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컷·한방·역전을 노려서는 안 된다.

by 황금지기


손실 상태에서 결코 어퍼컷이나 한 방, 역전을 노려서는 절대 안 된다. 이것이 투자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생존 법칙이다. 의도한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고 난타전이 예상되거나, 시장이 강하게 쳐 주지 못해 가속도가 붙지 않을 때나 혹은 진입하자마자 한두 번의 잽(작은 손실)을 맞았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상대와의 간격을 조절하는 심법(心法), 이것이 바로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다.


만약 무리하게 역전을 노리며 버틴다면, 심리는 순식간에 꼬여버린다. 원칙은 허물어지고, 무엇보다 나쁜 습관에 통통한 살을 보태는 꼴이 된다. 투자는 섣불리 덤비는 것이 아니라, 성급함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기다림을 채워 넣는 게임이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상대의 급소를 노리되, 간격을 좁히고 들어갔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다시 물러나 호흡을 유지하는 자신과의 싸움이어야 한다.


최고의 기술은 흐트러진 호흡을 바로잡아 유지하는 것이다. 잽을 맞았는가. 그것은 잠시 물러나 간격을 유지하라는 시장의 권고다. 시장과 뒤엉켜 난타전을 벌이지 마라. 호흡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링의 주인이 될 것이다.




불현듯 타격에 눈을 뜨게 된 것이 만 31세 때 일이다. 그 겨울, 타격에 관한 기본 개념과 타법을 완전히 바꿨다. 그전까지 투수가 던지는 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정확히 맞히는 데 급급했다면 (시세를 따라다녔다면), 이적 이후에는 타격 지점을 앞으로 가져다 놓고 조금 이른 타이밍에 방망이를 내는 것에(두려움 없이 정한 자리에서 진입하는 것에) 주력했다. 투수의 공을 마중 나가듯 휘두르는 타법은 변화구에 헛스윙할 위험을 동반한다. 이 대목에서 박경수 타자는 말한다. “변화구에는 헛스윙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스윙했다.”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손실로 대응하겠다는 덤덤함이 두려움을 이겨 나간다. 직구(유리한 방향의 파동)인 줄 알고 배트를 냈는데 변화구(횡보장)가 들어오거나 배트에 맞지 않으면(방향이 틀렸다면) 헛스윙 한번 해 주면 된다. 헛스윙 세 번을 해야 삼진 아웃이며, 잘 맞은 타구도 잡힐 수 있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기도 한다. 이번 타석에서 물러나도 기다리면 다음 타석은 반드시 돌아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진리는, 시장이라는 타석에 선 투자자에게는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루킹 삼진’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원칙 존에 들어올 때까지 방망이를 아끼라. 지치는 이유는 모든 공에 안타를 치려 하기 때문이다. 공을 따라다니지 말고, 기다려라. 투자는 휘두르지 않는 한 아웃당하지 않는 유리한 게임이다.




투자자가 삼가고 삼가야 할 생각의 독버섯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터무니없는 환상의 집을 짓는 예측이다. 예측으로 쌓아 올린 성은 찰나의 파도에도 흔적 없이 쓸려나갈 모래성에 불과하다. 상수와 하수, 타짜와 노름꾼을 가르는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결정된다. 모든 나쁜 습관은 단 한 번의 터무니없는 예측에서 싹트고, 모든 몰락은 손절을 빼버리는 단 한 번의 클릭에서 시작된다. 나쁜 습관은 ‘1’이라는 시작점과 동시에 가속도가 붙어 기하급수적으로 무한대의 파멸로 질주한다.


위험 없는 수익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확률적으로 기대수익률이 높은, 안정적인 구간이 존재할 뿐이다. 손실은 짧으며 이익은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손절이 짧은 자리'에서 진입하라. 그리고 그 위험이 현실이 되는 순간(위험 > 기대수익률), 미련 없이 털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당신의 매매가 외줄 타기처럼 위태로워 보이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장의 혼돈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질서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측의 환상을 버려야 확률의 실체가 채워진다. 무너지는 근본 이유는 손절을 비껴간 '한 번'의 집착이다. 기대수익이 높은 곳에서 과감하게 진입하고, 위험이 감지될 때 신속하게 물러나는 그 단순한 질서가 노름꾼의 굴레에서 벗어나 타짜의 단계로 이끌 것이다.




아이를 제대로 기르는 법과 파동을 제대로 읽는 법이 어찌 다르겠는가. 시세는 어디로 튈지, 언제 움직일지, 또 어디에서 멈추어 횡보할지 알 수 없는,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아이와 같다. 그 생동감 넘치는 아이를 어른의 고정관념과 관습이라는 틀에 가두어 통제하려 드는 것—그것이 생각과 예측, 확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을 재단하려 드는 개미들의 투자 행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시장은 자신의 얄팍한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을 깨고 나와, 아이와 같은 순수한 시선으로 시세의 파동과 함께 뒹굴며 온전히 동화되어야 한다. 시세가 숨을 고르며 멈추면 나 또한 욕심을 멈추고, 시세가 신이 나 뛰기 시작하면 그 리듬에 맞춰 함께 뛰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일의 방향을 미리 결정짓고 고집하지 않는 ‘무심한 자유로움’이 투자의 성패를 가른다.


통제하려 들지 않을 때 비로소 시세의 마음이 보인다. 시세는 통제할 수 없는 아이와 같다. 아이의 천진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동화되는 부모의 마음으로 시장을 대하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시장의 흐름에 동화될 때, 매매는 고통을 넘어 축제가 된다.




따라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자리가 고점일 확률이 훨씬 높다. 투자는 철저하게 곡선을 그리는 파동의 리듬을 따라 진입과 청산을 반복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시세가 미친 듯이 더 치솟을 것 같은 지점에서 차분히 매매를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높은 확률로 승리한 매매다. 파동이란 개미들을 붙였다가 다시 떨 주고 제 갈 길을 가는 곡선이기에, 한 파동 보내 준 뒤 다음 진입점을 찾으면 참 잘한 매매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조금은 부족한 매매여야만 심리가 편안해지고, 쉬운 매매를 반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다.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혀 부서지듯, 파동 역시 앞고점과 앞저점이라는 경계에서 확률적으로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 방파제를 넘어서는 파도만이 다음 경계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순응하며 따라가는 투자자의 자질은 단순한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깊은 철학적 성찰의 문제다. 자꾸만 비뚤어진 욕망에 이끌려 선취매를 감행하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의 부족이며,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인격적인 문제다.


보유 시간을 줄이고 쉴 때 충분히 쉬어라. 자꾸만 고점에서 물리는 이유는 시장이 교활해서가 아니라, 욕망이 눈을 가렸기 때문이다. 파동을 선취매로 이기려 들지 말고 흐름 뒤에서 겸허히 시세의 곡선과 하나가 되어야만 풍요로운 땅으로 흘러갈 것이다.




인간은 시각적인 자극에 너무나 취약하다. 상승 파동이 길게 이어지면 시세가 영원히 오를 것만 같은 환상에 빠져 매수점만을 찾아 헤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개미들이 고점에서 '꽂히고 추격하는' 근본적인 이유이자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비극적인 약점이다. 파동은 끊임없이 등락하며 곡선을 그리는 것이 숙명이다.


바다의 파도처럼, 솟구치면 내려앉고, 몰아치면 물러나는 것이 파동의 이치다. 고점 부근에서 갈 것 같아 매수를 거듭하는 것은 낮은 확률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반복일 뿐이다. 매수하고 싶다면 저점 부근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세가 고점에서 아무리 유혹하더라도, 홀로 고독하게 파동의 곡선을 그리며 관망하는 자만이 열매의 달콤함을 즐길 수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면을 보아야 하듯, 파동 역시 지금 당장 더 것 같은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양봉에서 매도를 고민하고 음봉에서 매수를 준비하는 눌림목의 지혜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때, 보이지 않던 수익이 찾아온다. 눈앞의 잔파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전날부터 이어진 큰 흐름을 보면서 유리한 방향으로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양봉은 시장이 던지는 가장 치명적인 미끼일 수 있다.




아지랑이처럼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들기 시작할 때 단칼에 쳐내지 못하면, 순식간에 자욱한 안개가 되어 시야를 가린다. 손절을 빼고 싶은 유혹, 원칙을 어기고 싶은 조급함을 즉시 베어내지 못하면 원칙도, 파동도, 유리한 방향도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시야가 좁아진 투자자는 한참 동안 안개 속에 갇혀 ‘꽂힘’과 ‘버티기’로 일관하다가, 마침내 안개가 걷혔을 때 참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집이나 곳간을 지으려 해도 단단한 땅이 필요하고, 농사를 지으려 해도 비옥한 땅이 있어야 한다. 시장에서 우리가 일궈야 할 그 '땅'은 바로 흔들리지 않고, 안달복달하지도 않으며, 작은 이익에 연연하거나 헛된 희망에 달뜨지 않는 덤덤한 심리다. ‘조금씩’ 나아가되 ‘크게 크게’ 내다보는 그 여유로운 마음의 토양 위에 비로소 원칙이라는 곳간을 지을 수 있다.


생각의 안개가 그친 뒤에야 원칙이 수익을 수확한다. 길을 잃는 이유는 생각의 안개가 짙어지기 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다져진 마음의 땅 위에서만 원칙은 뿌리내린다.




길들어져 있지 않은가? 자문하고, 반문하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길들어짐에 익숙한 본성에 머무는 자가 하수이고, 본성의 알을 깨고 비상하고 있는 자가 상수이고, 인간의 나약함을 넘어 끊임없이 비상하고자 했던 니체의 초인이다.


범인은 한없이 오를 것처럼 유혹하는 파동에 돼지처럼 탐욕을 부리다 꺾이면, 다른 시작점이 나옴에도 메뚜기처럼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손절을 빼고 물을 타며 버틴다. 박스권에서는 우왕좌왕하는 순한 양이 되었다가, 지치면 상·하단에서 추격하는 토끼가 되며, 정작 거대한 추세의 고속버스가 출발할 때는 머뭇거리다 후회와 아쉬움에 이성을 잃고 만다. 시각적인 것에 금방 익숙해지는 인간은 이미 보인 후에야 알아차리고, 남들이 다 알아챌 때쯤 뒤늦게 가격에 꽂혀 버티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익숙했던 것들의 무게가 줄어야 비상할 수 있다. 상수는 이러한 시각적 약점을 극복하고 파동의 본질을 이해한 자다.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실패와 고행을 거친 자에게는 현상만이 남지만, 범인에게는 본질을 가리는 욕심만이 남는다. 하수는 고점 매수와 저점 매도라는 최악의 자리만 피하며 기다려도, 중수는 박스권을 견뎌내고 급등락장만 걸러내며 기다려도 도약할 수 있다. 확신이 들 때는 오히려 시장이 파 놓은 함정일 확률이 높다.




불리한 상황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빠져나올 수 있느냐가 투자 심리의 승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평가 수익이 계좌에 찍힐 때의 기분에 취해있다가, 확정 짓지 않고 멍하니 즐기다가는 시장의 어퍼컷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줘도 못 먹고 뺏기게 될 때’ 찾아오는 심리적 타격은 뇌동매매로 이어지는 엄청난 발화점이 되기에, 언제나 ‘전체 파동의 반만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챙기며 가야 살아남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더 못 챙겨서 오는 아쉬움이, 다 뺏겨서 빠지는 후회의 늪보다 백번 낫기 때문이다.


한두 대 가벼운 잽을 맞았을 때는 언제든 잽싸게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오기나 아집으로 버티다 제대로 한 방을 맞아 손실이 커지면, 빠져나오고 싶어도 몸이 굳어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극단의 확률에 기대어 ‘역전 어퍼컷’을 노리다 끝장 매매로 비명횡사하는 것이 범인의 경로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덤벼드는 무모함을 버리고, 손실 상태에서 짧게 빨리 벗어날 수만 있다면 시장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멈출 줄 알아야 파동의 주인이 된다. 파동은 결국 수렴과 발산, 마루와 골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파장의 현상일 뿐임을 온몸으로 깨달을 때, 오랫동안 시야를 가렸던 욕심의 안개는 걷히기 시작할 것이다.




파동에서 한 파장(마루에서 마루, 골에서 골)이 온전히 그려져야만 비로소 낮아진 고점과 높아진 저점이 확인되고, 기다리던 진입점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어렵고, 애매하며, 무언가 이상한 자리를 본능적으로 걸러낼 줄 아는 ‘기다림의 미학’이야말로 성공 투자의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


초기 진입의 기회를 놓쳤다면 조급함에 몸을 던질 것이 아니라, 다시 마루(고점)나 골(저점)이 형성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 마루와 골의 시작점을 놓친 상태에서 뛰어드는 것은 한 파장이 완성되기 전의 혼란 속으로 돈을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 파동은 결코 직선으로 뻗지 않으며, 끊임없이 파장을 만들며 나아가는 곡선이다. 마루와 골의 변곡점 부근에서 진입해야만 심리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진동의 중심, 즉 불확실성이 가득한 한복판에서 진입한다면 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불편해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간에서 탐하지 말고 끝자락에서 시작하라. 당신이 매매할 때마다 불편하고 불안한 이유는 파동의 시작점이 아닌, 이미 에너지가 터진 진동의 중심에서 진입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차를 놓쳤다면 다음 역(다음 골과 마루)이 나올 때까지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편안한 수익을 거머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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