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피로사회>를 읽고 : 거룩한 쉼을 위하여

20251212

by 오윤호

1. 김제동의 시대, 서장훈의 시대

갓생에서 욜로(YOLO), 다시 갓생에서 힐링, 그리고 또다시 갓생으로. 지난 10여 년간 유행은 강산보다 더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김제동이 “살아있는 것만으로 소중하다”라고 말하며 우리를 울컥하게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장훈이 “고통 없는 성공은 거짓”이라며 조금의 쉼마저 나무라는 시대가 되었다.


이 숨 가쁜 유행의 파도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스스로에게 가하는 ‘고통’의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옥죄는 이 고통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고통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나는, 과연 온전히 주체적인 인간인 걸까?


2. "야 너도 할 수 있어"... 정말...?

요즘 내 고민의 중심에는 ‘주체성’이라는 단어가 있다. 피 튀기는 취업 전선과 과거의 학력 경쟁 속에서, 내 자존감은 몇 번이고 무너져 내렸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라는데, 왜 나는 내 마음대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피로사회>는 그런 나에게 차가운 위로를 건넨다. 우리가 믿어 온 ‘주체성’이란 사실 20세기 규율사회에서 21세기 성과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착취의 장치일 뿐이라고.

성과사회에서의 착취는 "너는 노예야"라고 말하는 부정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야 너도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언어다. '갓생'을 사는 이들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성공’이라는 골인 지점을 향해 스스로를 불태운다. 저자 한병철은 이를 두고, ‘각자가 자기 안에 노동수용소를 하나씩 달고 사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이 수용소가 무서운 건, 감독관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감시하고, 내가 나를 채찍질한다. 나는 가해자이자 희생자이다. 이로써 우리는 주체적이라는 착각 속에서, 호소할 곳조차 없는 자기 착취에 빠지게 된다.


3. 자유의 함정, 자조의 굴레

성과사회의 착취가 규율사회의 착취보다 비겁한 것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자유롭다는 착각을 주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 이들을 ‘무능력한 낙오자’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은둔과 고립, 우울증과 번아웃에 빠진다.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성과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높은 자살률과 수십만 명 규모의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책은 우울증을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질병‘이자,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비극으로 규정한다.

이 비극은 우리 사회의 ‘국평오’라는 단어로도 모습을 드러낸다. “국가 평균이 겨우 5등급”이라는 세상 절반을 비웃는 표현이다. ‘좋소’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인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좋소'라고 자조하며 자기 자신을 가상의 전쟁 한복판에 내던진다. 서울권 대학은 sky를 동경하고, sky는 서울대를 동경하며 자조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을 동경하며 자신을 또 갉아먹고 좌절한다. 니체는 이들을 ‘부산한 자’라고 말하며, ‘평온의 결핍으로 인한 야만 상태’라고 비판한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한 건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당당히 멈추어 서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의 성과사회는 과거 신분제 규율사회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시와 복종이 명확했던 과거의 ‘복종적 주체’가, 이상적 자아와 자아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오늘의 ‘성과 주체’보다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 둘의 우열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어떤 사회든 우리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4. 우리에게는 당당한 쉼이 필요하다.

저자는 피로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깊은 쉼’과 ‘관조의 시간’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집에서 게임기를 켜고 뒹굴거리거나, 카페에서 친구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멍하니 파도 소리를 듣는 시간... 세상이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이라 폄하하는 이 행동들을, 우리는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신조차 세상을 만들고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해 거룩하게 쉬지 않았던가. 그렇다. 쉼은 거룩하다. 쉼을 ‘도태의 시간’으로 표현하는 성과사회의 속삭임은 우리 모두를 속이는 가짜 뉴스일 뿐이다.


5. 죄책감 없는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언가의 노예가 되면서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그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북돋우고, 생동감을 가진 채로 살아가야 한다. 비록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 착취는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타인을 갉아먹기보다, 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 웃으며 연대하는 삶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번아웃이 일상이 된 시대에, 그 뻔뻔한 선택이야말로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주체성일지도 모른다.


[추신]

이 글 보는 당신! 몸 관리하고 쉬세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