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그리고 파도
엄마와 나는 바다의 딸들이었다.
내가 보고 자란 바다는 엄마가 보고 자란 바다와 같았다. 우리가 자랐던 바다는 통영의 바다였다. 동양의 나폴리, 혹은 예향(藝鄕)으로 불리던 곳. 통영의 바다는 동해, 서해의 그것과 달랐다. 모든 바다의 시선에 섬이 걸려있었다.
통영의 바다는 지각을 들어 올리고 섬을 빚어내고, 해안선을 침수시켜 사라지게도 하면서 풍경을 만들어냈다. 섬들은 바람을 막아내고 동시에 파도의 길이 되어주었다. 계절마다 섬에는 꽃이 피고, 싹이 올라와 잎이 돋았다가 또 낙엽으로 흩날렸다. 바다는 성실히 그 모든 장면의 섬을 비추고, 물빛을 바꿔냈다. 굴곡진 해안선은 수많은 만과 곶을 만들어내어 복잡한 길을 만들었지만, 결국 모든 물길은 하나의 큰 바다로 모여들었다. 마치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삶의 도식처럼.
그래서 자세히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는 바다였다.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엮여 다도해를 이루고, 부산스러운 듯 빽빽하게 자리한 그 섬들은 바다의 풍경 위에 질감을 더했다. 그래서 오히려 멀리, 혹은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드는 바다였다.
바다가 품은 도시는 늘 윤슬로 반짝이고, 골목마다 해륙풍이 스며들었다. 소금기 어린 대기와 항구에는 늘 배의 기적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파도에 씻긴 조개껍데기와 고둥 껍데기는 모래사장의 윤슬이었다.
등하굣길, 출퇴근길에도 바다는 늘 시야에 있었다. 코발트블루의 바닷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생의 터전을 내어주고, 마음의 낭만을 채워주었다. 언제나 파랑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청춘이 자라나고, 또 청춘을 키워냈다.
엄마는 그 바다에서 소녀가 되고, 또 아가씨가 되고, 엄마가 됐다. 나는 그 바다에서, 엄마 품에서 어린이가 되고, 또 소녀가 됐다. 엄마와 나의 유년은 스물여덟 해의 시간의 차이를 두고 같은 공간에서 이어졌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개체의 발생은 계통의 발생을 반복하듯 딸의 생애주기도 엄마의 고향에서 반복됐다. 마치 생명의 순환처럼, 모태에서 흘러나온 것이 자식에게 이어지듯, 알게 모르게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갔다.
그 사이 수천 번의 만조와 간조가 반복됐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바다는 한 번도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세월의 간격이 있었지만, 우리가 본 바다는 언제나 초록의, 혹은 파랑의 물빛이었다. 바다는 그 자리에 있었고, 바람과 비, 햇볕과 계절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같은 풍경을 다른 세대에게 건네주었다.
엄마의 기억 속 바다가 곧 나의 기억 속 바다가 되었고, 엄마가 서 있던 해안선 위에 나도 똑같이 서 있었다. 어쩌면 통영 앞바다는 세대를 이어줬던 매개였는지도 모르겠다.
섬이 걸린 바다를 보면 통영이, 그리고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여전히 나의 바다이고, 나는 엄마의 품에서 마음껏 파도가 되었으니까.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배운 것들, 엄마가 나를 키워낸 것들은 바다에 녹아 있다.
엄마, 나 그리고 바다 셋의 이야기도. 바다가 없었더라면, 쓰지 못할 이야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