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숨의 기록들
피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과 달리, 엄마에 관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엄마에 관해 무언가 쓰겠다는 욕망을 강렬히 느낀 적도 없었다. 사춘기 이후 엄마와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녹아든 것도, 혹은 뭉개져 기억 속에 사라진 일들도 많으니까.
확실한 것은, 바다의 썰물과 밀물이 순환하듯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도 빠지고 차오르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10대의 끝자락에 늦게 온 사춘기부터 조금씩 시작된 썰물의 시간은 20대,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한 그 시간 동안 지속됐다. 그 시간 동안 엄마와의 사이에는 언제나 종이 한 장의 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 한 장 때문에, 전달되지 못한 전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말하지 못한 감정, 혹은 말하지 않았던 일,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마음. 서로의 진심은 종이 위에서만 겉돌았던 것 같다. 그렇게 종이 위에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쌓였다.
학업과 밥벌이로 집을 떠나 대도시로 오면서, 입맛도 자극적인 외식과 편의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바뀐 입맛으로 살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새로운 맛들도 지겨운 끼니가 되어 집밥이 다시 그리워질 무렵, 나는 엄마의 식탁으로 돌아갔다. 그 식탁에서, 마침내 나는 그 종이 한 장의 벽을 바다에 녹여냈다.
그 종이를 녹여낸 건, 또 다른 종이였다.
어린 날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들, 그 종이 묶음은 나를 다시 바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한 장 한 장, 묵혀둔 종이의 냄새와 활자의 의미들이 새롭게 느껴졌을 때, 엄마의 종이들은 바다에 녹아 용존 산소가 되었다. 그때서야 물 위로 머리를 내밀어 오래 참았던 숨을 들이마셨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그 벽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다만 나와 엄마가 같은 바다 위에서 다른 파도를 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