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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역사

나는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모든 일을 대충하는 편이다.

by 오공부

내가 미워하는 나의 기질 중 하나는 '대충하기' 이다. 나는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모든 일을 대충하는 편이다. 대충의 반대편에는 '꼼꼼함'과 '정확함'이 있다. 나는 그 두 가지에 많이 약하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 대충하기의 밑바닥에는 '조급함'이 숨어있는데,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이 대충하기를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더 아래에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추측한다.



대충하기의 양 옆에는 산만함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를 제대로 끝내기 전에 나의 주의는 다른 곳을 향할 때가 많아서 기존 것을 대충 마무리하고 다른 일로 옮겨가기 일쑤다. 평생을 대충하는 기질과 살다 보니 이제는 꽤 익숙하지만, 같은 일을 집중해서 꼼꼼히 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주눅이 든다.

읽던 책 빈 페이지에 (역시나) 대충 그려본 도표(라는 말 여기에 써도 되나?)



내가 기억하는 첫 '대충하기'는 8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연말 발표회에 한 친구와 연탄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나는 반주를 담당하는 낮은 건반을, 친구는 멜로디를 담당하는 높은 건반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그 곡을 연주하기 싫었는지, 너무 어려웠는지 (둘 다였던 것 같다) 도무지 연습에 집중을 못했고, 결국 곡을 거의 익히지 못했다. 선생님도 8세 꼬맹이보단 고학년들의 연습 준비가 우선이었던지 구멍(나)을 그냥 지나쳤다.



드디어 발표회 날.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곱게 하고, 나만큼 한껏 치장한 친구와 무대에 올라서 피아노를 쳤다. 물론 나는 엉망진창으로 건반을 두드렸고, 그 사실이 죽을 만큼 창피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럴 줄 알고서도 대충 연습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때의 난처함과 두려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발표회가 끝나고 내 연주가 어땠는지, 혹시나 엉터리로 친 걸 눈치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용기도 내지 못했다. 몇 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도 내 인생 최초의 흑역사라고 부를 만큼 쓰라린 기억이다. 나와 함께 연주한 그 친구는(나와 같은 대충이가 아니었다면) 열심히 연습했을 텐데, 아무리 정확한 건반을 눌렀어도 나의 제멋대로 반주에 가려졌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그래서인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그땐 정말 미안했어, 정연아...



아무튼 그래서(대충 마무리 시전 중), 나의 대충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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