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크게 기쁘게 한 내 인생 김치, 그 두 번의 감격

- 조강지처, 빈난지우, 추억과 사랑의 맛. 이해인 '겨울 아가'

by 가을에 내리는 눈

학교 다닐 때의 점심 시간, 나는 그래서 학교를 가는 것인가 할 정도로 많이 기다려진 그 시간. 앞 뒤의 친구들과 서로 반찬을 나누어 먹는 재미. 집집마다 종류가 다르고 그 맛이 다르고. 그런데 내가 절대 먹지 않은 친구들의 반찬이 있었다. 단 한 번의 충격적인 기억 때문이다. 어느 해 겨울 점심 시간, 무심코 한 젓가락 집어먹었던 친구의 김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과 함께 맛을 느끼지 않으려 숨을 멈추고 그저 꿀꺽 삼킨다. 그 순간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그 후 나는 절대로 다른 집 김치, 특히 겨울 김장김치는 먹지 않았다.


어머니의 김장김치는 젓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새우젓 (육젓), 그리고 몇 번을 집에서 다시 다려낸 맑은 멸치 액젓 그 정도. 남도에서 많이 쓰는 갈치젓 같은 것은 결코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명태 같은 담백한 생선을 토막을 내어, 또 때로는 그냥 통째로 김치 사이사이에 넣는다. 비린 맛은 전혀 없다. 나중에 김치가 잘 익을 때쯤 되면 그 생선 또한 색다른 맛을 낸다. 어머니의 김치는 그렇게 맑고 담백했다. 시원한 맛이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식당의 음식들을 먹을 기회가 늘고, 그러면서 젓갈이 많이 들어간 남도식 김치에도 길들여졌다. 하긴 김치찌개에는 오히려 그런 진한 국물맛의 김치가 더 어울린다. 넉넉하게 들어간 좋은 돼지고기, 거기 들어간 그 돼지고기 건져먹는 맛이 또 쏠쏠하다. 김치와는 상극인 레드 와인이 그때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 된다. 라면을 넣어 먹어도 맛있고 가래떡을 넣어 먹어도 맛있다. 얇게 썰은 떡국용 떡도 나름 별미다.


나는 백김치를 좋아한다. 잣을 넣고 마른 실고추를 넣은 어머니의 백김치는 참 맛있었다. 배추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머니의 총각김치는 겨울철의 인기 최고 아이템이었다. 총각무 반을 가르지 않고 거의 그냥 넣었다. 나중에 베어물 때의 식감이 다르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속까지 배어들어간 그 맛은 요즘처럼 그저 편리하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반을 가른 것과는 그 깊은 맛이 다르다.


섬섬한 겨울 김장 김치에 곱게 간 콩가루를 듬뿍 묻혀서 끓여낸, 고춧가루 별로 보이지 않는 김치국은 아주 맛있다. 김치의 고춧가루가 보기 싫게 둥둥 떠다니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미관에도 맛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김치를 세로로 길게 손으로 찢어서 아주 묽은 밀가루 옷을 입혀 솥뚜껑에 큼지막하게 부쳐낸 김치전. 최고다! 김치와 밀가루의 적절한 자기 영역 확보가 핵심이다. 너무 짜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너무 싱겁지도 않은 것이. 굳이 고춧가루 살짝 뿌린 묽은 간장 양념에 찍지 않고도 먹기 좋은 그 정도가 딱이다.


에고, 내내 먹는 얘기가 이어지네요. 오늘 주제가 나의 인생 김치니까요.


자 그럼 저의 인생 김치 그 첫 번째. 2년 전 몇 년만에 아들 녀석을 만나러 간 길. 속이 닉닉하던 그때, 첫 식사 자리에 그 빛깔도 맛도 참으로 대단한 김치를 내어놓는다. 아버지 오신다고 자기가 한 달 전에 미리 담그어 놓은 것이란다. 익은 김치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제대로다 김치가. 배도 갈아 넣고 양파도 갈아 넣고, 고춧가루도 듬뿍 넣었다. 배추 4등분으로 갈라서 그렇게 포기로 담은 김치였다. 어머니 김치만큼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조선호텔 포기김치보다 낫다.


나는 오랫동안 조선호텔 포기김치를 사 먹었다. 아예 냉장고 한 대는 그 김치 전용이었다. 수시로 사다가 저장해 놓는다. 어떤 경우에는 1년 가까이 된 김치도 냉장고에 들어있게 된다. 그것은 또 그 나름의 깊은 맛이 있다. 물론 썰은 포기김치 (맛김치라고 부르던데)도 있다. 맛이 크게 다르다. 아마도 썰어서 담그면 배추에서 그 맛있는 물이 다 빠져나올 것이고, 무엇보다 배추김치의 생명인 숙성 (발효)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 같다. 당장 먹기 편하고 담기도 편하겠지만 배추김치 특유의 그 깊은 맛은 기대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은 사 먹지 않는다. 실제로 맛이 훨씬 덜했다.


두 번째 인생 김치는 이번에 이곳에 와서 경험했다. 장에 탈이 나서 고생하던 때였는데 이래저래 맛있는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다 발견한 비비고 김치. 썰은 김치였다. 아무려면 어떠랴?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조금 달고 젓갈의 맛이 좀 특이했지만 그래도 수준급의 김치였다.


그러다가 발견한 또 다른 비비고 김치.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썰지 않은 포기김치가 들어왔다. 냉큼 산다. 역시 맛은 이게 낫다. 배추 자체의 맛이 살아있다. 거북한 단 맛도 조금은 덜했다. 젓갈의 맛은 썰은 포기김치와 마찬가지로 살짝 아쉬웠다. 태국산 피쉬 소스 아니면 이곳에서 생산되는 느억맘을 쓰나? 한국산 까나리 액젓이나 멸치 젓, 갈치 속젓을 넣으면 좋은데? 그냥 해보는 말이다. 또한 1킬로 단위의 소포장 시스템이라 공간 부족에 따른 숙성상의 장애, 그리고 국물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럼에도 맛있었다, 좋았다.


혹시 어머니가 서운해 하실 수도 있어 짚고 넘어간다. 어머니의 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건 내 평생의 김치인 것이다. 더는 먹을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잔치국수와 함께 먹어도 맛있고 그 김치를 잘게 다지고 거기에 충분히 물기 뺀 두부를 넣고, 닭고기 혹은 꿩고기를 넣고 때로는 돼지고기 다져서 넣은 이북식 어머니표 왕만두. 바로 쪄서 먹고 쪄서 두었다가 후라이팬에 살짝 구워 먹어도 맛있고, 만둣국 끓이면 더욱 맛있고. 그런 살짝 두꺼운 만두 피에 크게 빚은 만두 들어간 만둣국 먹은 지가 참으로 오래다. 먹고 싶다. 서울 장충동 근처 평양 만두집의 것이 맛있었다.


이제 오늘의 시를 본다.


마음도 표정도 한없이 고운 이해인님의 시다. 12월을 하얀 배추 속 같다고 하신다. 하긴 그 무렵 그 하얀 배추 속은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달고 맛있다. 잘 숙성된 배추의 맛이다.


여러 헛말 속에 그래도 진실 한마디는 했으니, 지난 날들은 그만 잊어버리자 하신다. 그러면서 갑자기 사랑의 양념 얘기를 하신다. 마늘이 들어가고 파가 들어가고 또 생강이 들어가는 김치 양념. 나는 생강의 그 묘한 맛이 좋다. 나는 평소 편강 (생강을 얇게 저며서 설탕에 잘 졸인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배운 맛이리라. 한국에 있을 때는 직접 만들어 먹기고 했다. 몇 가지 핵심 요령이 있다.


제대로 양념의 일원이 되려면 부서져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도 그렇게 자신을 부서지게 하지 않고는 결코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고.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어 하늘을 보라시네? 그리 충분히 준비하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한겨울 추위 속에 얼마간은 외로이 홀로 떨어져 김칫간에서 고독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비로소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그렇게. 이제 곧 다가올 겨울, 김치를 보며 느끼는 겨울날의 '아름다운 노래', 아가를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화려한 표현과 다소 직설적인 남녀간 사랑의 묘사로 유명한 성경 '아가서'보다, 저는 이 시가 훨씬 좋네요. 담백한 어머니표 백김치 같기도 하고, 젓갈 많이 안 들어간 시원한 겨울 김장김치의 맛도 느껴지고. 겨울 김치, 추운 겨울 고독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야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 지나면 자신에 대한 모든 가족들의 큰 사랑을 매일, 거의 매 끼니때마다 확인하게 되니 충분히 참을 만하겠지요? 그러니 매년 겨울 늘 그리 즐거운 얼굴로 싫다 소리 않고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사랑받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아니 '불감청 고소원' (감히 얼굴 두껍게 저를 사랑해주세요 하고 나서서 청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리 해주시며 참 좋겠다 그런 바람은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지요)의 덕목이니까요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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