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적 긍정은 지속하는 힘이다.

by 황금지기

투자 심리 해부학 191 ~ 200투자 심리 해부학 191 ~ 200


니체는 그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에서 삶의 가장 낯설고 가혹한 문제 앞에서도 삶 자체를 긍정하며, 고유의 무한성에 환희를 느끼는 의지를 ‘디오니소스적’이라 불렀다. 투자자 역시 이 술과 축제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할 일은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며, 그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한다. 누적 수익을 의심하지 마라. 그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시간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몫은 오직 '카르페 디엠', 즉 흐름에 충실한 것뿐이다. 타인과 비교할 필요도, 손에 잡히지 않는 목표에 목맬 필요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새로워지겠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마음이 곧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실체다. 모든 타점은 오로지 확률로만 존재하기에, 아쉬움과 후회라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깨달음의 비탈길을 올라야 하는 투자자에게 이 긍정의 에너지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위대한 동력이다.


매매를 즐겨라. 시장이 주는 시련과 손실조차 성장을 위한 축제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적 수익이라는 마법은 평등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원칙을 반복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심리가 무너지면 게임은 그 지점에서 종료해야 한다. 수익을 챙기는 행위는 단순히 돈을 불리는 것을 넘어 소중한 뇌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이다. 집중력과 자제력은 모래시계의 모래와 같아서 그날의 양이 정해져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고갈되기 마련이다. 기필(期必)의 초기 진입이 아니라면, 수익을 끊임없이 챙겨 뇌의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조금 더 큰 수익을 위해 보유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


발걸음이 엉키면 넘어지듯, 제때 챙기지 못하면 매매의 흐름이 엉키고 에너지가 급속하게 고갈되며 감정조차 뒤섞여 버린다. 특히 중간에서 어설프게 진입해 버티는 행위는 뇌의 에너지를 급속도로 태워버린다. 추격과 뇌동매매라는 괴물은 보유 시간에 정비례하여 자라난다. 아무리 직관이 날카롭더라도 에너지가 떨어지면 자제력도 그만큼 사라진다. 자제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보유 시간을 줄이고, 진입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조차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조금 더 먹으려는 탐욕보다 에너지 고갈로 인한 심리적 파멸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승리하는 투자자의 ‘뇌 에너지 한정과 보존의 법칙’이다.


아쉬움은 성숙의 증거이며, 후회는 원칙의 훈장이다. 막연한 수익을 바라보며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라. 이익을 챙기는 것은 뇌의 에너지를 챙기는 것과 같다 손실을 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에너지가 충분해야 시장의 교활한 유혹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투자자가 될 수 있다.




따라가면 감정이 엉키고, 제때 챙기지 않아도 감정은 뒤엉킨다. 투자가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하루에 쏟을 수 있는 집중력과 자제력의 에너지가 너무나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인간의 뇌는 본능의 명령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추격과 뇌동매매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천천히 길게 보며 시간과 싸워야 하는 이유, 그리고 누적 수익을 통해 자신감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의 파동은 본질적으로 박스다. 박스가 길어지고 그 진폭이 커질수록, 에너지가 고갈되면 그 심리적 압박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투자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계좌의 손실이 아니라, 바로 심리적 붕괴다. 붕괴를 막기 위해 따라가지 않아야 하고, 끊임없이 챙기며 에너지를 보존해야 한다. 만약 이미 에너지가 바닥났다면 미련 없이 내일을 기약하라.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이어질 매매의 결말은 이미 비극으로 정해져 있다.


미끼 없는 바늘로 대어를 꿈꾸지 마라. 손절을 외면하거나 역진입한 채 무작정 버티며 기도하는 것은, 낚시터에서 미끼도 없는 빈 바늘을 던져놓고 고기가 물어주길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낚시꾼에게는 당연한 '미끼를 다시 끼워 던지는 수고로움'을 왜 투자자는 귀찮아하고 두려워하는가. 챙기고, 자르고, 다시 진입하는 그 번거로운 반복이 바로 당신의 에너지를 지키고 생존을 보장하는 길이다.




창작은 영감이 아니라 무거운 엉덩이가 해내는 일이다. 공부와 도전 역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자가 승리한다. 재능보다는 열정이, 막연한 기대보다는 반복적인 학습이 훨씬 더 중요하다. 창작자가 세상에 대해 열린 감각을 유지해야 하듯, 투자자 또한 시장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공하는 투자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확실한 교집합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이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남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세운 원칙에 따라 선택하고 그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그 지루한 반복은 당신의 단단한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소명이 되어 인생을 위대한 정점으로 끌어줄 것이다.


시장은 견디는 자에게 열매를 허락한다. 당신의 원칙이 비록 투박할지라도,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반복한다면 그것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무거운 엉덩이가 지금 서사를 쓰고 있다.




파동은 거대한 물결이다. 완벽했던 초기 진입점도 언제든 위협하고, 진입했던 자리까지 비정하게 되돌려놓기도 한다. 큰 물결의 방향을 읽었다면 매도는 반등할 때를 기다려야 하고, 매수는 눌림을 줄 때를 노려야 한다. 섣불리 물결을 거슬려서 추격하는 것은 욕심에 바닷물만 들이켜다 심리도 무너지게 된다. 파동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나만 두고 갈 것처럼 굴겠지만, 결국 진입점을 위협했듯 높은 확률로 다시 돌아온다. 설령 시세를 놓치더라도 뇌동하지 않은 자신을 대견해하라. 그것이 진짜 실력이다.


시장에서 가장 두려운 적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뇌동하고 추격하는 ‘자신’이다. 나쁜 습관은 주인 없는 빈집을 드나들듯 쉽게 주인 행세를 하지만, 좋은 습관은 반복과 복기 없이는 결코 자리 잡지 않는다. 주가는 예민한 들짐승과 같아서, 인간이 탐욕의 발을 담그는 순간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그것이 동물의 본능이자 시장의 생리다. 돈을 좇지 말고 오직 실력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기는 나쁜 습관이라는 잡초를 뽑아내는 호미다. 그 자리에 원칙의 나무를 심어라. 잡초는 가만히 두어도 자라지만 나무는 정성으로 길러야 한다. 실력이 돈을 앞지를 때 비로소 수익은 정착한다.




투자의 여정은 단 한 판의 결승전이 아니라,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 정규리그처럼 길게 보아야 한다. 6할의 승률이면 충분히 우승권이며, 8할이면 역사에 남을 대기록이다. 확률이 높은 쪽으로 그저 묵묵히 던지는 삶을 선택하라. 그것이 긍정적이고 편안하며, 에너지를 아끼는 행복한 승부사의 길이다. 세상만사 어차피 애매하고 성공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흐르는 강물을 보듯 시장을 대해야 한다.


파동(波動)은 그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물결일 뿐이다. 그러나 뇌동(雷同)하는 자, 즉 우레(雷)와 같은 소음에 마음을 빼앗겨 벼락에 맞은 듯 한곳에 꽂혀버린 상태로는 결코 성공을 논할 수 없다. 파동의 끝단에서 갈 것처럼 유혹해도, 물결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서 출렁이며 등락을 반복할 뿐이다. 오직 성급함이라는 보잘것없는 주관과 헛된 희망에 이끌린 마음만이 홀로 앞서 나가려 할 뿐이다. 그 성급함이 곧 뇌동이고 추격이며, 결국 날개 없는 추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레(雷)를 피하고 물결(波)을 타라. 뇌동(雷同)이란 남의 말이나 시장의 소음에 벼락 맞듯 꽂혀버리는 나약함이다. 실패는 우승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여라. 확률에 기꺼이 몸을 싣고 에너지를 보존하며 긴 리그를 완주하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자격이 주어진다.




광대가 가면 뒤에 숨어 진실한 자유를 만끽하듯, 파동 뒤에 숨어 자신의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내 안의 그 어떤 주관적 생각도, 섣부른 기대도 온데간데없어야 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고점에서 시세에 눈이 멀어 뒤쫓지 않고, 저점에서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공포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기 그릇만큼, 시장이 등락의 마디를 겸허히 취하는 절제된 자유다.


파동의 결을 그려가는 투자자는 기법이라는 편협한 잣대로 시장을 감히 예측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그저 파동 뒤에 몸을 낮춘 채, 시장이 그려 나가는 궤적을 따라 묵묵히,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시장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교만을 버리고 파동이 먼저 길을 내면 그 뒤를 조심스레 따르는 것, 내 생각이 사라진 텅 빈 자리에 시장의 무심한 흐름을 채우는 것—이것이 바로 파동 뒤에 숨어 누리는 상수의 자유다.


자아를 버리면 춤판에서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파동이 치솟을 때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고, 가라앉을 때 비관의 늪에 침잠하지 않으며 그 등락의 마디를 오롯이 취하라. '나'를 지우고 파동 뒤로 완전히 숨어들 때, 시장은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동행자가 될 것이다.




시장에 몸담는 동안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려 애쓰는 자는 연어가 되고, 결국 큰돈의 횟감이 될 뿐이다. 특히 앞고점과 앞저점에서 쌍립을 이루며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는 맥점에서 무모하게 따라붙는 행위는, 스스로 횟감이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다. 굽이치는 물결을 내 힘으로 어찌해 보려 하는 오만함, 그것이 바로 뇌동의 본질이다. 파동은 거부할 수 없는 물리학적 흐름이자 물결이다. 이미 지나간 물결을 뒤쫓거나, 마땅히 챙겨야 할 자리에서 무작정 버티며 기도하는 자는 영원히 시장의 길을 보지 못한다.


인생도 투자도 보잘것없는 주관적 시선으로 파헤치는 ‘탐사(慾思; 탐욕스러운 생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직시(直視)’의 대상이며, 흐름에 몸을 맞추어 한바탕 실컷 놀아볼 축제의 장이다. 투자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는 명확하다.


강물과 싸우지 말고 강물이 되어라. 시장에서 상처받는 이유는 물결을 거스르려는 탐욕 때문이다. 챙겨야 하는 마디에서 챙기고, 멈춰야 할 자리에서 멈추는 그 단순한 리듬이 횟감의 운명에서 당신을 구해 낼 것이다.



투자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시장의 하락이 아니라, 자기 안의 끝없이 무언가를 파헤쳐 이루려 하는 ‘탐사(慾思)’, 즉 탐욕스러운 생각들이다. 이 본능은 우리를 ‘한방’과 ‘무작정 길게’라는 뇌동의 유혹에 빠뜨리고, 쌍립의 자리에서도 따라가게 만든다. 고점과 저점 부근은 투자자에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욕심에 그저 더 갈 것 같다는 착각 속에 뛰어들고 만다.


이 굴레를 끊어야 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파동이 상방을 가리키면 ‘매수’라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반대로 온 세상이 매수해야 한다고 떠들지라도, 파동이 아니라면 조용히 귀를 막고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투자자의 확률 높은 생존 전략은 짧게 챙기며 누적 수익을 쌓아가는 ‘치고빠지기’다. 등락이 본질인 파동 속에서 확률 낮은 추세에만 꽂혀 있는 것은, 어린아이조차 비웃을 어리석음이다. ‘한방·길게·꽂힘’이라는 쪽박의 3박자에 취해 본성에 굴복하는 삶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본능을 이기는 자가 판을 지배한다. 시장은 꿈꾸는 한방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등락하는 파동의 마디마디를 성실하게 수확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상수의 매매다.




첫째,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원칙으로 정한 자리를 기다리고, 손절을 빼지 않고, 익절을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송충이인 우리에게 주어진 '솔잎'이다. 이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채 '무조건 수익이어야 한다'라는 갈잎을 탐하니, 아무리 애를 써도 하수의 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털도 안 난 게 날기부터 하려 한다.” 심리는 뇌동으로 엉망이 되고, 추격하다 넘어지기 일쑤인 상태는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새와 같다. 제 발로 걷는 법조차 익히지 못했으면서 큰 수익이라는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기를 꿈꾸고 있으니,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절망의 계곡에서 절규하는 것이다.


셋째,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작은 수익에 일희일비하던 뱁새가 심리가 무너지는 순간, 큰 추세를 먹겠다며 황새 흉내를 낸다. 자신의 그릇을 무시한 무모한 도약이 결국 가랑이를 찢고 계좌를 찢는다. 기다림에 능하고, 손절에 담담하며, 익절에 초연해지는 것—그것이 비로소 황새의 새끼라도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심리가 기본이고, 기본이 전부다. 지금 시장에서 패배하고 있다면 기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송충이의 본분을 잊고 갈잎을 탐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라는 솔잎을 씹으며 인내의 시간을 견뎌낸 자만이, 황새처럼 하늘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전 21화인간은 터무니없는 확신에 자주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