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씹고, 잘 싸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

by 황금지기


시장은 항상 애매하고 어려운 파동으로 가득하며, 가끔은 변동성을 키워 위험을 급격히 증폭시킨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투자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기술은 바로 ‘하지 않는 힘’, 즉 파동을 그냥 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다음 수를 기약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투자자에게 있어 단순한 기술을 넘어 깊이 파고들어야 할 철학적 문제이자 필수 교양과목이다. 오늘도 잃지 않았다는 안도와 이 순간도 버텨내고 있다는 자각이 소중해질수록, 고통스러웠던 기다림은 수월해지기 시작한다.


작업 현장에서 위험한 방식은 당연히 피해야 하듯, 기대수익보다 위험이 크다면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투자자의 「안전제일」 원칙이자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이치가 왜 그토록 어려웠던가. 입으로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거나 정서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기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서 돈의 유혹이 시작되면, 그 믿음은 추풍낙엽처럼 위태롭기 마련이다. 오늘을 꼭꼭 씹으며 충실히 살겠다는 맹세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늘을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 않음'은 가장 완벽한 대응이다. 오늘 하루를 꼭꼭 씹어 삼키듯 원칙을 지켜낸 인내가, 결국 내일을 찬란하게 빛낼 연료가 될 것이다.




원칙을 지키며 버티는 반복의 축제를 주관하는 위대한 추장은 바로 ‘일관성’이다. 오직 일관성만이 투자자의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구조가 복잡할수록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어렵지만, 경험이 미약한 마음은 좀처럼 단순함의 가치에 다가서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 생각과 현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간과한 채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며 돌고 도는 미로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복잡함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동반하며, 그 혼란의 늪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 보면 인생은 어느덧 소비된 경험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복잡함에 숨은 욕심의 흔적을 발견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른다. 돌고 돌아 다시 기본으로 회귀했을 때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단순한 단 한 가지뿐이며, 단순해야만 비로소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생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레버리지를 낮추고 필연적인 시간의 경과를 묵묵히 수용하는 것, 추격하지 않고 등락의 마디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손실을 짧게 자르며 생존을 도모하는 것. 이 성공의 법칙을 내면이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우리가 겪어낸 필연의 시림과 아픔의 깊이는 실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깊고도 아리다.


단순함은 모든 부수적인 것을 버린 자의 경지다. 단순해야 단단해짐을 인정하기에는 욕심이 너무 많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복잡함은 일관성을 갉아먹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할 여지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개인투자자에게 주식이나 선물 시장은 프로팀을 상대하는 아마추어의 경기와 같다. 이 불리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화려한 공격이 아니라 수비에 치중하며 버티는 것이다. 그렇게 퇴출당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비로소 실력이 늘고 단단한 굳은살이 박인다. 워런 버핏의 불문율이 '잃지 않는 것'이듯,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규칙은 손실 구간인 'Red Zone'을 즉시 탈출하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시장은 가차 없이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꺼내 들며 우리를 퇴출한다.


해외선물 데이트레이딩의 관점에서 본다면, 앞고점과 앞저점 기준 ±몇십 틱이라는 명확한 기준선을 넘어서도 손실을 자르지 못하는 행위가 곧 옐로카드다. 여기서 손실의 깊이가 더 깊어지면 레드카드를 받고 판돈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대개는 손실이 되돌아오는 경험 때문에 손실 회피 편향에 빠지지만, 군중 심리와 최신 편향이 만드는 추세의 관성은 무섭도록 강력하다. 손실을 자르지 못하는 자에게 비극적 결말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골프나 테니스에서 공을 잘 치기 위해 공이 날아갈 먼 곳이 아닌 '공을 치는 순간'에 집중해야 하듯, 투자자 역시 무작정 미래를 기대하는 대신 '지금' 기다리고, 챙기고, 자르는 그 찰나의 행위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한다.


승리는 지금 대응하는 손끝에서 결정된다.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수익)를 미리 계산하느라 정작 지금 공을 맞혀야 할 타이밍(대응)을 놓쳐서는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운전의 핵심이 전방 주시에 있듯, 파동 또한 현재 주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날의 큰 흐름을 복기하며 파동을 그리는 행위는 결코 미래를 맞히기 위한 점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이치처럼, 시세가 어느 방향으로 더 편하게 흐를 수 있을지 그 확률적 통로를 가늠하기 위함이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적 분석이나 파동을 그리는 수고로움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중 어느 것도 절대적 확신을 줄 수는 없으며, 오직 확률적 범주 안에서 현재의 좌표를 찍어줄 뿐이다. 본능이라는 적을 이기기 위해 백미러로 과거를 곁눈질하되, 눈은 현재 흐르는 파동의 방향을 응시해야 한다.


가야 할 목적지는 그려지는 파동이 정한다. 백미러에 비친 어제의 수익이나 손실에 시선을 뺏겨, 지금 당장 꺾여야 할 핸들의 타이밍을 놓치거나 예측의 오만이 전방 시야를 가리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수학적 계산에 약하게 만들어졌다. MIT의 로켓 과학자들도 이런 간단한 문제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판이다. 게다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다는 문제가 있다. 투자 분석에 필요한 계산도 잘하지 못하는 동시에 자신의 단점마저도 인식하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략) 우리는 투자 분석에 필수적인 몇 가지 핵심 도구를 빠뜨린 채 투자라는 게임에 뛰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나친 자신감에 가득 차서 내게는 투자에 필요한 기술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테리 버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우리의 진화적 본능은 투자라는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냉혹한 게임을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미숙하고 조잡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금융시장에 발을 들인 인간은 새롭고 부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여 불안하게 팔딱거리는 물 밖에 나온 물고기와 다를 바 없다.


특히 대다수 투자자는 장기적으로 좋은 결실을 보기 위해선 반드시 단기적인 고통과 나쁜 상황을 통과해야 한다는 불변의 법칙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조급함의 덫에 걸려드는 순간, 앞에 놓인 선택지는 비참한 패배나 처참한 파산으로 급격히 좁아진다. 물 밖의 고통을 견디며 생존의 기술을 익히느냐, 아니면 팔딱거리다 기력을 다해 쓰러지느냐. 장기적 승리는 단기의 불편함을 비용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본능을 거스르는 지혜로운 소수에게만 허락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뇌는 불편함을 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손실이라는 단기적 나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도마뱀의 뇌는 물타기로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팔딱거릴 것이다. 그때 반드시 이성적인 원칙의 닻을 더 깊이 내려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을 단 한 마디로 압축(leverage)한다면 ‘유리한 방향의 눌림과 반등의 끝자락’을 포착하는 것이고, 대응의 예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닥치고 Red Zone(손실 구간)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땅을 사서 건물을 올리고 묵묵히 장사하며 버티다 보니, 땅값이 올라 부를 얻게 된 이들이 많다. 시장에서도 부의 원리는 같다. 다만 필요한 것은 땅을 살 목돈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 검증을 거친 원칙이라는 토대다. 그 위에서 건물을 올리고 장사하듯 버티다 보면, 베팅의 질은 정교해지고 강도는 세지며 어느덧 지가 상승과 같은 부의 기회와 마주하게 된다.


욕심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건드리다 멀쩡한 건물마저 잃고 삶이 꼬여버리는 이들처럼, 성급함과 자만심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적이다. 원초적 감정을 억누르고 원칙을 사수하며 버틸 수만 있다면, 지가가 상승하는 행운의 영역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은 복리의 마법으로 이어지고, 쌓여가는 경험은 마침내 통찰의 경지에 닿는다. 이때부터 우상향의 누적 수익 곡선은 가파름을 더해가며 선순환의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시장의 부는 지켜낼 때 비로소 불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투자의 성공이란, 원칙이라는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자에게 시장이 선사하는 지가 상승의 보상인 셈이다.




투자를 좌우하는 제1요소는 심리이며, 모든 방법론의 승패는 결국 그 심리가 결정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장단점과 환경이 다르기에 각자의 ‘심리의 나무’를 가꾸고 극복하는 과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시장의 본질이 가격이기에, 충동을 이겨내고 기다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의 첫 번째 공통 분모다. 또한, 손절 후 시세가 되돌아오는 허탈함을 견디더라도 손실은 짧게 자르고, ‘줬다가 뺏는’ 경우가 비일비재할지라도 수익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두 번째 공통 분모다.


그러나 투자와 어긋나게 진화된 뇌는 이 공통 분모와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는 왜 이토록 시장과 엇갈리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장은 대개 사람을 좌절시키기 위해 움직인다”라는 월스트리트의 격언처럼 시장은 사람들이 낙관할 때 하락할 가능성이 크고, 비관할 때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도마뱀의 뇌는 우리를 집단의 생각에 순응하게 만들고, 감정이 가장 고조된 순간에 정반대의 선택하도록 유혹한다.


“비열한 시장에서 인간은 기회와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타고났다. 도마뱀의 뇌는 우리가 시장 붕괴 직전에 사고 싶게 하고, 상승세가 시작하기 전 공포에 팔고 싶게 만든다.” 본능을 따르는 자에게 시장은 언제나 비열한 포식자로 남을 뿐이다. 이 유전적 함정을 돌파할 유일한 길은 치열한 자기 검증을 거쳐 벼려낸 ‘자기 확신’,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세운 ‘원칙’을 인문학적 소양으로 사수하는 것뿐이다.


본능을 따르는 자에게 시장은 비열하다.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편에 기회가 숨어 있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팔며, 손실은 자르고 수익은 키운다는 공통 분모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성찰로 무장한 원칙이 필수적이다.




“‘실패하는 투자자는 손실 중인 주식의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춘다’라는 말은, 형편없는 투자자들은 주가가 내려갈 때 추가 매수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돈을 잃게 만든 종목에 더 많은 돈을 던져 넣는다. 이는 모든 주식 거래에서 가장 빈번하게 저지르게 되는 실수 중 하나다.”

<테리 버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실제로 「어느 주식투자자의 회상」에서는 이를 첫 번째 교훈으로 언급한다. “나는 정확히 잘못한 투자를 했다. 면화는 손실이 났는데도 계속 보유하고 있었고, 밀은 수익을 내는데도 매도해 버렸다. 투기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들 가운데 가장 큰 실책은 손실이 난 종목의 매입 단가를 낮추려고 하는 것이다. 언제나 손실이 나는 종목을 팔고, 수익이 나는 종목을 보유해라.“


투자라는 세계를 걷다 보면 수많은 난관을 직접 온몸으로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 똑똑히 직시하게 된다. 머릿속 도마뱀의 뇌는 방심한 틈을 타 기습공격을 퍼붓는 데 능수능란하기 이를 데 없다. 침팬지에게 동물원이 부자연스러운 환경이라 했듯, 보통의 인간에게 투자의 세계는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본능은 손실의 아픔을 가리기 위해 '추가 매수'라는 독약을 권하고, 수익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 '성급한 매도'라는 실수를 부추긴다.


본능을 따르는 것은 불편하다면 투자가 편안하다. 이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살아남는 길은, 도마뱀의 기습을 예상하고 이성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원칙이라는 꽃에는 물을 주고, 본능이라는 잡초는 뿌리째 뽑아내는 이 부자연스러운 결단이 비범한 투자자로 진화시킬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편향이 만든 쏠림 현상은 ‘추세’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며, 이 가끔의 추세는 전체 수익을 좌우하는 결정적 ‘꼬리 사건’이 된다. 추세란 등락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며, 선물 투자에서도 그날의 평균 진폭을 채우는 파동이 전체 수익률의 향방을 가른다. 이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장의 속성상 ‘운칠기삼’은 실로 적절한 비유다.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 ‘항상’의 결과를 결정짓기에, 심리가 단단하지 못한 자는 ‘가끔’의 사건에 ‘항상’ 같은 실수로 결정적 순간에 무너져 공든 탑을 허물고 만다.


대응이란 ‘잃지 않기 위한’ 실력의 영역이며, 기다림이란 ‘운이 작용하도록 하기 위한’ 영역이다. 수익은 운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그 운이 나에게 머물 수 있도록 내공을 쌓으며 기다리는 것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의 투자에서의 해석이다. 투자는 이처럼 운의 거대함을 깨닫고 겸손을 배우는 도구가 된다. 겸손은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감사함에서 시작된다. 아직 말이 행동을 앞서고, 터무니없는 확신과 자만심이 불쑥 끼어드는 것을 보면 아직 덜 익은 존재다. 고개 숙임으로써 익어가고, 그 겸손의 무게만큼 삶의 의미를 더해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존만이 오롯이 당신의 실력이다. 운이 작용할 수 있도록 위험을 관리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자신을 돕는 행위'다.




진입의 영역에서라면 원숭이가 던지는 다트가 펀드매니저의 수익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랜덤 워크 이론’은 타당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숭이와 투자자를 가르는가. 그것은 바로 손실은 짧게 자르고 이익은 길게 가져가는 경험을 통해 단련되는 인간의 이성이다. 동물은 경험을 단지 생존의 기억으로 남기지만, 인간은 경험을 재료 삼아 진보한다. 투자자가 수많은 경험을 쌓고도 여전히 뇌동과 추격을 반복하고, 손실을 확정 짓지 못한 채 파멸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우리 뇌 하부에 웅크린 원시적 본성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성급하고 손실 앞에서 얼어붙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견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의 성공이란 바로 그 변하지 않는 본성을 기어이 변화시켜야만 열리는 문이다. 뇌는 본래 천장에서 낙관의 축제를 벌이고, 바닥에서 비관의 눈물을 흘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예측이란 대개 현재의 편향된 상태를 그럴싸하게 합리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경험은 단지 나쁜 습관의 반복일 뿐이다. 팔아야 할 고점에서 흥분하고, 사야 할 저점에서 절망하는 도마뱀의 뇌를 잠재우는 자가 원숭이의 무작위성을 넘어선 진정한 투자자의 반열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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