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의 1화를 보았을 때, 나는 중간중간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한 편을 다 본 뒤, 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놀라고 낯선 기분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2화를 보고 3화를 보고, 보면 볼수록 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계속해서 보게 됐다. 원래 내 계산은 하루에 한 편씩 보는 거였지만 정확히 엿새만에 시즌1,2를 모두 보았다. 그중 대부분의 날들이 가정보육 기간이었던 걸 감안했을 때, 내가 한 눈 팔 수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쥐어짜 내어 정주행 한 셈이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 어쩌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이야기를 몰입해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킬링이브>를 보는 동안 나는 완전히 내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철저히 다른 세계에 빠져들어서 현실과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딱히 내가 현실을 지긋지긋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전혀 다른 세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기분은 낯설지만 상쾌했다. 아주 재미있는 소설에 흠뻑 빠져들어 단숨에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영상은 더 쉽게 느끼게 해 주었다.
둘째로 <킬링이브>에는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없다. 물론 어떤 면에 한해서는 착하고 정의롭다. 또한 인물들 본인은 자신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믿는다. 그러나 드라마 속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아내라서, 엄마라서, 여자라서 자신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원하면 한다. 그게 은근히 통쾌하다. 어떨 땐 너무 멋대로 해서 재수가 없을 지경이다. 예를 들어 휴고와 하룻밤을 보낸 이브가 다음 날 휴고에게 보인 행동이 그렇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휴고를 이용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님을 속으로 묻어두거나 딱히 부정하려 하지 않고 휴고에게 그대로 드러낸다. 오히려 일이나 하라며 휴고를 무시하는 태도라니!(물론 그동안 휴고가 좀 짜증 나게 군 건 있지만...)
마지막으로 사람 목숨을 너무 우습게 여긴다는 점이다. 부모의 원수라거나, 그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 봤을 때 죽어도 싸다고 판단하고 죽이는 게 아니다. 필요에 의해 죽인다. 이러한 관점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빌라넬이 자신의 일(살인)에 아주 유능한 인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 잘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보이게 한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현실성을 강화시켜준다는 점이다. 드라마 전체에서 단 한 사람만이 죽는다면 그건 정말 큰 사건이자 비극이라고 느끼기 훨씬 쉽다. 각 에피소드마다 사람이 수두룩하게 죽어나가는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말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무덤덤해지고 그보다는 이브와 빌라넬의 변화와 심리묘사에 집중하게 된다. 살인을 흔하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살인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미친 세상에서 서로 닮은 두 여자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일, 늦어도 이번 주 안에 나는 시즌3를 끝내게 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이 리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