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기억 가운데 #1
초등학교에 이제 막 입학했을 때였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온종일 밖에서 놀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초등학교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 역시 오전이든 오후이든 이제는 하루의 절반뿐이었다.
오후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에 들어서는데 같은 아파트 1층에 사는 훈종이란 녀석이 내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었다. 뒷바퀴에 붙어 있던 보조 바퀴를 꺾어 올리고 마치 두 발 자전거처럼 타고 있어서 처음엔 몰랐지만 내 자전거가 분명했다.
‘우주 손오공’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것이 꼭 내 자전거가 분명했다. 당시에 나는 두 발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그래서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탔다. 노란 프레임에 노란 플라스틱 바퀴가 달린 자전거였다. 보조 바퀴는 별다른 고무나 튜브도 없어 탈 때마다 엄청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주위에 조금 빠른 녀석들은 하나둘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떤 애들은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이나 탈 것 같은 커다란 자전거를 안장 높이를 끝까지 낮춰서 타는 애들도 있었다. 그 모습이 꽤 멋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난 내 네 발 자전거 타는 일이 좋았다.
1층에 사는 훈종이는 나와 같은 나이에 키는 작지만 조금 무서운 친구였다. 언젠가는 나를 꼬드겨 내 돼지 저금통을 같이 뜯다가 어머니께 들켜서 혼나기도 했었고, 유난히 까만 얼굴에 옷에 코를 많이 묻히고 다니는 그 아이가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적도 없었고 친구라고 할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 훈종이에게 먼저 다가가 왜 내 자전거를 타느냐고 따지듯 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 고무 타이어에 노란색 바퀴가 달린 자전거였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물었다.
“너 왜 내 자전거를 타고 있냐?”
이 말을 하기까지 나로서는 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용기 냈던 것인데 그 녀석의 답은 빠르고 간명했다.
“너네 엄마가 버리는 거랬어.”
평소 그 아이의 행실이 있어 얘가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럴 리가 있나. 어머니께서 왜? 내가 얼마나 아끼는 자전거인데. 훈종이에게 더 따져 물을 엄두는 못 하고 어머니께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면 그건 어머니께 그러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계셨다. 마침 베란다에서는 훈종이 녀석이 내 자전거를 타고 노는 모습이 잘 보일 터였다. 바깥을 가리키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 자전거가 작아서 이제 더 못 탄다고 하셨다. 난 내 자전거가 제일 예쁘고 좋았는데, 이제 내 키에 비해서 작은 자전거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체인 같은 것 없이 앞바퀴에 고정된 페달에 발 여기저기 까지거나 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게 정들었던 자전거와 이별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대신에 자전거를 새로 사주시겠다고 했다. 그것도 두 발 자전거로. 하지만 난 두 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데 내가 보조 바퀴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새 자전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정든 내 자전거와 이렇게 해어지는 것이 너무 아쉽고 슬펐고, 갑자기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되고 무서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새 자전거는 필요 없고 꼭 그 노란 자전거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전거를 계속 타기엔 내 키가 훌쩍 커버렸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어머니의 성화에 중간에 몇 번인가 다른 친구들의 두 발 자전거 위에 올라보기도 했지만 더는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줄곧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이제는 오전반, 오후반이 아니고서도 하루 중에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