는 자연 속의 비와도 동무 사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이에 관한 글도 이미 하나 써놓았다. 때가 되면 발행할 생각이다.


나처럼 나이 들어 하게 되는 방랑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또 많이 다르다. 우선 급한 마음이 별로 없다고나 할까? 딱히 정해진 목표나 꼭 얻어내고 싶은 그 무엇은 없다. 그러니 굳이 서두를 이유도 마음 조급해질 이유도 없다. 대개는 느리고 느긋한 일정이 된다. 내 몸과 마음이 크게 반발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 유지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일상 속 편안한과 안정감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덧나는 경우가 바로 발생한다. 내 몸과의 적정선에서의 타협이 요구된다. 그것이 선행조건이다. 그래야 방랑을 계속할 수 있다.


젊은이의 순발력과 정보 획득 능력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들의 육체적 강인함과 그것을 기초로 한 놀라운 일상 생존 능력 또한 내게는 별로 없다. 무엇이든 먹어도 별 문제 없고 어디서 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의 무서운 현장 적응력, 당연 그것도 내게는 없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노년의 방랑 혹은 즐거움을 위한 여행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지만 결연히 실행하는 나이 든 사람의 방랑, 사실 내게 주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하나, 생명력이 넘치는 긴장감. 사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이 아니고서야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인이 해야 한다. 이것이 개인 여행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매 단계 매 순간마다 긴장의 연속이다.


결국 다른 나라 최종 목적지의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 체크인 하고 인터넷 와이파이를 무사히 연결해야 비로소 한 단계가 끝나는 것이다. 미꾸라지 양식장에는 일부러 커다란 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어 둔단다. 그러면 미꾸라지들이 긴장을 하고 그것이 더 건강하고 빠른 성장을 가져온단다.


2년 전 아들 녀석과 런던에서 만날 때의 일이다. 현지 호텔의 예약, 호텔에서의 아침과 저녁 하프 밀 플랜, 런던 시내 식당의 사전 예약과 찾아가기, 모든 것을 아들이 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내가 다 하고 그저 졸래졸래 따라만 오던 아들이 이제는 자기가 나를 리드한다. 뿌듯하고 흐뭇했다. 든든했다.


서로 항공편이 다르고 터미널 또한 달랐음에도 미리 내가 내리는 터미널로 와서 몇 시간을 나를 기다린다. 그곳에서의 상봉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호텔 찾아가기, 체크인, 레스토랑에서의 주문,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햄버거 주문하기가 특히 어렵다. 내게는 늘 그랬다. 버벅거리고 몇 번을 되묻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아들이 하니 나는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으면 되었다. 이런 편안함도 별미이기는 하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방랑에서 오는 내 일상 속에 흐르는 생산적인 긴장감, 내게는, 특히 나이 들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둘,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새로운 것들이 내 일상에 주는 신선함이다. 사람들도 다르고 말이 다르고, 먹거리가 다르고 볼거리가 다양하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던 삶의 지루함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공상과 망상을 원초적으로 차단한다. 조금은 신이 나서 보다 유용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시간의 지루함을 훨씬 덜 느끼게 된다.


셋, 겸허한 마음, 겸손한 태도를 갖게 된다. 물론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빼앗긴 것이 그 첫 번째 원인일 수도 있다. 조금은 위축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두려움이 가져오는 뜻밖의 효과로 보는 것이 옳다. 매사 삼가고 언행을 조심하고, 그렇게 나를 살펴보게 된다. 굳이 뭐가 겁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넓은 마음으로 사고하게 된다.


넷, 그러니 자연 사람이 너그러워진다. 잘 웃게 된다. 마치 컴퓨터에 깔린 기존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다 지우고 그렇게 리셋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이전의 나를, 혹시 아쉽게도 부정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더욱 더, 깔끔하게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큰 뜻을 품게 된다. 그렇게 처음부터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매사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된다. 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좋은 일이다.


다섯, 사유와 묵상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된다. 주변으로부터의 강제적 절연 (인설레이션, insulation)이다. TV를 볼 것도 아니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지도 못한다. 그저 혼자만의 고요 속에 푹 잠기게 된다. 당연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할 시간이 주어진다. 그 사유의 영역은 급속히 확대된다.


많은 것들이 새삼 궁금해진다. 찾아보고 공부하고, 그렇게 귀한 사유와 묵상의 시간을 즐긴다. 나 자신에 대해 특히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과거, 나의 현재 그리고 내가 보게 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그냥 소극적으로 기다리던 당위의 미래에서, 뭔가 내가 좀 만들어 보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 그래서 실제로 무언가를 하게 된다. 그것이 만들어낼 나의 최종 미래가 무엇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그저 기다리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일 될 것이다. 이런 용기도 또 실행력도 이번 몇 년간의 방랑에서 얻은 것이다.


여섯, 사실 이것이 재미있는 부분인데 한국에 대한 그리움 혹은 애정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우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순대 (간 많이)와 떡볶이, 김밥, 잔치국수, 칼국수, 냉면, 막국수, 어묵탕, 오징어 양배추 볶음, 잡채, 두부전골, 큼직한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살짝 식은 아욱국 혹은 근대국, 이북식 피 약간 두꺼운 왕만둣국, 맑은 소고기 무국, 고등어 구이, 복어 맑은 탕, 순댓국, 소금 간한 고등어 고춧가루 조금 뿌리고 밥 위에 찐 것, 닭볶음탕, 냄새 덜나는 청국장, 삼계탕, 돈가스, 고사리 많이 들어간 너무 맵지 않은 육개장, 명태전과 육전, 굴비 구이, 어복쟁반, 자장면과 짬뽕, 각종 나물무침, 한스 초콜릿 케익, 모카빵, 통팥빵...


그것과 관련된 추억들을 하나씩 소환한다. 당연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내게는 작금의 아쉬움을 달래는 즐거운 되씹기 과정이다. 눈 내리는 겨울날의 풍경, 화려한 가을, 사람 빼곡하게 가득한 서울의 거리...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속 편한 그 익숙함을 다시 즐겨보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일곱, 강화된 생존능력이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이 대신 잇몸으로 사는 지혜, 늘 가까이 있게 된 궁핍과 결핍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고도 말하는 법을 잊어먹지 않는 비법 등을 익혀간다. 무엇보다 그리움, 외로움 그리고 고독과 동무하는 법을 알게 된다. 참으로 중요한 비기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은 방랑 중의 나의 일상. 밀레 세탁기 생각이 간절하고 밀레 청소기가 크게 아쉽다. 템퍼 매트리스의 그 포근함과 오리털 이불의 따스함이 그립다. 버터리한 오레곤주 피노누아 한 잔 생각이 절실하고 적당히 따뜻한 순대와 간, 부속 고기들을 와인과 함께 먹고 싶다. 고운 고춧가루 살짝 뿌린 거친 굵은 소금에 찍어서. 드라이 레드 와인과 순대, 떡볶이는 최고의 조합이다. 나는 그렇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런 것들 없이 견디는 법을 익혔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로 만족하는 내공도 생겼다. 적어도 배고픔 없이, 하늘의 별을 헤며 잠을 청해야 하는 일은 면한 지금의 상황을 감사한다.


여덟, 젊어진 정신 훨씬 맑아진 영혼. 요사이 깨끗한 정신을 갖게 된 듯한 느낌을 늘상 받는다. 육체적으로도 오히려 건강해진 것 같다. 먹거리에 대한 아쉬움 속에서도 꼭 필요한 근육만 남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아침 저녁 산책 때의 내 발걸음에서 그것을 느낀다. 자세도 달라진 것 같다. 머리를 꼿꼿이 처들고 보폭을 좁히고, 최대한 당당하게 걸으려 애쓴다.


나를 알던 누군가가 나를 보면 그야말로 괄목상대, 긍정적으로 달라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을 알기에 걷는 동안 내내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러다가 나중에 어쩌면 내 몸에서 팥알만한 작은 사리가 하나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아들 손에 들어가면 좋으련만.


오늘의 시를 본다.


방랑하면 나는 랭보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그의 삶은 방랑과 방황의 무계획적인 섞임이었다. 방황의 색채가 더 강한 것 같아 그것이 늘 아쉬웠다. 적어도 나는 이 나이 그런 방황은 아니니 그것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보헤미안적인 삶 - 판타지 (My Bohemian Life - Fantasy)

- 아르튀르 랭보 (Jean Nicolas Arthur Rimbaud)

찢어진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나는 길을 떠났다 ;

낡은 오버코트조차 더할 나위 없이 그저 좋았다 ;

나는 하늘 아래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뮤즈의 여신이여! 나는 당신의 종이었소 ;

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가!


하나뿐인 내 바지의 엉덩이 부분에는 큰 구멍이 나있다.

- 공상에 잠긴 엄지손가락 톰만한 크기의, 나는 가는 길 내내 시의 운율을 촘촘히 심었다.

내가 머무는 여인숙은 큰곰자리에 있었다 ;

- 하늘에 있는 내 별들은 부드럽게 바스락거렸다.


나는 귀 기울여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길가에 앉아서

상쾌한 구월의 저녁마다 이슬이 마치

힘이 가득 느껴지는 와인처럼 내 이마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


그 사이, 나는 참으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시의 운율을 맞추며,

다 떨어진 내 부츠의 끈을 마치 수금의 현처럼 바짝 잡아당겼다

나의 가슴쪽 한 발 더 가까이!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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