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그리고 파도
1999년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 엄마하고 뒤를 따라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학년이 되었구나.
요즘 동생 돌보고 놀아주느라 힘들지?
그래도 엄마가 요즘에 우리 딸을 보면 대견스러울 때가 많단다.
희은이랑 싸우기도 하지만, 많이 놀아주어 엄마는 고맙게 생각한단다.
지금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책을 많이 읽길 바란다.
그러면 3학년, 4학년이 되어도 걱정 없을 거야.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너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사랑하는 우리 딸을 믿는다. 파이팅!
-사랑하는 엄마가
엄마는 동네에 하나 있던 기와집의 여섯 딸 중 둘째였다. 엄마는 언니와 밑으로 동생이 넷, 나에겐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하나. 엄마의 자매들처럼, 나와 동생도 붙었다가 떨어지고, 또 같이 놀다가도 투닥거렸다. 나의 유년은 아파트 단지의 10층이었지만, 집 근처에 조금 걸어 나가면 바다가 있다는 것은 엄마와 같았다.
엄마가 어렸을 땐 친구들과 고둥도 잡으러 가고, 바위틈에서 낙지를 잡았다고도 했다. 해초가 많은 곳을 들추면 해삼이 그렇게나 많아서 주워 올 정도였다고도 하면서. 바다와 자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엄마는, 늘 같아 보이는 바다의 파랑을 구별해냈다. 에메랄드빛의 여름 바다와 코끝이 시 새파란 겨울 바다의 차이를.
엄마는 계절마다 우리를 데리고 추억을 만들었다. 봄이면 나와 동생을 데리고 산과 들로 갔다. 엄마의 발걸음을 따라 오르는 산은 신기함 투성이였다. 작은 약수터에서 돌 틈사이 흘러나오는 차가운 약수를 마셔보기도 하고, 풀숲의 숨어있던 풀벌레에 놀라기도 하고.
연둣빛 새싹들 사이 이른 분홍인 진달래를 따다 화전도 해 먹었다. 할머니의 찹쌀 화전은 엄마를 거쳐 나에게로 내려왔다. 어린 눈에 비슷했던 분홍색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것도, 엄마가 알려주었다. 작은 텃밭에 핀 노란색 별들이 호박이 된다는 것도, 대파에 하얀 꽃이 핀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여름의 바다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바다였다. 여름방학이면 사촌들이 함께 모여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곤 했다. 입술은 파래지고, 손은 염분에 쪼그라들었지만, 행복은 부풀었던 시간. 온몸에 모래사장의 모래를 다 묻히고서, 물놀이 후 엄마와 이모가 끓여주는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 갯벌로 꽃게를 잡으러 갔던 날이었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셋이 함께. 작은 종이컵과 나무젓가락이 비장의 채집 도구였다. 수많은 생명을 품은 갯벌의 숨구멍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고, 그 공기 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물 위에 퍼졌다.
손톱 크기 남짓한 게들은 너무 빨라서 번번이 놓치곤 했다. 엄마가 대신 잡아 준, 작은 손 위에 더 작은 게를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미세한 움직임을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운 좋은 날에는 작은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동생과 나는 물고기의 비상을 신기해했다. 집에 가자는 엄마를 붙잡고 언제 비상할지 모르는 물고기를 기다리곤 했으니까. 그날 하루 하늘을 가르는 물고기는 꿈에도 나왔던 것 같다.
갯벌에 가득한 생명과 바람, 파도 소리, 그리고 엄마와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에 쌓이는 순간이었다.
생명도 그렇게 바다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