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과 나, 삶과 나, 길고 짧음. 헤르만 헤세 '잠을 자러 가면서'
잠을 잘 자는 습관, 정말 내 몸에게 늘 내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물론 나이 든 지금도 그렇다.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정한 시각에 일어난다. 최근 10년 간 거의 바뀌지 않은 시간대이다. 밤 12시에서 새벽 2시 사이의 황금 시간대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면 상태에 있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같은 두 시간이라도 이 시간대의 2시간과 다른 시간대의 2시간은 그 수면의 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낮잠을 절대 자지 않는다. 어릴 때 빼고는 낮시간에 잠을 잔 기억은 없다. 물론 차를 타고 이동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경우는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잠에 빠지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 내게는 정말 그렇다. 낮시간 아무리 피곤했어도 하룻밤 잠을 잘 자고 나면 그 피로는 말끔하게 풀린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의 의미도 나는 실감한다. 당연 내가 미인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나는 알 것 같다. 우선 피부가 달라진다. 윤기가 나고 생기가 돈다. 푸석푸석함이 없다. 눈동자가 맑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규칙적으로 걷는다. 아침과 저녁 한 번에 30분 이상씩은 꼭 걷는다. 엄청나게 비가 오는 경우, 도저히 걷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험한 날씨인 경우,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경우 외에는 1년 내내 그렇게 걷는다. 그래야 밤에 숙면을 한다. 내 몸이 안다. 쾌변에도 물론 큰 도움을 준다.
기린은 하루에 겨우 2시간을 잔다고 한다. 서서 혹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잔다. 긴 목 그리고 포식자의 습격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코끼리바다표범도 하루에 2시간 잔다. 야생의 코끼리는 2시간, 포획 상태의 코끼리는 4-6시간 정도 잔단다. 당나귀는 하루에 3시간 잔다고 한다.
뇌의 한쪽으로만 잠을 자는 소위 '반구수면'을 하는 생물체도 있다. 고래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뇌의 반은 잠을 자고 나머지 반은 여전히 깨어 호흡활동을 하는 것이다.
고래들 중에서는 돌고래의 호흡 주기가 가장 짧다. 평균 2-5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호흡을 제일 오래 멈추는 고래는 향유고래다. 30-60분, 기록상으로는 최장 2시간까지 있단다. 새끼 돌고래들은 생후 초기 아직 수면 위 폐호흡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한 달 정도의 기간 동안에는 아주 짧은 시간 잠을 잔다고 한다. 철새들도 이동 때에는 며칠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비행을 한다. 이때 이들은 반구수면을 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최대 13시간 가량 잠을 잔다고 한다.
코알라는 하루에 최대 22시간까지 잠을 잔다. 나무늘보는 20시간 정도. 코알라의 경우 하루 24시간의 채 10%가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깨어있다는 얘기다. 글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기 위해 사는 것일까? 먹기 위해 잠깐 깨는 것이고?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 사이에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그런 삶이라면? 오히려 그래서 삶에 더 애착이 가고 큰 의미로 다가올까 그들에게는?
동면을 하는 암컷 곰의 경우는 마음이 좀 애잔하다. 1월-2월 경 동면 기간 중 새끼를 낳는다. 20센티 정도, 200-400그램, 겨울잠을 자는 어미의 젖을 빤다. 그렇게 무럭무럭 큰다. 곰의 겨울잠은 숙면 상태는 아니고 얕은 잠의 단계에 있다. 그래서 만일의 경우에는 금새 잠에서 깰 수가 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소변 대변도 없다. 동면에서 깨어난 후 제일 먼저 하는 행위가 배변이란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없었던 배변이니 당연히 극심한 변비에 고생한다. 이삼일 정도 고통 속에, 피가 나면서까지 고생을 해야 동면 후 첫 배변에 성공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겨울잠은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게임이다.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잠을 잔다. 인간의 경우에도 겨울철에는 생체 시계의 영향으로 수면 시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평생 단 한 번 있는 잠, 깨지 않는 잠, 꿈도 꾸지 않는 그런 잠, 과연 어떤 모습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그 누구도 말을 해준 적이 없는 잠. 신비의 잠인가 두려움의 잠인가? 그 잠을 자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으니...
어릴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거북이는 나이가 들어 이제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면 물속 외딴 동굴 구석진 곳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고. 코끼리 또한 숲속 깊숙한 곳에서 홀로 죽음과 마주한다고. 그래서 그들은 영물이라고. 우리 인간보다 낫다고. 물론 과학은 그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죽음을 질병이나 자연의 처분에 맡기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종족이 있다. 러시아 극동지구 최동단 축치 반도에 살고 있는 축치족이다. '축치'는 '순록을 많이 가지고 있는' 뭐 그런 뜻이란다. '진정한 사람'이라는 뜻의 '르그오라베틀엣'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어진 죽음에 대한 그들만의 특이한 관습 또는 문화가 있다. 그들은 중한 병에 걸리거나 나이가 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거나 아니면 친척이나 지인에게 자신의 삶을 끝내달라고 청을 한다. 그 부탁을 받은 사람은 이유불문, 책임지고 그 청을 들어주어야 하는 관습적인 의무가 생긴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탁한 사람 그리고 그 부탁을 받은 사람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 전체에 큰 재앙이 온다고 믿었단다.
우선은 척박한 환경의 탓이 클 것이다.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을 안기지 않으려는 뜻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내세관 또한 이런 풍습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켈르' (Kele)라는 악령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 켈르가 인간의 영혼이나 육체의 생명력을 빼앗고 그렇게 약해지게 만들어 결국은 죽게 한다고 이들은 믿는다. 질병 뿐만 아니라 노쇠함에 따른 사망도 켈르에 의한 죽음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켈르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천상에 가지 못하고 또 다른 켈르가 되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구천을 떠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중병 혹은 노쇠한 사람들의 끝을 맺어주지 않는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켈르에게 굴복한 열등한 종족'이라 여기고 멸시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명예롭게' (그저 그들 자신의 생각이고 용어다) 죽은 사람은 자기 집안의 아기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은 천상 세계로 가서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도 믿었다. 이들은 대단히 호전적이고 전쟁에서 엄청나게 용감한데 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실제로 러시아군과 중국 사람들은 이들의 이런 무조건적 용맹성으로 인해 큰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한동안 전 세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그들의 죽음에 대한 맹신적 믿음을 보는 듯하다. 그들도 그래서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잘못된 믿음이란 이처럼 무섭다.
아침이 되면 깨어나는 잠, 그리고 한번 자면 깨어나지 않는 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머지 얘기들은 읽는 여러분들이 마저 써가시면 좋겠다. 각자 자신만의 얘기를, 자기만의 문체와 필력으로, 그러나 가급적이면 아름답게 충분히 우아하게 그리고 조금은 고고하게. 결국은 둘 다 자신의 잠이니까.
오늘의 시를 본다.
그 분위기가 일전에 번역, 소개한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의 시 '저녁 노을을 보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 짧은 시 하나에서 나는 헤르만 헤세의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그의 여러 소설 속의 사상과 메시지가 그대로 이 시 안에 응축되어 있는 듯하다. 소설가 시인의 또 다른 힘이다.
잠을 자러 가면서 (Beim Schlafengehen / On Going to Sleep)
- 헤르만 헤세
하루가 나를 충분히 피곤하게 하였기에,
내 마음은 마치 지친 아이를 안아주듯
그렇게 다정게 안아줄
별이 가득한 밤을 그리워 한다.
두 손이여, 하던 모든 것을 멈추어라 ;
이마와 표정이여, 너의 모든 상념을 잊어라.
이제 내 모든 감각들은 그저 잠에
침잠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리고 이제야 더 이상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나의 영혼 또한 자유롭게
날아오르기를 바라고 있다 ;
그리하여 마법의 원 안에서 내 영혼은
깊이 그리고 천 배나 더 깊이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말 번역 - 가을에 내리는 눈, 영어 번역본을 바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