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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달 Jul 13. 2023

꼭대기 끝 집

하늘을 올려보는 낭만이 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때부터 몇 번씩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내 기억의 시작에 있는 집은 꼭대기 5층이다. 유치원을 다닐 때.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철제 계단이 우리 집 철문 옆에 있어서 올라가면 어떨까 너무나 궁금했지만, 부모님의 엄한 으름장에 나는 철제 계단에 손댈 생각도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꼭대기 층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냇가에서 가져온 개구리알을 문 앞에 두고 길렀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개구리알이 올챙이로 변하고 뒷다리, 앞다리가 나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점점 개구리의 모습을 갖춘다고 생각할 때쯤 어항이 텅 비어버렸다. 


촉촉하고 물렁한 개구리가 어항을 떠나 맨 처음 점프했을 때 마주한 건 딱딱한 계단일 텐데 아프지 않았을까. 게다가 우리 집은 꼭대기 층이라 1층에서 제일 멀어 작디작은 개구리가 건물을 빠져나가려면 힘들 텐데. 그 생각에 집 앞에서 계단을 샅샅이 뒤지며 다시 내려가기도 했다.


이사를 떠나 들어간 집도 5층 꼭대기였다. 활달하게 뛰어다는 게 즐거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올라갈 땐 동생과 내기하듯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은 기본이고 세 칸, 네 칸... 다리를 최대한 벌려 한 두 번 만에 반층을 올라가길 즐겼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일곱 칸 정도를 훌쩍 점프해 내려가면 발바닥이 찌르르했지만 그 짜릿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녁시간에 집에 들어갈 때면 용기를 내야 했다. 도로엔 어스름한 가로등이라도 있었지 아파트 계단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층마다 설치된 낡은 센서등은 내가 너무 재빠르면 인식하지 못했고 불이 밝혀져도 금방 꺼져버렸다.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쉬지 않고 5층까지 올라 문 앞에서 겨우 숨을 가다듬으며 집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지금의 15층 꼭대기 끝 집에 들어왔다. 우리는 어떻게 꼭대기 층만 살지! 신기하고 자부심이 생겼었다. 꼭대기 층은 제일 높으니까. 하늘을 편하게 우러러보기도 좋고 바람이 잘 통했다. 여름엔 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왱왱 울다가기도 했고 동네 까치도 이른 아침 난간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K-장녀라면 무릇 현관 옆 엘리베이터에 맞닿은 그 방을 써야 마땅했겠지만 당시 나는 남동생보다 몸집도 크고 말도 잘해서 부엌 옆 안쪽 방을 내 방으로 잡았다. 베란다가 딸려 있어 속상한 일이 생기면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며 소리 없이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아 겨울엔 방안에서도 코끝이 시렸지만 그래도 손을 뻗으면 내리는 눈을 잡을 수 있는 창이 있어 행복했다. 


나이를 먹어 보니 우리 가족이 사는 꼭대기 집은 아파트 안에서도 가장 저렴한 집이었다. 통장 사정이 허락하는 유일한 집. 기피되는 만큼 단점도 분명했지만 나의 생활은 꼭대기 층에 맞춰져 있어서 답답한 적 없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 가졌던 그 자부심이 보물찾기 하듯 날 찾아왔다. 층고가 높네? 층간소음이 전혀 없어. 집에 들어올 때 계단 오르기 운동하기 좋지. 집 안에서 벌레를 본 적 없는 걸?


그래서 내가 독립을 한다면 또다시 꼭대기 층을 골라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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