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뷰를 도둑맞았다
일산화탄소 경보기의 폭발적인 판매는 10월에 시작되어 12월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항상 그림자가 따르는 법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상품 앞에서 가만히 있을 온라인 셀러들이 어디 있겠는가.
급격한 판매 증가는 필연적으로 급격한 경쟁업체 증가를 불러왔다. 공급업체에서도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곳저곳에 제품을 공급해 주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의 비밀 아이템이었던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어느새 많은 온라인 셀러가 아는 대중 상품이 되어버렸다.
한 달 사이에 경쟁업체는 열 개에서 스무 개로, 스무 개에서 쉰 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네이버 쇼핑에서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검색하면 마치 복사라도 한 듯 똑같은 상품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다행히 공급업체에서 최소 판매가격을 관리해 줘서 마진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쟁자가 늘어나니 판매량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100건씩 팔리던 상품이 점차 50건, 30건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나만의 상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쟁업체들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는지 얼마나 판매하고 있는지 매일같이 모니터링했다. 상세페이지 구성은 어떻게 했는지, 가격은 얼마로 책정했는지, 고객 응대는 어떻게 하는지 혹시나 벤치마킹할 게 있나 찾아보았다. 그런데 신규로 진입한 한 업체의 상세페이지를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고객 리뷰를 캡처하여 상세페이지에 홍보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리뷰가 왠지 낯익었다.
"어? 이 리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건 바로 우리 쇼핑몰 고객이 써준 리뷰였다. 당시 나는 모든 고객 리뷰를 직접 읽고 일일이 감사 댓글을 달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리뷰들은 사진까지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특히 하나의 리뷰는 기억에 선명했다.
"정말 생명을 구해준 제품입니다. 지난주 캠핑을 갔는데 새벽에 경보기가 울려서 깜짝 놀라 일어났어요. 급히 환기를 시켰더니 정말 아찔했습니다. 만약 경보기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꼭 필요한 제품인 것 같습니다. 강력 추천!"
이 리뷰를 남긴 고객을 기억했다. 주문 직후 사용법을 문의하는 전화까지 걸어왔던 분이었다. "처음 사용해 보는 거라 혹시 주의사항이 있나요?"라며 꼼꼼히 물어보던 목소리가 생생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후기를 경쟁업체가 마치 자신들 고객의 리뷰인 양 버젓이 도용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에 피가 올랐다. 아무리 온라인 쇼핑몰이 '이놈 저놈 다 할 수 있는' 시장이라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했다. 고객이 진심으로 써준 후기를 훔쳐다 쓰다니.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건가? 하지만 분노와 동시에 당황스러움도 밀려왔다. 이런 일은 처음 겪어보는 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바로 전화를 걸어서 따져야 할까? 문자 메시지로 경고를 보낼까? 이메일이 더 공식적일까? 세게 나가야 할까, 아니면 부드럽게 설득해 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몇 바퀴 돌며 생각을 정리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봤다. 지적재산권, 저작권, 초상권... 관련 법령들을 검색해 봤지만 내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공식적인 경고 메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전화나 문자보다는 증거가 남는 이메일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메일을 써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어떤 톤으로 써야 할까? 너무 강하게 나가면 괜한 적대감만 키울 수 있고, 너무 약하게 나가면 우습게 볼 수도 있었다. 결론은 내용증명인 듯 아닌 듯 보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내용증명 샘플들을 찾아보며 참고했다. 블로그를 뒤지고, 유사한 사례들의 대응 방법을 찾아봤다. 키보드 앞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하게 작성했다.
수신: ○○○스토어 아무개님
발신: ○○○스토어 담당자 xxx
제목: 고객 리뷰 무단 도용 관련 경고
귀사의 익일 번창하심을 기원합니다.
당사는 금일 귀사의 일산화탄소 경보기 제품 상세페이지에서 당사 고객이 작성한 제품 리뷰를 무단 도용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리뷰는 당사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고객의 동의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권리 침해에 해당합니다. 이는 민법상 불법행위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소지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금일 중으로 해당 내용의 삭제를 요청하며, 만약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내용증명 발송 및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임을 알립니다.
당사는 귀사와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원하지 않으며, 빠른 시일 내에 자진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뭔가 어색했다. 너무 딱딱한가? 아니면 너무 약한가? 몇 번이고 수정을 거듭했다.
사실 정말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내용증명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고,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률 용어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짜깁기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빠른 조치를 취하리라 기대했다. 동시에 속으로는 '만약 내 메일을 무시하면 정말로 다음 단계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상대방의 답변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날 저녁 9시쯤, 해당 업체에서 답변이 왔다.
"안녕하세요. 메일 확인했습니다. 직원의 실수로 발생한 일로, 즉시 삭제 조치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간단명료한 답변이었다. 확인해 보니 정말로 상세페이지에서 우리 고객의 리뷰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역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양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건 이후로 경쟁업체들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안 되는 업체들을 매일같이 체크했다. 상세페이지는 어떻게 구성했는지, 가격은 얼마로 책정했는지, 혹시 또 우리 콘텐츠를 도용하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하지만 경쟁업체가 열 개에서 스무 개로, 스무 개에서 쉰 개로 늘어나자 더 이상 일일이 챙겨볼 수 없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때 깨달았다. 경쟁업체를 견제하는 데 시간을 쓸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하나라도 더 팔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새로운 상품을 발굴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것을.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경쟁업체가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공급업체에서 최소 판매가격을 관리해 줘서 어느 정도 마진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준을 무시하는 업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업체는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가격을 내렸다. 아마도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미끼 상품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다른 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따라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치킨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먼저 포기하느냐의 싸움이었다. 다행히 공급사에 가격 미 준수 업체에 공급을 중단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이후에도 최저 판매가를 무시하는 업체는 수시로 생겨났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온라인 쇼핑몰 시장에서 상도덕을 기대하는 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리뷰 도용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상품 사진을 그대로 베끼는 업체, 상세페이지를 통째로 복사하는 업체, 심지어 브랜드명까지 비슷하게 만드는 업체까지. 처음에는 일일이 대응했지만, 나중에는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일에 에너지를 쏟을 바에는 차라리 더 좋은 상품을 발굴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500만 원의 하루 매출로 시작된 달콤한 꿈은 불과 세 달 만에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대한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다.
첫째, 아무리 잘 팔리는 상품이라도 독점할 수는 없다.
둘째, 경쟁자가 늘어나면 결국 가격 경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셋째, 온라인 시장에서는 상도덕보다는 실리가 우선한다.
넷째, 무엇보다 나만의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교훈 하나. 경쟁자를 견제하는 데 시간을 쏟지 말고, 그 시간에 더 나은 나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경험들이 모두 값진 자산이 되었다. 비록 일산화탄소 경보기로는 더 이상 큰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온라인 비즈니스의 냉혹한 현실과 생존 법칙들은 이후 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