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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공장

종이신문의 용도는 그기 아인데요

by 오분레터

요즘 즐겨보는 예능이 있다. 나 혼자 산다. 거의 초창기 때부터 한 회도 놓치지 않고 봐 온 프로다. 지난주는 뮤지컬 배우 카이가 나왔다. 카이? 그게 누군데? 내가 아는 카이는 경남 사천에서 전투기 만드는 KAI뿐인데, 아, 미안하다. 그날 방송에서 카이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봤더니, 현관문을 열고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게 바로 종이 신문이었다.


헉, 요즘 세상에 아직도 종이 신문 보는 사람이 있다니, 고인 물이군.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반가움이 마음 한켠에 자리했다.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이 그립기도 하니까.


신문이라니… 갑자기 재수생 시절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배달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오토바이 운전도 못 했고(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항상 자전거에 의지했다. 힘들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부수를 돌릴 수 없었고, 그만큼 벌이도 적었다.


한 달에 십만 원 정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적은 돈이지만, 그 시절엔 그 10만 원이 전부였다. 겨울 새벽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벌었던 그 돈에는 청춘의 땀과 숨이 배어 있었다.


잠시 추억 여행을 떠나보았다. 미안하다. 돌아보면 회상은 늘 아련하고 조금은 씁쓸하다. 그때 그 시간은 내 인생 한 페이지의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참고로 나는 지금도 신문을 구독 중이다. 다만 종이신문이 아니라 e신문이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이 문 앞에 배달되는 기쁨은 누리지 못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과 PC로 신문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편리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런 편리함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건 결국 언제든 안 봐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e신문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읽지 않는 순간 e신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반면 종이 신문은 다르다. 정말 급할 땐 화장실에서 마지막 손길까지 책임져 줄 수도 있으니까(요즘 MZ는 이 부분에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그런 경험 한두 번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구독하는 e신문은 다음 달이면 구독이 종료된다. 그리고 다시 종이 신문으로 돌아가려 한다(화장실 용도 때문은 절대 아니다). 종이 신문을 다시 품에 안을 생각을 하니 설레인다. 나란 사람... 있어빌리티.


사실 신문을 자세히 읽는 편은 아니다. 하루에 기사 하나, 기껏해야 한 꼭지 정도 읽는다. 그래도 그 하나가 그날 하루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신문 한 부가 대략 500원 정도? 그 500원어치의 알짜배기 읽을거리를 건지면 성공이라 생각한다.


또 혹시 모른다. 글감이라도 하나 건질지. <생각의 쓰임>을 쓴 생각노트 작가도 매일 신문에서 글감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소한 연결고리가 참 소중하다. 나도 한번 그 물꼬를 터 보려 한다.


아날로그의 촉감과 냄새, 거기에 담긴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디지털 시대가 아무리 편리해도 종이 신문의 감성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신문 한 부를 펼쳐 들고 커피 한 잔과 마주 앉을 그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e신문 앱을 켠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종이 신문 한 부가 기다리고 있다.


아, 설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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