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에세이를 읽을 때면 가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온다.
가까움과 멀어짐.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의 글은 지극히 사소한 일상을 빛나게 만들었다. 차 한 잔, 산책, 우연히 마주친 꽃 한 송이까지도 글 속에서는 고운 결을 띠었다.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곧 멀어지기도 했다.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강의하며, 고전이 된 작가들을 실제로 스승과 친구로 두었던 그의 삶은 흥미롭지만 열 걸음쯤은 뒤로 물러선 듯한 거리감이 생겼다.
그러다가도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소중히 여기며,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평범한 모습에서 나는 다시 그와 가까워지기도 했다.
책을 선물하고, 함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꽃과 편지를 주고받는 삶. 내게는 오래된 로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편은 아마 평생 이런 수필집을 펼쳐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와 이런 감성을 공유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남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 곁에 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그는 장난스럽게 다가와 내 허벅지에 발바닥을 비볐다.
길이가 같다며 깔깔 웃는 그 모습에 나는 피천득의 세계에서 단숨에 현실로 돌아왔다.
책 이야기도, 낭만적인 손편지도 우리 사이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꼭 같은 취향을 공유해야만 단단해지는 건 아닌듯하다.
나는 그와 함께 지내며 '이상은 이상으로 남기는 관대함'을 배웠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남편이 보내오는 강아지나 고양이 사진이, 그에게는 마음을 담은 손편지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세계는 피천득의 수필이 그려낸 이상적인 세계와는 다르다.
그러나 나의 노트에는 오늘의 생활이 또 다른 풍경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