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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18. 2015

마감, 그 후

최악의 마감을 끝내고 나면

고통스러운 날들이여 이제 안녕!

마감. 드디어 끝났다. 지금까지 많은 ‘마감’을 경험했지만 이번 ‘마감’은 정말 ‘최악’이었다. 끝으로 치달을수록 내 육체와 정신도 한계를 향해 질주했다. 마지막 일주일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개탄하고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마감’에 밀려 참고 참고 또 참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일’에만 매진했다. 어느새 난 의자와 함께 일체형 번역 인간이 되어 있었다. 


안 자고 몇 시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의자에서 몇 시간까지 앉아 있을 수 있을까? 배고픔을 몇 시간까지 참을 수 있을까? 안 씻고 며칠까지 참을 수 있을까? 하루에 몇 장까지 번역할 수 있을까? 인체실험을 진행하듯 하루하루 나의 한계를 확인하며, 몇 번의 신기록을 달성했고, 끝까지 버텨냈다. 그래, 역시 모든 ‘마감’은 지나가게 되어있다. 세상에 끝이 없는 일이란 없으니까. 가장 먼저 나는 서른 시간 가까이 고문당한 육체를 의자에서 분리하여 욕실로 데려가 씻기고 따뜻한 커피를 대령했다. 고생했다. 잘 버텼다. 


항상 ‘마감’을 하면 ‘승리감’과 ‘패배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잘 마치고 결과물을 손에 넣었으니 ‘승리’했지만, 늘 마감에 쫓기며 엉망이 된 생활과 망가진 육체, 황폐해진 정신 상태를 돌아보면 ‘패배’한 기분이다. 거대한 폭풍이 다가온다는 걸 알면서도 철저히  대비하지 못했고, 직격타를 맞았다. 내 탓이다. 나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다. 


허탈하다. 해방을 꿈꿨지만 막상 경계를 넘으니 알맹이는 쏙 빠져나가고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영혼이 나를 맞이한다. 오래 기다리다 미라처럼 말라버린 너.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뒀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곧 다시 채워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아주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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