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파도의 근원이다.
그 어떤 움직임도 뿌리 없이 자라날 수 없듯, 바다 없이 파도는 존재할 수 없다. 바다 위 파동과 바람, 조류, 그리고 달의 끌림이 파도를 만들어낸다. 바다의 깊이는 파도의 높낮이와 탯줄처럼 연결되어 파도로 유전된다.
파도는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늘 바다를 떠나려는 힘을 품고 있다. 그것도 어쩌면 생의 본능일 것이다. 썰물과 밀물을 거쳐 결국 바다로 돌아가, 자신도 바다가 되는 운명을 지녔다.
바다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그 인식이, 파도가 자유롭지만, 바다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는 운명을 만들었다.
끝없는 순환 속에서, 파도는 자신의 독립성을 꿈꾸지만 동시에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국 자신도 근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엄마와 딸은 바다와 파도를 닮았다.
엄마가 바다라면, 딸은 파도다.
딸은 세상으로 흘러 나아가고, 때론 부서지고, 융기하고 침강하며 자신의 길을 간다. 그러나 그 모든 움직임의 근원에는 바다가 있다. 딸의 움직임은 언제나 엄마의 존재를 닮는다. 엄마의 품에서 배운 것들은 파도의 물결처럼 딸에게 흐르고, 또 딸의 몸과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딸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동안, 엄마는 파도의 속도를 조절하는 바람이 되었다가, 혹은 조류가 된다. 멀리 떠난 파도가 아무리 강하게 밀려도 결국 바다로 돌아올 것임을, 바다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처럼 딸도 어느 순간 모든 물결과 속도를 잊고, 스스로의 근원을 찾아 돌아올 것이다.
딸이 거친 파도처럼 부딪혀 돌아올 때도, 잔잔히 머무를 때도 엄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파도와 바다가 매번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처럼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다는 결코 파도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저 때를 기다릴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파도는 바다를 닮아간다. 어느 순간 파도는 바다의 일부가 되고, 그렇게 딸도 엄마를 닮아 간다.
바다와 파도의 그 탯줄 같은 연결 속에 파도는 바다와 함께 호흡하고, 엄마와 딸도 서로의 숨결 속에 살아간다.
파도는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순환의 시작이자, 새로운 물결의 준비로. 엄마와 딸도 그렇게 떠나고, 부딪히고, 흩어지고 또다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