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원칙을 사고파는 곳이다.

by 황금지기


늘 잘하다가도 자만심에 공든 탑이 무너지고, 운이 좋던 시절 뒤에는 큰 불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이번에는 달라" 혹은 "다음에는 다를 거야"라는 낮은 확률의 희망에 기대어, 생존 편향이 낳은 지나친 낙관과 자만심에 소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하며 나이를 먹어간다. 시장은 오직 확률로만 존재하며, 누구에게나 맞고 틀릴 확률은 공평하기에 실수는 필연적이다. 관건은 그 필연적인 작은 실수들이 그저 '작은 흔적'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치명적인 파국'으로 번지느냐에 달려 있다.


돈으로 치장한 파동의 유혹은 실로 치명적이다. 유혹에 빠져 손실이 포도송이처럼 불어나면, 요동치는 돈의 움직임만 눈을 어지럽힌다. 마음에 막연한 희망의 달이 뜨고 무게 중심이 기우는 순간, '기도하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시장의 신이 들어주기에 세상엔 기도하는 투자자가 너무나 많다. 레버리지를 낮추고, 이격이 벌어진 고점과 저점에서의 추격을 멈추며, 매번 짧은 손실로 매듭짓는 과정이 습관이 되어야만 다음 수를 기약할 수 있다. 시장에서의 여유란 바로 다음 수를 기약하는 마음이며, 그래야만 덤덤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손실을 잘라낼 수 있다.


시장은 기도하는 사원이 아니라, 원칙을 사고파는 곳이다. 조금만 잘되어도 마치 성공한 것처럼 여기는 착각이 자만심을 부르고 파국을 잉태하기에, 이 자만심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밤 '자기 성찰의 자장가'를 불러야 한다.




“예측이 아니라 준비성에 투자하라”라는 나심 탈레브의 말은 미래를 안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오만을 꾸짖는다. 투자의 성패는 거듭되는 손실 상태를 어떻게 대비하고 다루느냐에 달려 있으며, 오직 손실을 다스리는 자만이 우상향의 비탈길을 오를 자격을 얻는다. 본래 인간은 한 가지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만만하게 보고 수많은 계획을 세우는 ‘작심삼일’의 본성을 지녔다. 특히 돈과 심리가 한 몸이 되어 요동치는 투자 시장에서 이 본성은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진정으로 돈을 지키고자 한다면, 자만심에 취해 고개를 들기보다 차라리 적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굴욕을 택하는 편이 낫다. 확률이 낮음을 뻔히 알면서도 작은 손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 이번에는 역전할 수 있다거나 다음에는 다를 것이라 믿는 막연한 기대는 명백하게 자만심 때문이다. 손실을 짧게 자르는 일은 실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극도의 어려움을 ‘지금’ 돌파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꿈꾸는 ‘다음’ 역시 실패의 반복일 뿐임은 자명하다. 미래의 확신은 자만심을 꺾고 원칙의 지켜가는 처절한 준비성에서 싹트는 것이다.


자존심을 버리고 시장 앞에 엎드려라. 자만심은 계좌를 지켜주지 않지만, 손절은 미래를 지켜준다. "다음엔 꼭 지킬 거야"라는 다짐은 손실의 통증을 피하기 위한 마취제일 뿐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다음에 잘하는 나'는 오늘 '제대로 실패한 나'의 토대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파동이 끊임없이 등락을 반복하듯, 투자자의 행태 또한 과거의 궤적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이 시장의 절대적인 확률이다. 대다수는 원칙 위에 허황한 꿈을 그리지만, 그것은 허상으로 끝날 확률이 대단히 높다. 투자는 단순히 부를 쌓는 기술이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 아닌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숙해 가는 치열한 심리적 성장통이며, 이를 극복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매번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과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베팅이 오히려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이다.


필연적인 실패가 반복될수록 투자자의 판단력은 흐려지기에, 미래의 막연한 희망에 기대는 자신은 극복해야 할 적일 뿐이다. 지금 세운 원칙을 감정에 내어주고 심리가 흐트러진다면, 다음에 실패할 확률은 그보다 더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믿음은 실상은 비겁한 자만심에 불과하며, 다음에도 실전의 압박 속에서 심리는 더욱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 감정에 휘말려 실패한다면 그 실패의 굴레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타당한 결론이다. 지금 하지 못하면 다음에도 할 수 없다. 인생은 짧고 기회는 유한하기에, '지금 아니면 안 된다'라는 절박한 믿음은 원칙을 사수하게 하는 인내심의 연료가 된다.


미래는 오늘 당신이 반복한 행위의 정직한 결말일 뿐이다. 오늘 원칙을 어기는 것은, 내일 더 처참하게 무너질 운명을 스스로 예약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실패의 반복은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결국 운명이 된다.




“대개 어린나무는 커다란 엄마 나무의 우거진 가지들이 만든 그늘에서 수십 년을 보낸다. 햇빛을 적게 받으므로 천천히 자란다.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밀도 높고 단단한 나무가 된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쉽게 썩으므로 어른 나무로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서두르면 망치는 법이다.“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저자의 당부처럼,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투자든—은 반드시 ‘인내심’과 ‘희소성’이라는 두 가지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인내심이 있어야 성장의 고통을 지켜볼 자격을 얻고, 희소성이 있어야 비로소 그 결과물의 소중함을 알며 시장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미친 듯한 광기와 변덕은 사실 변하지 않는 정상의 범주일 뿐이다. 거대한 도약과 발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일어난다. 성장은 언제나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과의 치열한 교전이며, 그 지연의 시간을 견디는 힘이 곧 실력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다. 그것을 알면 확신을 두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시장의 미친 듯한, 더 미친 듯한 과열도 정상이다. 아주 중요한 변화는 작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 일어난다. 성장이나 발전은 언제나 그것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에 맞서 싸워야 한다.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 더 완벽해지려 할수록 여러 면에서 더 취약해진다.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는 것’


비관론자처럼 철저히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찬란하게 꿈꾸라. 완벽해지려 애쓸수록 원칙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 취약해질 뿐이다. 동화 속 붉은 여왕의 말처럼, 이 역동적인 시장에서 제자리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한다.




”과거에 했던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욕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확실성은 너무나 소중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려는 시도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은 만일 미래가 얼마나 불확실한지 확실히 깨닫는다면 하루를 시작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인간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투자자의 내면에는 생존본능이 만든 성급함, 자만심이 부른 감정적 판단, 그리고 손실 회피 편향이라는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이 빈틈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결함과 환경의 지배로 인해 언제든 나쁜 습관의 늪에 빠질 수 있으며, 역사가 그랬듯이 치명적이라 여겨졌던 사건들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누구라도 단 한두 번의 치명적인 실수만으로 언제든 파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세상사는 9회 말 투아웃에서도 역전당하기 일쑤이기에, 끝날 때까지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확률과 큰 숫자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본능 탓에, 확률적으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필연적인 위험에 과도하게 민감해지거나 혹은 반대로 완전히 무감각해지곤 한다. 인간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방심은 투자하는 마음을 잠식하는 달콤한 마취제다. 불확실성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투자자를 지켜낼 유일한 닻은 예측의 오만이 아니라, 끝까지 깨어 있는 차가운 경계심뿐이다.




테리 버넘은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에서 투자자의 사투를 본능의 투쟁으로 묘사한다. 위험이 가득한 시장에서 보상을 쫓는 모습은 흡사 도마뱀과 같으며,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머릿속 ‘도마뱀의 뇌’ 안에 살고 있다. 이 원시적인 뇌가 작은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기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투자자의 의무이자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손실은 짧게, 이익은 길게’라는 대전제가 뼈에 새겨지지 않는 한, 그 어떤 굳은 의지도 ‘무의미의 축제’에 불과함을 절감하게 된다.


위대한 트레이더들 역시 인간의 편향에서 자유로운 초인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인간 본성의 자기 파괴적 측면이 부르는 손해를 제한하는 데 지독하리만치 뛰어날 뿐이다. “잔디 깎는 기계에 저항하는 잔디는 잘려 나가지만, 구부러지는 잔디는 살아남는다”라는 이치를 그들은 안다.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은 대개 자존심을 꺾고 손해를 수용하며 계속 나아가는 길이다. 매 순간 작은 패배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완강히 고집을 피울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도마뱀의 뇌에 최후통첩을 보내라. "나는 당신의 자존심보다 내 계좌의 풍요가 더 좋다"라고. 전설적인 투자자 폴 튜더 존스가 책상 위에 걸어둔 글귀처럼, 이성적인 전두엽 피질이 고집불통인 원시의 뇌를 다스려야 한다. 자존심은 시장의 칼날 앞에서 부질없이 저항하는 객기일 뿐이다. 손실을 인정하는 순간 가슴을 찌르는 그 불쾌한 통증은, 단지 도마뱀의 뇌가 기다림에 지쳐 지르는 의미 없는 비명에 불과하다.


투자는 이성적인 전두엽의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다. 자존심은 시장의 칼날 앞에 목을 내놓는 만용일 뿐, 진정한 승부사는 이익을 위해 자아를 낮출 줄 안다.




몇 년간 데이비드를 관찰한 결과 그는 손실 포지션에서 매우 빨리 빠져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실 포지션 때문에 경제적·감정적으로 고통받기보다는 빠르게 적은 손실을 보는 걸 선택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투자 철학을 “red zone에서는 거래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테리 버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Red Zone(손실 구간)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는 투자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손실을 짧게 자르지 못한다면, 실패는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얼마나 길게 가져갈 것인가(How long)는 나중의 일이다. 손실을 칼같이 자르고 다시 진입하는 ‘자르고 진입함’의 반복은, 결과적으로 여러 지점에서 진입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분산 투자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결국 Green Zone(수익 구간)에 머물 확률을 높이는 영리한 전략이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소양은 수익을 기다리는 인내보다, 손실을 짧게 끊어내며 원칙을 사수하는 인내심이다. 비즈니스에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매입 비용이 발생하듯, 투자자의 매입 비용은 바로 ‘짧게 끊어내는 손실’이어야 한다. 이 비용을 아까워하다 수익보다 비용이 증가하게 되면 그 투자는 실패로 귀결된다. Red Zone 밖으로 탈출한 투자자는 시장의 소음에서 벗어나 휴가를 떠날 수 있고, 포지션을 자유로이 조절하며, 어떤 변동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손절은 내일과 평온을 사기 위한 가장 값싼 기회비용이다. Red Zone의 붉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감정을 갉아먹기 시작할 때, "조금만 더"라며 희망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짧은 손실은 Green Zone의 푸르름을 만끽하기 위한 비용이다.




Red Zone을 부정적 심리 상태인 손실 구간으로, Green Zone을 아무 포지션이 없는 상태나 수익 구간인 긍정적 심리 상태로 정의한다면, 투자는 ‘부정은 짧게, 긍정은 길게’ 가져가는 삶의 이치와 맞닿아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포지션이 없는 상태, 즉 잃지 않고 관망하는 상태가 최상의 긍정이라는 점이다. 수익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희망이 없는 상태’로 오인하게 되고, 그 조바심은 결국 뇌동과 추격의 위험으로 우리를 떠민다. 우리 내면은 지속 가능성의 고원을 향해 끊임없이 속삭이며 꾸준함을 독려하고 있다.


파동을 다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높이는 척, 낮추는 척’하며 기만하는 Trap이 존재하고, Failure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교묘한 횡보 구간이 곳곳에서 흔들기 때문이다. 이 혼돈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은 게임을 지속하는 것뿐이다. 지속의 전제는 절대 잃지 않는 것이며, 이를 위해 손실을 짧은 구간에서 쉼 없이 잘라내야 한다. 손실 상태는 결코 머물러 기도하는 자리가 아니다. 투자자는 흔히 자신의 똑똑함에 의지하려 들지만, 승부는 꾸준함의 영역에서 판가름 난다. 확률적 우위는 표본이 쌓이는 대수의 법칙 안에서만 증명되기에, 확률은 지능이 아닌 꾸준함으로 다루어야 한다. 투자의 정석이라 불리는 장기투자 또한 결국 이 지독한 꾸준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포지션이 없는 평온함이 꾸준함을 담보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을 지켜보는 시간이 불안하고 초조하게 느껴져서는 게임을 지속하기 대단히 어렵다.




“측정할 수 없는 힘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불합리성과 혼란, 골치 아픈 인간관계, 불완전한 인간들로 들끓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시장은 확률적으로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나는 혼돈의 장이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와 그 정도를 필사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시장이 본래 위험이 들끓는 곳임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위험을 줄이는 명쾌한 방법은, 결과가 맞을지 틀릴지 고민하기보다 파동이 애매하거나 가격이 비싸다면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이다.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투자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시장의 돈은 여유롭고 덤덤하게 기다리는 자의 곁에 머문다.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멈추는 것, 그것이 위험 관리다. 수치를 측정해 맞추려 들기보다 위험 자체를 인식하고 줄여가는 사람이 결국 성공의 문에 들어선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장기적 성공의 연료는 인내심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는 기꺼이 치러야 할 적정한 수준의 비용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일에는 비용이 따르며, 그 비용이란 바로 적당한 양의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다.


수익은 불편함을 감내한 대가다. 애매한 자리에서 손이 근질거릴 때, 그것을 참아내는 불편함을 수익을 위한 정당한 대가로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정확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큰 그림을 보여주는 원칙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정확성보다는 원칙이 더 중요한 가능성이 큼에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측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당신의 시간과 자원을 다른 곳에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완벽해지려 할수록 여러 면에서 더 취약해짐을 잊지 말자. 대부분 상황에서는 몇 개의 간단한 요인이 결과 대부분을 만들어 낸다.”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시장의 파동은 추세, 등락, 그리고 횡보로 나뉜다. 횡보는 추격만 하지 않는다면 계좌에 큰 타격을 주지 않기에, 투자자는 추세와 등락 중 자신에게 유리한 하나를 선택해 일관성 있게 반복해야 한다. 특히 데이트레이딩에서는 전날의 큰 흐름을 보면서 유리한 방향으로 반복해야 꾸준함을 담보한다. 확률의 세계에서 비결은 복잡한 분석이 아니라 상황을 단순화하는 데 있다. 그래야만 필연적인 혼란에 둔감해지면서 원칙을 지키는 존재로 진화할 수 있다.


공식은 단순하다. 시세가 분출된 직후에는 횡보나 조정의 등락이 이어지며, 방향이 완전히 꺾이지 않는 한 유리한 방향의 눌림과 반등의 끝자락을 묵묵히 기다리면 그뿐이다. 파동은 언제나 등락하기에 추격해서는 먹을 게 없다는 이 자명한 확률적 진실만 명심해도, 적어도 잃지 않는 투자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투자는 단순한 실체인 원칙을 사수하는 진화의 과정이다. 예측은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지만, 원칙은 당신의 생존을 지탱하는 유일한 실체다. 지엽적인 지표 하나를 더 맞히려고 애쓰는 동안, 큰 흐름을 놓치게 된다. 핵심적인 몇 가지만 이해해도 시장의 혼란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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