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맨발, 버선발, 신발 - 희소성의 가치

- 귀함의 의미, 절제의 미학, 불규칙성, 초심. 정채봉 '첫마음'

by 가을에 내리는 눈

나는 어린 시절 많은 형제들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대가족이 주는 귀한 의미와 가치다. 요즘은 아예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큰형이 월남전에 참전할 때의 일이다. 집안은 거의 초상 분위기였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도 당연 그 돌아가는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셨다, 많은 걱정 속에서. 가족 모두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흑백사진이다. 사진 밑에는 근엄한 필체의 제목도 쓰여 있다 - '큰형을 월남에 보내며'. 이렇게 완성된 아홉 대가족의 비장한 표정의 사진 한 장.


시간이 흐르고 큰형이 첫 휴가를 한국으로 나왔다. 한달 전부터 노심초사, 기대와 흥분 속에 기다리던 어머니. 드디어 당일, 형이 마당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머니는 버선도 챙겨 신지 않고 그냥 맨발로, 단숨에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나가신다. 그때 어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시간이 또 흐르고 형이 두 번째 휴가를 나왔다. 어머니에게 한결 여유가 넘친다. 이번에는 버선도 챙겨 신고 나가신다, 그러나 여전히 신발은 신지 않으셨다.


그 뒤 또 휴가를 나온 형. 이번에는 어머니 반응이 재미있다. "또 나온다고?" 신발까지 천천히 다 챙겨 신으시고 그렇게 형을 맞으러 나가셨다. 마루를 지나고 마당을 지나서, 아주 여유롭게.


다이어몬드가 그리 비싼 이유, 그냥 희소성이다. 그래서 그저 붙여놓은 가격이 그대로 정가다. 뭐 다른 이유는 없다. 귀한 것이니까. 한때 거의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광물 희토류라는 것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냥 귀하니까, 거기 아니면 없으니까. 달라는 대로 줘야지?


얼마 전 브런치에서 연애에 관한 전문가의 조언과 꿀팁을 읽은 기억이 있다. 새삼 내게 연애라는 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나의 글을 읽어주시고 좋다고 해주신 것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글이 참으로 좋았다. 역시 고수, 전문가였다.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인상에 남는다 - 어느 순간 상대방의 나에 대한 반응이 예전과 다르다 싶으면 이유는 단 하나다. 당신은 이미 그녀에게 '대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꼭 당신 아니라도 당신만큼의 효용가치를 가지는 다른 인물을 그녀는 확보한 것이다. 그리 알면 크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취지였다. 공감했다.


이런 조언도 있었다 - 그러니 '너무' 자주, 그렇게 흔하게 당신의 사랑이나 관심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쏟아내지는 말라. 마치 커피 드립핑을 하듯 그렇게, 일부러 좀 인터벌을 두고 자신의 감정 리듬에 따라, 조금은 아니 크게 전략적으로 그렇게 당신의 애정을 상대에게 보여라. 역시 좋은 조언이었다.


작금의 내게 다행스러운 일은, 지금은 과거 어머니의 그 노심초사처럼 그리 누군가의 반응과 감정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사람은 늘 다양한 형태의 행동패턴을 보이더라 그런 것이었다.


꼭 이것만이 정답은 아닌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그런 다양한 가능성과 솔루션의 세계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이코 놓쳐버렸네, 저 유일한 해결책을! 그만 깜박했구먼 지난 번에 그리 애써서 배우고 익힌 것을! 이러지는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나는 다른 글에서 가끔은 '이레귤러 바운드' (우연한 이유로 마침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는 야구공)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전략적 혹은 전술적 목적에서라도 가끔은 이런 불규칙 바운드를 사용하면 좋다. 도움이 된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선 내 행동의 다양성을 보이는 것이 되고, 특히 그동안 상대가 이미 뻔히 꿰고 있다고 생각한 나의 행동패턴에 큰 변화를 준 것이 된다. 그가 감히 상상도 못한 그런 변화를.


이제 그는 내가 다음번에 어디서 멈추어 설 지를 쉽게 예측하지 못 한다. 그러니 매복도 불가능하고 사전 작전 계획의 수립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수확이다. 그만큼 내 존재의 희소성 또한 커진다.


사실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내 움직임에, 그 정형적인 패턴에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상대는 신선함을 느낄 것이다. 살짝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내 새로운 모습에 다시 적응하는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에게는 즐거운, 기대 가득한 번거로움이 될 것이다. 인간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그렇다. 늘 새로운 그 무엇을 찾는다.


그 옛날 한창 시절에, 한두 개면 될 넥타이를 수십 개 가지고 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우선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내게 신선함을 준다. 의미를 주고 자극을 준다. 그러니 넥타이에 지불한 가격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그 순간 그 넥타이들은. 또 나를 보는 상대방에게도 좋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 주에도, 그런데 오늘도 그 넥타이? 아마 하나 사주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의 가치는 이미 많이 떨어진다. 내가 그 오랜 시간의 직장생활 속에서 얻은 넥타이의 미학이다. 지금은 아들 녀석에게 다 물려주었다. 그만한 의미와 금전적 가치도 있는 것들이다. 아들도 좋아한다. 에르메스, 제냐...


내가 새로운 모습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는 힘들다. 그것도 자주, 주기적으로. 그러나 적어도 내가 '희소성'의 가치와 의미를, 그 전략적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내게 늘 새로운 모습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일상 속의 마케팅적 희소성의 개념이다.


어느 작가님 말처럼 무한한 나의 감정이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힘써서 절제하고 조절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두 번은 써먹을 좋은 수다. 이것 또한 자주는 말고. 그 순간 바로 그 희소성은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즘도 나는 아주 '예쁘게 빨간색'의 진 바지를 가끔 입는다. 그때 위에는 카키색 (쑥색) 야상점퍼가 좋다. 거기에 가닛색 (석류색)의 컨버스 운동화를 신지는 말자. 그건 너무 오버니까. 정장 양복 차림에 흰 운동화를 신은 것과 같다. 빡빡 머리에, 양말도 신지 않고.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히 나이 들어서는 그런 형태의 몸부림도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 먼저,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타인을 위해서. 어쩌면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자로서의 예의일 수도 있다. 상대방은 그것을 안다. "아이구 저 양반 주착이네. 저 나이에!" 이런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겪은 반응은 그렇다. 오히려 따뜻하게 본다,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살아내는 그 자세가 보기 좋다고.


오늘의 시를 본다.


1월 1일 새해 아침 찬물로 세수하며 먹었던 그 첫 마음으로 산다면? 그런 사람은 시간이 흘러 그때가 언제가 되든 늘 새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깊어지고, 그렇게 넓어진다. 시인은 자신 있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작부터 나도 불끈 힘이 솟는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그 각오와 다짐의 마음으로. 또한 처음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그렇게 떨린 마음으로 걸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그 짜릿했던 순간을 기억하며. 긴장과 걱정 속에 합격 소식을 듣고 그렇게 자랑스럽게 첫 출근을 하던 그날의 기억으로. 항상 그렇게 산다면.


한참을 아팠다가 드디어 병이 물러간 그날, 그 감사한 마음으로 늘 자신의 몸을 돌본다면. 처음 가게를 열고 첫 손님을 맞던 그 흥분 속 기억을 잊지 않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그 모든 것 다 비운 성스러운 마음으로 성당에 나간다면. 이제부터는 네가 곧 나고 내가 바로 너라고 한마음으로 다시 뭉쳤던 그날의 화해를 잊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의 늘상 새로움과, 언제나 어디서나 빛나는 그 희소성은 늘 계속될 것이라고 이 시인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큰 힘을 실어준다.


뻔한 수 조금은, 가끔은 마음 먹고 달리 해보기/너무 흔한 존재가 되지 않기/일부러라도 늘 고고하고 당당한, 꼿꼿한 몸과 마음 보여주기/그렇게 나를 희소성 가득한 귀한 존재로 포지셔닝 해나가기.


바로 맨발로 마당을 뛰어나가시던 내 어머니의 그 간절함과 반가움을 언제나 그대로 받는 내가 되는 길이다. 절제, 불규칙 바운드의 의미와 가치, 내가 나의 시장 가격을 늘 체크하며 좋은 가격 만들어가려는 노력, 내 삶을 풍성하게 하는 길이다. 희소성의 귀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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