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보면 아름답고 깊게 들여다보면 끔찍하다. 영화도, 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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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에서 소리 어쩌고 이야기가 있길래 소리를 크게 했음에도, 내가 본 OTT에서는 소리가 작은 편이라 영화 시작 5~10분쯤 이후에 소리를 훨씬 더 크게 하고 난 뒤에야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봤다고 말하자, 이 영화를 모르는 분이 어떤 영화냐고 묻기에 "생각 않고 보면 예쁜 영화, 생각하고 보면 잔인한 영화"라고 답했다. 이런 말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너무나 아름답게 찍어놨고 동시에 아름답기에 잔인한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의 소리로 깔리는 잔인함에 대해서 많이들 얘기하지만, 그건 영화 전체에 깔리기 때문에 나중엔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다. 아마 주인공 부부(루돌프 회스-헤트비히 회스)와 그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되어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였을 거 같다. (별개로, 영화에서는 촬영 후에 따로 소리를 입힌 것이라고 한다).
소리 말고, 설명 없이 보여주는 잔인한 순간과 대사들을 먼저 언급해 본다. 아래에 ●표시와 함께 작성했다.
● 헤트비히와 그의 주변 여자들이 모여서 대화를 한다. 주변 다른 지인 얘기를 하며 속삭인다.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맞는 거 같다고, 팔에 멍 자국이 있었다고. (그들의 지척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현장을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걱정이다).
● 무언가 꾸러미를 받는다. 쏟아보니 옷이다. 갖고 싶은 것들 가져가라고 한다. 헤트비히도 그중에서 몇 가지를 고른다. 좋아 보이는 모피코트, 그 주머니에서 나온 립스틱. 립스틱은 발라보고 모피코트는 수선해야겠다고 한다. 그들이 가졌던 좋은 물건을 자신들이 갖는 건 부끄럽지도 역겹지도 않은 거 같았다.
● 위 장면과 연관되어서, "이 다이아 어디서 났게? 치약 속에 있었어. 하여튼 잔머리들은. 똑똑한 인간들이잖아."
● 루돌프와 군인들은 그들을 빠르게 소각하기 위한 순환시스템을 덤덤하게 말한다. 이렇게 저렇게 태우면 빠른 시간 내에 해결이 가능하다고, 효율이 좋다는 이야기. 마치 쓰레기 소각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그저 좋은 방법을 찾았을 뿐이라며.
● 아들이 둘인데 그중 작은 아이는 군인 정병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너는 소총을 가져, 너도 소총을 가져. 그런 역할극이 익숙하다.
● 큰아들은 자기 전에 혼자 손전등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게 뭐냐고 묻는 동생의 질문에 이빨이라고 답한다. 아마 그들을 태우고 나온 금니 등인 거 같다. 마치 과학시간이라도 되는 양 호기심 가득하게 관찰을 한다.
● 루돌프 부부는 침대에 누워 지난번에 좋았던 이탈리아 여행을 추억하고, 다음에도 또 가고 싶다고 약속해 달라고 한다. 또한 아내에게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한다. 프랑스제 향수인 거 같다. 아름다운 추억과 앞날을 약속하며 좋은 향기를 나눈다. 바로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냄새가 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이 평범한 대화조차 역겹다.
● 루돌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일을 하는 중이고 옆에서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난다. 루돌프의 얼굴에 재가 튀어있다. 표정은 덤덤하다. 루돌프는 집에서 세수를 하다가 코를 풀면 코에서 재가 나온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 헤트비히는 정원의 꽃을 가꾸고 루돌프는 아이들과 강에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다.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간. 그러던 중 강물에 하얀 가루가 밀려오고, 의아한 루돌프는 물속에서 뭔가를 건져낸다. 뼈처럼 보였고 그는 기겁하며-뼈 자체에 기겁한 건 아닌 거 같다- 아이들을 물에서 꺼내 귀가한다. 아이들은 집에서(아름답고 깨끗한 욕조에서) 씻긴다.
● 루돌프가 전화로 엄중하게 경고하는 말. 내용을 보니 집 옆의 라일락을 꺾거나 꺾이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중요하다고. 그 꽃 하나하나가 중요한 모습.
● 그렇게 소중하게 가꾸던 집이니, 특히 헤트비히에게 루돌프의 전출 명령은 충격적이다. 그래도 늘 웃고 나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헤트비히는 완전히 분노하고 일하던 여자아이에게도 심한 말을 쏟아내고 남편에게도 강경하다.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으므로 남편만 발령지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부부가 떨어져 있는 것을 택하는 게 나을 만큼 놓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장소라는 뜻이겠지.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든, 시체 타는 냄새가 나든 간에.
● 루돌프의 장모, 헤트비히의 엄마가 놀러 왔다. 헤트비히는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집을 소개한다. 난방공사부터 했다고. 겨울에 진짜 엄청 춥다고. 얼어 죽는다고. 그래, 누군가는 그 얼어 죽도록 추운 겨울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손수 하나하나 꾸민 집. 그리고 아름답고 풍족한 음식, 정원과 작은 밭까지 엄마에게 소개하고, 어머니도 잘해놓고 사는 딸 부부가 보기 좋은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 좋고 예쁜 정원에서 낮잠을 자던 루돌프의 장모는 멀리서 피어오르는 노란 연기들과 함께 잠에서 깬다. 아마 어떤 냄새도 났겠지. 그날 밤. 장모는 잠을 자야 하는데 밖에서 자꾸 붉은 불빛이 난다. 소리도 끝이 없다.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고 생각에 잠긴다. 창문을 열자 들어오는 냄새에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는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깨닫고, 말도 없이 딸의 집을 떠난다.
● 아무것도 모르는 헤트비히는 다음날 엄마가 없어진 것에 의아해하다가, 엄마가 남기고 간 편지를 발견하고 읽는다. 말없이 그 편지를 읽고 또 아무 말도 없이 그 편지를 화로에 넣어버린다.
그러고서는 또 일을 하는 여자아이에게 폭력적인 말을 한다. "너 따위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 수 있어."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말이다. 또한, 이미 자기 엄마의 편지를 조용히 재로 만들었기도 하다.
● 작은 아들이 혼자 방에서 노는데 밖에서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직접적이고 끔찍한 소리가 들린다. 사과를 하나 두고 싸웠기 때문에 강에 처넣겠다는, 그리고 저항하느라 울부짖는 소리. 아이는 커튼을 열고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닫고 외면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다신 그러지 마."
-아이가 잘못했고, 혼났고, 그러니 그 뒤에는 그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거 같다. '다신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돼.'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혼날 일도 아니지만 큰 폭력을 당하고, 다시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실제로 이 소리들의 마무리는 총성으로 끝났다.
● 겨울이 되었다. 엄청난 추위. 루돌프는 그 추위 속에서도 지나가는 강아지를 예뻐한다.
● 날이 추워 여자들은 정원에 나오지 않고 형제 둘만 놀고 있을 때,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번쩍 들어 온실에 넣는다. 사실 바깥은 춥고, 온실은 식물도 있고 따뜻하니 나쁘거나 잔인한 장난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하지 마! 이 반역자야!"라며 크게 반발하고, 큰아이는 강제로 아이를 집어넣고 밖에 앉아서, '갇혔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작은 아이를 보며 '스-, 스-'하는소리를 낸다. 그곳은 그들에게 가스실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장난인 거고.
진급 축하 파티에서도 루돌프는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가스로 몰살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근데 천장이 너무 높아서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래.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로 충성도 높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없었겠구나. 그 충성마저 얼마나 잔인한지.
루돌프는 그렇게 야근을 하고 퇴근하다가 계단에서 오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복도를 돌아본다.
자신이 이루어낸 것들, 자신의 성공의 여정이 있는 곳을 돌아본 것일까.
그리고 화면은 현대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추정)으로 바뀐다.
그곳에 있는 것들, 증거들, 옷들과 뼈와 그런 것들.
당신이 이루어낸 것들은 바로 그것이라고 보여주듯이.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본 뒤에 이것저것 찾아보니 사과를 놓고 다니는 야간 장면, 루돌프의 가정적이고 동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나오는 혼외정사 등이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현실을 영화로 잘 옮겨왔다고 느꼈다.
나는 초반부 그들이 유태인의 물건을 나누는 장면에서부터 그 의미를 깨닫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정색하며 봤다. 소리는 오히려 큰 부분이 아니라고 느꼈다. 앞서 말했듯이, 듣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니까. 일상이 되니까... 그들도 그 모든 소리와 냄새를 일상으로 넘기고 살아갔던 거겠지.
-소리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나오는 소리가 더 충격적이었다. 엔딩 크레디트일 뿐이고 쿠키영상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 오직 소리뿐인데 이렇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물론 그 또한 충격을 주기 위해 의도해서 만든 소리일 테니 더욱더 영화적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를 보며 그들의 자녀들이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기도 했다.
저 아름다운 곳에서의 아름다운 생활도 기억할 테고, 자신의 아버지였던 루돌프 회스의 사형과 사망도 기억할 텐데, 싶어서. 다양하게 도망 다니면서 부끄러워하면서 또는 인지부조화로 많은 것들을 부정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실제로 루돌프 회스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자녀들에게만은 자상하고 좋은 아버지였던 게 맞고 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모습이었을 테니, 인지부조화가 오는 것도 당연하고.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한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닐 테고.
그렇게 본능적으로 부정하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런저런 추측과 관찰 등에 의한 것들 같다만.
그들이 그런 사람의 자식이고 손주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통을 겪는 일은 안타까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봤자 저 아름다운 집을 떠나야 할까 봐 분노하던 헤트비히의 모습에 가까운 수준의 고통이었을 거라 짐작해 볼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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