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마음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진짜 현실
댓글은 원글(네이버 블로그)에서만 작성 가능합니다.
이 영화 후기를 보면 어쨌든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욕을 먹고 있다.
주인공 어린이 '무니'가 하는 행동도 어쨌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철없는 행동이고
그런 무니의 철없는 행동들을 내버려 두는 무니의 엄마 '헤일리', 또한 아이와 관계없이 헤일리의 행동이나 사생활은 쉽게들 욕할 일이기도 하고.
(한때는 친하게 지냈고 아이들끼리 친했는데) 그 헤일리의 손을 놔버린 애슐리를 욕하기도.
유일하게 욕을 먹지 않는 게 모텔 매니저 바비이겠지. 바비 극한 직업... ㅠ
하지만 실제로 바비 같은 인물이 있다면 욕을 먹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원리원칙을 따르고 지켜야 할 건 다 지키면서도 헤일리 모녀를 동정하지도 이용해먹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그 모녀를 '보호'해 준다는 의미로 지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엄청난 바비의 마음과 언행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었다...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에 그 부분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억장이 무너졌다. ㅜㅜ
그러나 아무도 욕할 수 없다.
헤일리가 처음부터 몸을 팔았었나?
직업소개소에서 소개해 준 자리가, 그냥 평범하게 춤만 추는 곳인 줄 알았더니 2차로 남자랑 잠자리를 권했기 때문에 헤일리는 분노한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의 아이가 화장실에 있는 모텔 방에서 다른 남자와 (돈을 벌기 위한) 잠자리를 하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마음을 지나왔을지...
다들 그녀의 방에 매번 다른 남자가 들락거리는 걸 보면서, 혹은 성매매 소개 사이트에 올라온 그녀의 몸(문신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몸을 판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침묵한 채 등을 돌리거나 혹은 창녀라고 조롱할 때조차-
호텔 매니저 바비는 매니저 권한으로 모텔 복도 등에 있는 CCTV를 통해 그녀의 방에 여러 남자가 드나드는 걸 보면서, 그리고 갑자기 방세를 밀리지 않고 잘 내는 걸 보면서, 이미 모든 걸 짐작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은근하게 물어본다.
일자리를 구했냐고, 그렇다고 답하는 헤일리에게 바비가 다시 묻는다.
근무 시간이 특이하네? 항상 파자마만 입고 있잖아? 그리고 일하는 동안 무니는 누가 봐주고 있는데?
정확한 질문들.
하지만 바비가 헤일리가 그런 일들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바비는 그저 모텔 매니저이고 그렇다고 그가 그들을 거둘 것도 아니고...
그저 바비가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 그리고 아동성애자가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 달려가서 아동성애자를 내쫓는 정도. 최선을 다해도 그 정도...
애슐리는 헤일리의 친구였고, 일하는 곳에서 몰래(혹은 남는?) 음식을 헤일리에게 전해주기도 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애슐리의 아이 스쿠티가 헤일리의 딸 무니가 친구 사이이기도 하고 둘 다 자신의 아이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잘 되어가던 남자가 아이를 싫어한다면 바로 그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 수 있음) 통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게 서로의 아이를 봐주고 챙겨주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이였다.
하지만 무니와 스쿠티가 근처 빈 집에 방화를 저지르는 일이 생긴다. 처음부터 범인이 무니와 스쿠티였다는 걸 알았던 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애슐리와 헤일리의 행동이 갈리고 관계도 갈라진다.
헤일리는 불이 났다며, 무니에게 불구경을 하자고 하며 딸과 함께 즐겁게 불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애슐리는 뭔가 촉을 느껴 스쿠티를 다그친다. 왜 불이 난 거 같냐고, 엄마한테까지 거짓말하지 말라고. 방화는 큰 범죄이고 이 사건으로 애슐리는 스쿠티에게 무니와 놀지 말라고 한다.
헤일리와 무니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잘 만나던 친구가 등을 돌린 상황이 된다.
하지만 애슐리를 욕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무니가 떠나기 직전 스쿠티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애슐리도 진심으로 무니를 안아줬다. 애슐리는 그저 평범하게 자신의 아이를 사랑했고, 자신의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있는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 애슐리를 욕할 수 있을까?
.
.
.
그래서 너무 슬픈 영화였다... 무엇보다도 무니가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했다는 부분이 가장 슬펐다.
무니는 말한다. 자긴 어른들이 울려고 하면 바로 안다고.
아마 자기 엄마가 울 것 같은-뒤이어 실제로 운 순간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겠지.
쓰러진 나무를 보면서 말한다. 이 나무는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그것도 결국 자신의 엄마 얘기일 것이다.
무니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했다는 건 이후 아동복지국에서 나와서 헤일리를 다그칠 때 무려 아홉 명의 남자가 헤일리의 방을 다녀갔다는 정보가 나오는데... 아홉 명이나 다녀갈 동안 무니는 그때마다 매번 욕실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무니를 발견하고 뭐야, 애가 있었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엄마를 부르지 않고/혼자 조용히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고/그러다 자신을 발견한 남자를 보고도 무니는 울거나 화내거나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알면서도 다 모른 척했다. 그게 엄마를 지키고 자신을 지키고 엄마와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엄마를 신고하고 강제로 떨어져 살게 되는 상황까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을 테고(사실 헤일리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지만).
사랑하거나, 사랑까진 아니어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갑자기 히어로적인 인물이 나타나서 그들을 거두지도 혹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영화 속 해피엔딩보다 현실의 변화가 더 중요하니까 - 그 계기가 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 1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에 나는 그 1분을 보고 몰입이 깨지고 어이가 없다고 느꼈다.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판타지스러운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뒷모습만을 보여주지만 그 아이들은 분명 그곳을 달리면서 웃고 있을 것이 그려진다.
행복하겠지. 어린이들은 그런 법이니까. 친구의 손을 잡고 달리면서 웃고 있을 게 분명한...
나는 아파도 현실적인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고 특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장면에 그저 당황스러워하다 보니 영화가 끝났지만.
'아파도 현실적인' 것과 '현실적이지만 너무 아픈' 건 약간 다르긴 하다.
아파도 현실적인 건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시선이고 이야기이지만
어린이의 이야기가 된다면 현실이긴 한데 너무 아픈 이야기였기도 하다.
그래서 '너무 아프지 않도록 감독이 선물해 준 1분이었다'는 코멘트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너무 아프지는 않기를 바라며.
(끝).
∞ 602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_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