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는 '언니'라는 두 글자가 붙지 않는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이 처음으로 내게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호칭은 제대로 해야지. 한 살 차이여도 언니는 언니라고 불러야 돼."
하지만 평생 친구처럼 지내온 사람을 갑자기 '언니'라 부르려니 오히려 더 낯설었다.
언니도 내가 그렇게 부르면 무슨 부탁이 있나 싶어 어색하다고 했다.
우리는 한 살 차이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길을 걸었다. 언니는 키가 크고 피부도 좋았다. 나보다 예뻐서 늘 자랑스러웠다. 이상하게도 그런 외모에 대해서는 질투가 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다른 데서 질투를 느꼈다.
언니가 친구들과 더 가까워 보일 때, 사촌동생을 유난히 귀여워할 때, 나 혼자만 소외된 듯 서운했다.
그럴 때면 괜히 더 집착하며 '내 언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질투가 결국 언니를 좋아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내게 든든한 존재였다. 초등학교시절 같은 반 남자아이가 나를 괴롭혔을 때, 언니는 우리 반으로 찾아와 그 아이를 혼쭐 내주었다.
그날의 언니는 형처럼 강했다.
우리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드물었으니 다툼도 잦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같은 편이 되곤 했다.
우리는 지금도 관심사가 겹친다. 언니가 귀여운 인형을 사 오면 나도 관심이 생기고, 내가 웃긴 영상을 보여주면 언니는 어느새 구독을 누른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인형과 동물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우리는 환갑이 되어서도 이러고 놀 거야."
언젠가 농담처럼 했던 말은 아직 유효하다.
어릴 적 집안이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님이 다투던 밤마다, 언니는 옆에 내가 있어서 덜 외로웠다고 했다. 같은 불행 속에서 서로를 본 것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돌아보면 내게는 태어나서 언니가 없던 순간이 없었다. 언니 또한 늘 곁에 내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둘도 없는 친구였다.
호칭은 여전히 '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호칭보다 오래가는 건 따로 있다. 함께 웃으며 같은 것을 좋아하고, 질투와 집착까지 지나온 끝에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마음이다. 아마 환갑이 되어도 우리는 작은 인형을 손에 들고 웃으며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야, 이거 봐. 귀엽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