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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스타렛 Starlet, 2012

Amo: Volo ut sis.

by 육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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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렛은 여주인공 제인이 기르는 강아지의 이름. 포스터에도 있듯이 엄청 귀엽고... 조용하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감독 션 베이커의 작품. 스타렛이 더 앞선 작품이지만 나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때문에 이걸 보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조용해 보이는 일상이 나온다. 근데 영화의 채도가 정말 낮은 거다. 위의 포스터는 엄청나게 채도가 높게 보정된 버전이다. 처음에만 이렇고 뒤에 가면 달라지려나? 했는데 끝까지 채도가 낮다. 션 베이커의 영화를 다 본 건 아니지만... 탠저린의 예고편까지만 본 상황에서는 아마 영화마다 의도한 색감이 있는 거 같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영화의 채도가 낮은 이유는 스타렛과, 이웃 할머니 세이디의 채도가 낮기 때문이 아닐까? 여주인공 제인은 직업상 채도가 높고 통통 튈 것 같으면서도, 본성은 낮은 채도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제인, 미키, 멜리사

제인이 얹혀사는 집주인(?)인 멜리사, 그의 남친 미키와는 친구이고 직업적인 면에서도 비슷할 거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제인은 그들처럼 약에 절어있거나 언제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하지도 않고, 대체로 진중하고 주어진 일이 있으면 어쨌든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습도 보인다.


방을 좀 꾸미려고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구매한 보온병에서 엄청난 돈을 발견한 제인. 만약 그 돈을 발견한 게 멜리사나 미키였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약을 구매하는 데 돈을 전부 써버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제인은 고민하다가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러 가고 어렵게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세이디(할머니)는 반품은 안 된다고 매정하게 문을 닫기도 한다.


어쨌든 자신에게 들어온 엄청난 돈으로 자신이 사고 싶던 거 이것저것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마약을 구입한다든가 터무니없이 탕진한다든가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제인.

그리고 미안해서였을까? 아마 제인의 성정을 보면 미안해서였을 거 같지. 그녀는 택시를 타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세이디를 미행하고. 세이디가 장을 보고 나올 동안 대기하고 있던 택시 기사에게는 돈을 줘 보내버리고 세이디를 태워 집에 데려다주고 장 본 걸 함께 정리하기도 한다. 주말에 뭘 하냐고 묻고 빙고게임을 한다고 하고. 거기에도 따라가서 나타나고. 또 집에 태워다 주던 중 세이디는 제인이 사기꾼이라고 확신하여(목적 없이 이 늙은이에게 친절한 사람이 어딨겠나 싶었겠지)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찰도 오고... 제인은 표면적으로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고, 경찰도 제인 편을 들어준다. 제인도 화가 나서 가버리고. 세이디도 경찰의 말을 듣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본 뒤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제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기도 한다. 좀 의심이 많고 괴팍해 보여도 이상한 할머니는 아니었던 것이다. 제인도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세이디는 우물쭈물하다가 다음에 마트에 태워주겠냐고 한다.


그저 내게 친절을 베풀고 '싶었던' 거라면, 그냥 그 친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고 존중이니까.

그렇게 둘은 가까워진다.



늘 항상 함께하는 건 아니지만. 마트에 태워주고 함께 브런치를 먹고 빙고게임을 하러 가고. 사실 젊은 제인에게는 심심해 보이는(채도가 너무 낮은) 일상인데도 제인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함께 한다. 제인은 세이디에게 사적인 질문-남편은요?(죽었어) 재혼 안 하세요?(안 해) 자녀는 없으세요?(없어)-을 잘도 하지만. 본인의 직업(포르노 배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직업 특성상 남자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는 정도의 말은 한다.


여느 때처럼 또 마트에 세이디를 데려가 준 제인. 장을 보는 세이디에게 정말 손녀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정문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트 직원이 와서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한다. 여긴 소방도로라서 주차하면 안 된다고.

할머니 기다린다고, 잠시면 된다고 해도 강경한 마트 직원. 그냥 한 바퀴 돌고 다시 오라고 말하고 제인도 알겠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쓰레기차가 길을 막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지체가 되었다. 다시 마트 앞에 왔지만 세이디는 보이지 않는다. 제인은 세이디를 찾으며 천천히 차를 모는데... 장본 것을 들고 걸어가는 세이디를 발견한다.

제인은 분노하며 뭐 하는 짓이냐고, 당장 타라고, 어떻게 내가 할머니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할 수 있냐고, 미쳤냐고, 그걸 다 들고 집까지 걸어가려고 했냐고 화를 낸다.

사실 세이디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할 것도 같은 이 상황에서 제인이 화를 낸다. 제인이 세이디를 아꼈고, 세이디가 자신을 신뢰하길 바랐으니까.


그런 소동 뒤에 운전해 오면서 제인은 세이디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린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우정과 애정을 확인한다. 또한 세이디는 제인의 강아지 스타렛을 위한 걸 마트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소소한 우정이 쌓여가는 시간이 지나가고...


이제는 제인이 일을 하러 가며 세이디에게 스타렛을 맡기기까지 한다. 포르노 박람회에 가서 화려한 옷을 입고 열심히 안내를 하고 인사를 하는 등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최선을 다하는 (멜리사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제인의 모습. 그리고 집에 있는 세이디. 세이디가 스타렛을 부르는데 스타렛이 대답을 않자 세이디는 혼비백산하여 밖에 나가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닌다.

불편한 몸과 걸음걸이로 스타렛을 찾아다니는 세이디. 그렇게 화면 가까이 오는 세이디의 모습...

이때 세이디는 울고 있었다.

스타렛은 처음부터 나가지 않았던 건지, 찾은 건지. 어쨌든 제인이 일을 마치고 세이디에게 왔을 때 세이디는 엉망이 된 모습으로 스타렛을 건넨다.

"스타렛 데려가."

"무슨 일이에요? 얘가 말썽 피웠어요?"

"이젠 네 도움 안 받을래. 그동안 고마웠어. 더는 감당이 안돼. 더는 못하겠어. 가버려. 어서 가."

무슨 말이냐고, 왜 그러냐고, 뭐가 감당이 안 되냐고 묻는 제인에게 소리 지르며 그냥 가라고,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를 거라고, 처음 봤을 때처럼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세이디.



제인은 돈을 줍게 된 직후에 친구인 멜리사에게 은근슬쩍 돈에 대해 말을 꺼냈었다.


엄청난 돈을 얻게 됐다면, 그리고 주인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멜리사는 약을 하던 중이라서 별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스타렛이 장난치다가 몰고 나온 돈을 보고 그 말이 만약을 얘기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모른 척하고 있다가 어느 날 제인에게 말한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쓸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제인은 세이디를 위해 파리(세이디가 파리를 가본 적 없지만 좋아한다고 했음)행 일등석 티켓을 마련한다.

당연히 세이디는 안 가려고 하겠지. 더 이상 찾아오지도 말라고 했으니까. 그걸 이미 잘 알고 있는 제인은 세이디의 빙고 시간에 찾아가서 아주 강경하게 파리에 가자면서, 말도 안 되는 확률에 의존하며 가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이디는 황당해했지만, 결국 그것들이 제인의 애정의 모습이었고 세이디도 제인에게 애정이 생겼으므로 알겠다고 한다.


그날 집에 돌아온 제인은 짐을 싼다. 멜리사가 뭐 하냐고, 어딜 가냐고 묻자 사실대로 말한다. 할머니와 파리에 가기로 했다고. 그러자 멜리사는 분노한다.

그딴 노인네랑 파리 간다고 그 돈을 다 쓸 줄 몰랐다고. 진짜 친구인 우리한테 쓸 줄 알았다고(우리에게 돈 좀 쓰라고 한 말이었다고).

멜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인의 진짜 애정이 어디를 향해있는지도. 둘은 크게 싸우고 제인은 멜리사네 집을 나온다.


그리고 멜리사는 분노하여 세이디의 집을 찾아간다. -이전에 자신을 태운 채 세이디를 데려다준 적이 있었으므로 집 주소를 알고 있다.- 그리고 세이디에게 말한다. 제인이 당신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당신의 돈을 가져가서 죄책감을 느껴서라고. 그러면서 자신의 의견도 덧붙인다. 당신이 불쌍해서 곧 죽을 거 같은 노인네라서 잘해주는 줄 알았는데 당신 돈을 가져가서 그런 거라고.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세이디.

나름의 복수였을 것이고,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닐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세이디는 예정대로 예쁘게 입고, 웃는 얼굴로, 제인이 들어주는 짐들과 함께 공항을 향해 가는 차에 올라탄다.

세이디는 멜리사의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금은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겠지. 애초에 지금 세이디에게는 돈이란 게 여러 가지 이유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이미 이야기 속에서 나왔으며.


세이디와 제인 사이에는 수많은 시간과 소소한 사건들이 지나왔다. 제인이 '자신을 신뢰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던 모습.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다는 스타렛을 끔찍이 아끼는 모습. 재미없고 귀찮을 수도 있는 자신의 일상을 함께 해 온 모습. 제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스타렛을 자신에게 믿고 맡기던 모습. 자신을 남편의 묘지에도 데려다주고, 자신의 추억을 얘기하면 당장 그곳에 가보자며 데려가 주던 제인이니까. 무엇보다 파리를 좋아한다는 말에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온 제인이니까.


그리고 제인의 접근이 백 퍼센트 순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이디를 해치려는 나쁜 뜻이 없었음에도 처음에는 그녀를 사기꾼으로 오해했던 게 세이디라면, 그런 세이디의 눈에 멜리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멜리사만 세이디를 본 게 아니다. 세이디도 멜리사를 보았다. 별로 성실하지 않아 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이 있는 차 안에서도 개의치 않고 울고불고 난리 치며 제인에게 의지하고 고용주를 욕하던 모습... 세이디도 그 모습을 보았다. 또한, 멜리사가 정말 제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제인도 세이디에게 멜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약에 절어 사는 불평불만 가득한 친구일 뿐인데 무슨 말을 하랴.


제인과의 시간들, 그리고 멜리사와의 만남. 이런 것들로 세이디는 나름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세이디가 멜리사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아닐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두 사람. 출발하기 전에 세이디는 제인에게 남편의 묘지에 들렀다 가달라고 한다. "시간이 애매한데 다녀와서 들르면 안 될까요?" 하지만 왜인지 꼭 가기 전에 들르자고 하는 세이디.

늘 차를 세우던 그곳에 도착했는데 세이디는 내리지 않는다.


제인이 도착했다고 하자 세이디는 "네가 해줄래? 네가 걸음이 빠르잖아"라며 꽃을 건넨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기도 했고 제인은 알겠다고, 스타렛 좀 맡아달라며 꽃을 받아 들고 묘를 찾아간다. 제인은 한 번도 차에서 내린 적이 없었으니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므로 묘지의 이름들을 보며 찾아간다.

그리고 도착했다.

프랭크 퍼킨스.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 하나의 이름이 더 있었다.

사라 퍼킨스. 사랑하는 딸.


제인이 세이디에게 이런저런 사적인 질문을 물을 때, 제인은 자식은 없냐고 물었고 세이디는 그저 없다고(No.)만 답했다.... 그리고 잃어서 없는 거였다.


오랫동안 말한 적 없는 비밀을 너에게 말해줄게. 나의 아픔을 너에게 알려줄게. 그런 의미였겠지. 제인은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차에 있는 세이디와 스타렛에게 돌아가며 영화는 끝난다.


-


스타렛을 잃어버린 줄 알고 불편한 걸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던 세이디의 모습. 울면서 돌아다니던 모습... 나에게 소중한 네가 아끼는 강아지이니까. 그리고 어느새 나에게도 조금은 귀엽고 소중해졌으니까. 그리고 그 소란 이후 세이디는 제인에게 더는 감당이 안 된다고,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무엇을? 무엇에 대한 말인지 제인이 아무리 물어도 세이디는 답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소중한 존재가 생기는 거. 그리고 그걸 잃는 거...에 대한 이야기였으리라. 그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아는 세이디일 테니.



나는 이 영화의 한 줄 평을 "Amo: Volo ut sis."라고 적었다. 이 내용은 최근 읽은 책 <인생의 역사(신형철 지음)>에 나와서 알게 된 문장이다. 왜 이 영화의 한 줄 평으로 정했는지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편집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나의 진실은 다음 문장에 있다. “Amo: Volo ut sis.”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훗날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9장 2절)에서 다시 적은 그 말.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 개의 단어.
이런 맥락에서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나.



제인은 스타렛을 사랑했고 어지간하면 스타렛과 거의 항상 동행했다. 함께 동행하지 못할 때에는 스타렛이 집에서 혼자 잘 있기를 바란다. 아끼고 사랑하니까.

그리고 제인은 세이디도 잘 있기를 바란다. 보험사와 관련하여 곤란한 일에 얽히지 않기를 바라고, 마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고.

세이디도 마찬가지였다. 제인이 거기에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한다는 건 나에게 네가 소중하다는 거니까. 그리고 소중한 걸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시작은 백 퍼센트 순수했거나 선의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백 퍼센트 악의도 역시 아니었음에도 악의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그리고 직업과 생활이 너무나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에는 채도가 비슷했으므로 서서히 서로의 옆에 자리를 잡아가며 소중한 존재, 친구가 되었다.



세이디의 아픈 진실을 알게 된 뒤, 즉 영화가 끝난 시점 이후에 이루어졌을 두 사람의 파리 여행은 어땠을까, 당연히 행복했겠지. 다녀온 뒤에는 함께 살기도 했으면 좋을 거 같다. 멜리사와 있었던 집이나, 그 집에서 나와 급히 들어간 곳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이고 제인에게 더 어울리는 장소일 거 같기도 하고.

제인이 세이디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모든 것은 여백으로 남았기에 관객(나)의 상상으로 남는 영역이니, 나는 위와 같이 상상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비슷한 채도의 두 사람이 함께 서로를 아끼고 위하며 살아갈 수 있었기를.

(끝).


∞ 602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_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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