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야기를 불편하게 해낸다.
댓글은 원글(네이버 블로그)에서만 작성 가능합니다.
원제는 신성한 사슴 죽이기. 그리스 신화 중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수사슴을 죽인 벌로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에서 왔다고 한다. 나는 그리스 신화를 잘 몰라서 이 부분은 다른 사람의 왓챠피디아 코멘트에서 가져왔다. 이 부분만을 알고 보기 시작했고, 이외의 신화적 내용은 더 알아보지 않았다.
설정은 그렇게 시작했을지라도, 내가 그리스 신화보다는 성경에 대해 잘 알아서 그런지, 성경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본 포스팅에서 내가 성경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시길.
나의 생각은 소재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왔고 신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성경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는 거 같으나, 이야기의 시작이 어땠든 간에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족의, 가족 내의 균형이 아니었나 싶다. 신화니 성경이니 이런 것들을 배제하고도 보이는 가족의 불편한 모습들.
세 가지 색깔로 표시한 것들이 내겐 눈에 띄었다. 나의 리뷰는 이 중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하려고 한다.
등장인물은 심장전문의 스티븐, 그의 아내이자 안과 개업의인 듯한 안나(애나라고 표기된 곳도 있음), 그들의 첫째 자녀인 딸 킴, 둘째인 아들 밥. 그리고 그들과 이상한 관계에 놓이게 된 마틴 정도로 볼 수 있다.
스티븐은 마틴의 아버지를 수술하다가 그를 죽게 만들었다. (나중에 나오지만, 스티븐이 수술 직전에 술을 마셨기 때문인 게 원인으로 보인다) 그게 미안하고 신경 쓰여서 마틴에게 잘해주고 밥도 사주고 시계 선물도 한다. 마틴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 보인다. 스티븐은 마틴을 집에 초대도 하고 가족들에게 소개도 한다. 마틴도 스티븐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스티븐도 그에 응한다. 마틴은 스티븐을 자신의 어머니와 연결시킬 목적으로 은근히 자리도 피하고 어머니도 적극적으로 스티븐에게 들이대나, 스티븐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웠을 테니 거부하고 이후 마틴의 연락을 피한다. 그때부터 저주가 시작된다.
저주 이전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위와 같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주와 별개로 이 영화에서 내 눈에 가장 띈 건,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코멘트에서 가장 언급되지 않는 걸로 느껴진 부분이 '아빠 딸, 엄마 아들'이라는 구도였다. 이런 구도는 사실 대부분의 가정에 흔한 일이다. 생물학적 친자 여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성별이 똑같은 자매나 형제일지라도 누군가는 아빠 아들이고 누군가는 엄마 아들이 되듯이, 그런 가족 내의 애정 구도. 외동이 아니라면 아마 거의 대부분 느끼거나 경험했을 일에 대해서.
언급했듯이 스티븐네 집은 아빠-딸, 엄마-아들의 구도이다. 그걸 보여주는 장면은 너무 많이 나온다.
◎ 영화 극 초반 스티븐네 가족의 식사 장면. 직사각형 식탁이라면 보통은 부부가 나란히 앉고 아이들이 함께 앉을 텐데 엄마는 아들과 앉고 아빠는 딸과 앉아있다.
아빠가 아들 밥에게 말한다. "머리 자른다더니 왜 안 잘랐어? 내일 잘라." 막내 밥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일은 안 된다"라고 아빠의 말을 거절한다. 엄마는 오히려 "긴 머리 좋은데, 머릿결도 좋잖아."라고 말한다. 이에 딸이 말한다. "나는? 내 머릿결은?" 엄마는 그제야 "우리 모두 다 머릿결이 좋다."라고 한다.
◎ 식사 후 침실에서 부부의 대화. "밥이 안과 의사 될 거래. 내가 얘기했나?" "얘기했어. 걘 엄마가 원한다면 광부라도 된다고 할걸." 이미 했던 얘기 또 할 만큼 안나에게는 기쁜 이야기였던 거고, 또한 스티븐의 발언을 통해 엄마를 향한 밥의 평소 애정도 짐작할 수 있다.
◎ 아빠는 딸의 합창 활동에 관심이 많다. 딸의 복식 호흡과 발성을 봐주기도 한다. 그때 아들이 왔고 아들에게 왜 화초에 물을 주지 않았냐고 잔소리를 한다. 잔소리이기는 하지만 아들이 해야 할 일을 안 한 건 맞다. 아들은 누나가 하는 개 산책을 자기가 하면 안 되냐고 한다. 그건 밥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을 했음에도. 밥은 별말 없이 조용히 나가고 스티븐은 이제 외출하자는 안나에게 "밥한테 더 늦기 전에 화초에 물 주라고 해."라고 말한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음에도... 밥이 아빠 말은 안 들어도 엄마 말은 듣는다는 걸 아니까 할 수 있는 말. 안나는 자기가 줬다고(아들이 해야 할 일을 엄마가 대신해 줌) 말한다.
◎ 그렇게 외출한 자리에서 동료 의사가 아이들의 안부에 대해 묻자 안나는 아들 밥이 요즘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피아노를 사줘야 집에서 연습할 텐데,라고 말하고. 스티븐은 딸 킴이 얼마 전에 초경을 시작했다고, 처음엔 무서워하더니 이젠 괜찮아진 거 같다고 말한다.
◎ 마틴이 집에 왔을 때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사 왔다.
안나가 화초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게 없어서 장미를 골랐다고.
킴은 음악을 좋아하니까 높은 음자리표 열쇠고리를 사 왔다고.
밥을 위해서는 스마일 열쇠고리를 사 왔다고.
마틴이 가족들의 정보를 어디서 들었을까? 스티븐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마틴이 밥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적당한 걸 사 왔다. 사실 최근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열심이라는 정보가 마틴에게 전해졌다면 마틴은 피아노 모양을 사 왔을 텐데. 그리고 그 선물을 받았을 때 킴도 수줍게 별말 없이 받지만 스티븐은 밥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지적한다("밥,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한다고 했지?").
◎ 시간을 보내고 거실에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대화할 때 킴은 아빠와 마틴의 중간 자리에 앉아있고 밥은 엄마의 무릎 위에 안겨있다.
◎ 마틴이 가고, 부부는 마틴에 대해 얘기한다. 애 괜찮지? 괜찮네. 안나가 말한다. "밥이랑도 잘 놀더라고. 다음에 걔네 둘 데리고 어디 다녀올까 봐." 사실 마틴이 있던 시간 전체를 봤을 때 마틴은 킴이랑 더 특별했지 밥과는 특별히 친밀하게 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이 아들 밥에게만 향해있으니 아들과 함께하는 마틴이 보였겠지.
이런 내용은 영화 전체에 깔려 있는데, 마틴이 스티븐 가족에게 건 저주에 대해 말하며 틈틈이 언급하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 언급되는, 강조되는 소재가 있다면 '손'이 아닐까. 스티븐의 손이 곱고 예쁘다는 것이 자꾸 반복되기도 하고. 마틴은 스파게티를 먹을 때 손을 쓰는 방식이 자신의 아버지와 같다고 모두가 말해서 좋았는데, 모든 사람이 손을 그렇게 쓴다는 걸 알고 괴로웠다고도 한다.
손이 왜 자꾸 나올까? 그 손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스티븐은 손으로 수술을 하는 의사이다. 그 손에 환자의 생사가 달려있다. 그는 그런 면에서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기도 하다. 집에서는 특별히 손으로 뭘 하는 건 보이지 않았는데, 다만 아내 안나와의 성관계를 가질 때 안나가 옷을 벗고 누워 있으면 스티븐이 안나를 손으로 끌어당겨 성관계를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안나가 먼저 스티븐에게 다가갈 때 그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티븐은 자신의 그 곱고 예쁜 손으로 마틴의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실수가 아닌 게 수술 전에 술을 마셨다는 동료 의사의 목격과 증언이 있었으니까. 그는 죄를 지은 것이다. 신과 같던 존재가 죄를 지어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마틴의 손은 무엇일까. 그의 아버지의 손은 또 무엇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마틴이 신적인 존재로 설정된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어떤 전지전능함에 대해서?
이런 부분에서 이 영화를, 마틴을 인간/인간사가 아니라 신으로 염두에 두고 해석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워진다(내겐 그랬다). 다만 마틴이 왜 신인지,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혹은 그가 어쩌다가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등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설명하지 않는다는 면이 가장 종교적이었다고 본다.
스티븐은 죄를 지었고 마틴은 이상한 방식으로 속죄의 기회를 주었다. 나의 아버지의 빈자리를 당신이 채우라는 의미였던 거 같다. 그럴 만큼의 친밀도도 쌓였고 우리 엄마도 살도 빼고 꽤 괜찮다며.
말 그대로 이상한 방식이고 누구라도 거부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방식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것이 보통 신이 주는 속죄의 기회일 때가 많다. 스티븐은 이제 죄도 지었고, 속죄의 기회도 거부한 자가 되었다.
그래서 마틴은 스티븐에게 더욱더 큰 저주를 내리면서도 동시에 속죄의 기회 또한 열어둔다.
가족들이 각각 순서대로,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눈에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눈에서 피가 나온다면 보는 것도 힘들 것이다). 눈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하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스티븐만은 멀쩡할 것이다. 다만 스티븐의 손으로 가족 중 한 명을 죽인다면 이 모든 저주는 끝날 수 있다.
뭔가 보이지 않는가? 성경에서 신은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고, 주린 자를 먹게 하며, 보지 못하는 자의 눈을 뜨게 하며 생명을 살리는 분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정확히 정반대의 저주를 건다. 그는 그럴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거꾸로 보여준다.
아들 밥이 걷지 못한다. 이때도 엄마와 아빠의 태도 차이가 보인다. 아들이 밥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자 아빠는 얘 왜 안 내려오냐고 하고, 엄마는 좀 더 자게 두라고 한다. 아빠가 화가 나서(이런 식의 지각이 잦았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아들을 깨우러 갔는데 그때 걷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병원에 데려갔는데 또 멀쩡해졌다. 괜찮네?
엄마랑 같이 병원을 나가려던 중 밥은 다시 쓰러진다.
그리고 모든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마틴이 그 가족들에게 뭔가를 먹인다든가 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거다. 모든 게 정상이고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신께서 저주를 내렸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밤까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걱정한다. 동료 의사가 스티븐에게 말한다. "내일 수술 취소할까?" 스티븐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안나는 내일 병원을 쉬고 오겠다고 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도넛을 사 올 거라고.
그렇다면 이미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 그보다 더 늦게 킴이 귀가한다. 안나가 묻는다. "어디 갔다 왔어?" 킴은 "친구 집에서 놀다 왔다"라고 말한다. 사실 킴은 마틴을 만나고 왔는데 거짓말했고 안나도 더 이상 묻지 않는다. 킴이 밥에 대해 묻고, 엄마는 괜찮냐고 묻는다. 밥이 아프니 당연히 엄마가 힘들 거 같아서 물은 걸 텐데 엄마는 오히려 예민하게 반응한다. 둘은 그 어떤 귀가 스킨십도 하지 않는다.
킴은 이전에도 마틴을 만난 후 늦게 귀가하고 아빠를 마주쳤을 때, 바로 아빠의 옆에 다정하게 앉아서 사실대로 마틴을 만나고 왔다고 말했다. 스티븐은 마틴과 뭐 했냐고 묻고, 오토바이 탈 때 헬멧 쓰라는 조언도 했었다. 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너무나 잘 보인다.
다음날. 거식증이 시작된 건지, 밥은 그 좋아하는 도넛도 먹지 못한다. 스티븐은 '손수' 아들의 입에 도넛을 쑤셔 넣으려고 한다. -노래 연습을 하는, 딸 킴의 배에 손을 대어 호흡을 봐주던 것과는 정반대의 손이다.- 안나는 그를 말린다. 또한 스티븐은 아들의 증상을 믿지 못하는지 걸을 수 있다고 손으로 아들을 휠체어에서 내려서 걸으라며 병원 바닥에 내려놓기까지 한다(내팽개치는 것과 내려놓는 것 사이의 느낌).
그리고 이 시점에 마틴의 병문안을 통해 마틴이 저주를 걸었음과 그 저주의 내용을 알게 된다. 이때 마틴은 저주의 내용을 빠르게 말하기 직전에 깜짝 선물이라며 스티븐에게 스위스 군용 칼을 선물한다. 작은 칼이지만, 칼이라는 상징을 갖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것을 마틴이 스티븐에게 주었다. 어떤 권한을 위임한 것과도 같다.
암튼 스티븐은 밥에게 계속 연기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이거 연기면 가만 안 둘 거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들 밥도 이전에 어떤 거짓말이나 연기로 상황을 대충 넘어간 경험들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건 또 엄마에겐 사랑스러운 장난이고 아빠에겐 거슬리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스티븐은 아들의 아픔을 믿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자 이제 킴의 차례가 되었다. 킴도 걷지 못하게 되고 먹지 못하게 되어 동생과 함께 병실에 나란히 누워 있다. 스티븐은 일을 계속하고 엄마인 안나가 그들을 돌본다.
이때 킴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마틴과 통화 중이었고 마틴을 찾는 건데, 마틴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안나. (이 부분 역시 마틴의 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너를 걷게 하리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밥 역시 자기도 창밖을 볼 거라며 침대에서 나오지만 당연히 걷지 못하고 침대 옆으로 떨어진다. (사실 여기서 많은 게 예견되었다. 킴은 마틴의 선택을 받은 자이므로)
안나가 딸에게 누구와 통화했느냐고 묻고, 킴이 마틴과 통화했다고 말하자 안나는 걔랑 연락하지 말라고 한다.
왜? / 하지 말라면 하지 마. / 지랄하네. / 너 방금 뭐라고 했어? / 아무 말도 안 했어. / 무슨 말했잖아. 뭐라고 했어?
엄마 안나는 화를 내며 킴의 손목을 세게 잡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난 네 아빠와 달라. 이런 식으로 굴면 전화 뺏어 버릴 거야."라고 말하며 정말 킴의 핸드폰을 뺏는다.
킴은 화가 났지만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쫓아갈 수도 없고. 엄마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별거 아니라고. 어차피 엄마도 곧 못 움직일 거라고.
엄마를 향한 저주(그러나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예견된 저주)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셈이다.
너도 어차피 곧 다리를 못쓰게 될 거면서. 잘난척하지 마.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어서 모두 집으로 돌아왔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어차피 엄마, 아들, 딸, 셋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결정권은 아빠에게 있다.
이때 킴이 엄마에게 위에서의 일을 언급하며 말한다.
본인이 "병원에서 버릇없이 군 거 (나는 이다음에 '미안했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아빠에게 말했냐"라고.
이때 엄마는 딸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들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당연히 말했지."
그제야 킴이 "진심이 아니었어. 약 때문이었나 봐."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안나는 관심도 없고 조용히 좀 하라며 킴을 무시하자, 킴은 다시 한번 위에서 했던 저주를 다시 상기시켜 주는 발언을 한다.
"엄마 다리 안 이상해? 허리 안 아파?"
이 말에 안나는 킴에게 다가와서 뺨을 때린다.
스티븐이 마틴을 잡아서 지하에 가뒀다. 분노해서 폭력을 행사하지만 마틴은 아프긴 하지만 또 괜찮아 보인다. 어차피 자신을 죽인다고 한들 저주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 저주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말했듯 스티븐의 손으로 가족 중 하나를 죽이는 것뿐이므로. 그 사실을 재차 강조한다.
안나는 마틴이 죽도록 싫으면서도, 마틴 앞에서는 오히려 순종적이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며 발에 입을 맞춘다.
킴은 밤에 가족들 몰래 기어 와서 우리 같이 도망가자고, 넌 나를 걷게 할 수 있으니까 걷게 해달라고. 그러고 같이 도망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마틴이 자신을 걷게 해주질 않자 화를 내며 어떻게 좀 해보라고 물건을 마틴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게 없자 기어서 집 밖으로 도망간다.
밥도 마틴을 마주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킴이 마틴에게 저주를 풀어달라고 했음에도 마틴이 저주를 풀어주지 않자 집을 나갔고 스티븐과 안나는 킴을 찾아다닌다. 어차피 기어서 갈 수밖에 없으므로 멀리 가지 못한 킴을 집으로 데려온다. 아빠는 킴을 무릎에 앉힌 뒤 기어 다니느라 다친 킴의 다리를 치료해 준다. 엄마는 옆에서 보고만 있다. 이때 킴의 대사가 인상 깊다.
"내가 이기적이었어. 너무 내 생각만 했어. 아빤 내 주인이고 난 복종하는 사람이야. 아빠와 동생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이 저주를 끝내줄 수 있는 인물이 마틴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틴이 해주지 않았다면, 그다음은 자신의 아빠에게 달려있다는 걸 알았으므로 그에게 복종하는 말을 전한다. 이때 엄마 옆임에도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매우 인상 깊다. 동생만 편애하는 엄마가 킴도 싫었겠지. 물론 이런 말을 듣는 엄마도 아주 불쾌했을 것이다.
· 안나는 스티븐에게 말한다.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본인이 필요하다. 그러니 아이들 중 하나를 죽이라는 의미이다.
· 밥은 엄마 아빠가 자신을 위해 피아노를 주문했다는 얘기를 킴에게 한다. ―나를 죽일 거라면 그 비싼 피아노를 주문했을 리가 없다는 어느 정도의 믿는 구석이었겠지.
· 그런데 킴은 그런 근거 없이도 강렬한 믿음을 갖고 있다. 당연히 엄마도 나도 아니라 밥 네가 죽을 거라는 것을 전제하는 말들. (선택받은 자는 자신이 선택받았음을 안다?)
그 믿음이 너무나 확고하여 무서울 지경이고, 밥도 그 말에 어떤 위기감을 느꼈는지, 기어가서 가위로 자기 머리카락을 자른다. 그러고 아빠에게 가서 나 머리 잘랐다고, 화초에 물도 주러 가겠다고 한다. (심판 앞에서 뒤늦게 회개하고 만회하려는 모습)
스티븐도 고민이 많았겠지.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어땠는지에 대해 상담해 보기도 한다. 둘 다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공부도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는 말. 그럼에도 스티븐은 둘 중 누가 더 낫냐는 질문을 하며 교사를 난감하게 만든다. 친부모 앞에서 형제를 차별하는 말을 어느 교사가 할 수 있겠는가. 스티븐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다. ―사실 어느 정도는 '답정너'의 행동이었다.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답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 뿐.
결국 스티븐은 세 명을 모두 묶고, 입과 눈을 막은 뒤. 자신도 모자를 내려 써 눈을 가리고 빙글빙글 돌다가 총을 쏘기로 결정한다.
이 결말도 사실 백 퍼센트 랜덤/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첫 번째 시도. 스티븐이 돌기 전에 딸 쪽으로 몸을 향한 채 모자로 눈을 가리고 돌다가 총을 쏘았다. 모자를 벗어보니 딸 근처로 총알이 빗나갔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엔 아내 쪽으로 몸을 향한 채 시작하고 돌다가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아내 근처로 총알이 빗나갔음을 확인했다.
세 번째 시도. 이번엔 어느 쪽으로 몸을 향하고 시작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 쏜 총알은 아들의 몸을 맞혔다.
이게 우연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킴은 아빠 딸이긴 했지만 스티븐이 킴만을 드러내놓고 예뻐하고 반대로 밥을 심각하게 차별했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조금 더 예뻐하긴 했지만 대체로는 공평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킴이 잘하면 칭찬하고 밥이 못하면 혼내고 그런 정도였다. 어느 정도는 아들만을 예뻐하는 아내의 행위에 대해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안나는 밥을 드러내놓고 예뻐했고 킴에게는 관심도 없었다(마틴이 킴이랑 더 친한 것도 몰랐을 정도라는 점에서 아예 관심이 없는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두 아이가 똑같이 아픈 상황에서조차 한 아이를 닦아주고 쓰다듬고 예뻐하면서 다른 한 아이의 뺨을 때리기도 하는 정도였으니까.
또한 안나는 스티븐의 동료 의사와 부적절한 관계까지 갖고 있었다.
누가 죽든 스티븐의 입장에선 자기 손으로 가족을 죽이는 셈이다. 그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이 스티븐은 죄책감과 치욕감과 굴욕감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꾸어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누가 죽어야 가장 불편한가?
1) 엄마가 죽었다면 킴의 입장에선 차별도 덜 당하고 동생을 좀 더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킴이 죽었다면 (원래도 그랬지만) 밥 혼자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엄마는 밥이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무려 기뻐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3) 스티븐의 근시안적인 입장에서는 밥이 죽는 게 가장 본인이 덜 괴로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능력 있는 아내와 똑똑하고 성실한 딸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 그리고 그 선택은 동시에- 감독의 의도이자 마틴의 복수의 의미가 되는 가장 불편한 길을 향하게 된다. 스티븐 자신의 손으로 그 결말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에 그들은 마틴을 경외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이고 보통은 그렇기 때문에 신을 섬기고 종교를 갖는 건데... 마틴이 스티븐의 가족들에게 내린 저주와 비슷하게 경외의 의미도 반대의 길을 간다.
스티븐의 가족들은 마틴이 분명히 싫었을 것이다. 죽이고 싶다는 말로도 부족했겠지. 하지만 결국 마틴에게 자신들을 파멸시키고 그 파멸로부터 구할 능력이 모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싫어도 싫어할 수 없을 거고, 그렇다고 자기들보다 조건적으로 부족하면서도 자기 가족들에게 저주를 건 '남자애'를 추앙하고 숭배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식당을 떠날 뿐이다.
ps- 스티븐의 가족들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부부가 함께 앉고 맞은편에 킴 혼자 앉아 있게 된다. 마틴은 한편으로는 스티븐 가족 '내'의 균형을 맞춰줬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끝).
∞ 602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_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