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멈추기 연습
지하철에 앉으면, 고개 숙인 군무가 시작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 모두 작은 사각형 속에 갇혀 있다.
눈은 화면에 못 박혀 있고, 손가락은 그 위에서 쉼 없이 춤을 춘다.
까만 유리창 위에서 펼쳐지는 이 손가락의 안무는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한 채, 각자의 세상 속으로 파고든다.
마치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동시에 곡식 알을 쪼아 먹는 장면 같았다.
서로 다른 역에서 타고, 다른 목적지에서 내리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자세다.심지어 지하철 밖도 다르지 않다.
거리 위를 걷는 이들의 발걸음은 흔들리지만,시선은 여전히 손안의 화면에 묶여 있다. 붉은 신호등조차 그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휴대폰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목에 걸린 펜던트처럼 빛나며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빛에 홀린 나방들처럼 우리는 모두 한 방향으로 쏠려간다.
사실 나도 다르지 않다. 남의 이야기인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내 손에 붙어 있는 이 작은 기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화면은 두루마리처럼 풀려 나와 나를 집어삼키곤 했다. 유튜브 영상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이 시작되고, 단톡방의 알림은 마치 소방차 사이렌처럼 긴급하게 나를 불러냈다. 그러나 그 요란 끝에 남은 건 허공을 스치는
손가락과 텅 빈 눈동자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찾는 건 가족의 얼굴도, 창밖의 햇살도 아니다.
베개 옆에 충실히 대기 중인 휴대폰을 더듬어 알람을 멈춘다.밤새 쌓인 메시지와 뉴스를 확인하면서 음악 듣는 것이 하루의 첫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잠자리에 들 때는 더하다. 오늘 하루의 피곤을 달래주어야 할 베개 대신,
휴대폰의 마지막 불빛이 내 눈꺼풀을 덮는다. 결국 나는 “잘자요”라는 인사 대신
충전기를 연결함과 동시에 하루를 마감한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도전을 시작해 보려 한다.
이름하여 “스크롤 멈추기 연습.”
아침에는 휴대폰 대신 창밖 풍경을 먼저 바라본다. 저녁 식탁에서는 휴대폰을
식탁 바깥으로 내쫓고, 그 자리에 웃음과 이야기를 앉힐 예정이다.
반찬의 간을 음미하듯, 가족의 표정과 말맛을 더 진하게 느끼기 위해서.
걸어갈 때는 이어폰 대신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하철에서는 화면 대신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보련다. 이 작은 연습이 쌓이면, 잊고 지냈던 세상의 소리를 다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오랜만에 카페에 혼자 앉아 책을 펼치기도 했다. 휴대폰은 가방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나는 활자와 눈을 마주했다. 처음엔 자꾸만 손이 근질거려 책장 대신 화면을 켜고 싶었지만, 이내 글자들이 나를 붙잡았다. 두 시간이 흐르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래된 방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창문을 활짝 연 것처럼.
휴대폰은 분명 소중한 도구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게 두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포로로 만드는 꼴이다. 나는 더 이상 알림음에 이끌려 다니지 않으리라.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짜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본다. 스크롤을 멈추면 삶의 장면은 더 선명해지겠지. 그리고 그 선명함 속에서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