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에 접힌 시간
손이 멈췄다.
설거지하던 그릇을 그대로 잡은 채, 숨을 고른다.
참 오래된 노래인데도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처음처럼 가슴을 친다.
바로 향수였다.
깊게 가라앉는 이동원의 음성 위로, 맑게 치솟는 박인수의 고음이 겹쳐졌다.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이 공간에 울리고 있었다.
사람은 떠나도 숨결은 남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비로소 이해한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수도물은 계속 흐르는데,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춘 듯했다.
내가 있는 이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흙마당 위였다.
철문을 밀어 열면 ‘끼익’ 하는 소리가 먼저 울렸다.
그 소리는 우리 집 하루의 시작 같은 소리였다.
문을 지나면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서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던 나무. 여름이면 짙은 그늘을 만들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로 하늘을 긁던 나무. 나는 그 나무를 중심으로 세상을 배웠다.
설이면 마루 끝에 새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다.
고무신 대신 단정한 구두나 운동화가 놓이던 시절이었다.
벽에 걸린 달력은 붉은 숫자를 지나 한 장 더 넘어가 있었고,
집 안 공기는 조금 더 단정해져 있었다. 명절이라는 건 그렇게 집의 숨결을 바꾸어 놓는 날이었다.
엄마는 교직에 계셨기에 늘 바쁘셨다.
새 학기를 준비하듯 설날도 분주하게 맞이하셨다.
대신 부엌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할머니가 계셨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부터 부엌에서는 작은 소리가 시작되었다.
달그락,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지글지글, 소고기를 볶는 소리.
보글보글, 국물이 끓어오르며 내는 낮은 숨소리.
송송 썬 파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떡국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천장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 김 사이로 할머니의 손이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문틀에 기대어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곤 했다. 괜히 국자 속을 들여다보며
“할머니, 아직 멀었어요?” 하고 재촉하던 아이였다.
그 곁에서 엄마는 분주히 설빔을 챙기거나, 세배 순서를 정리하거나,
어른들께 드릴 인사를 점검하셨다. 엄마의 움직임은 조용했지만 단정했고,
할머니의 손길은 따뜻하고 깊었다. 우리 집의 설은 그렇게 두 여인의 결로 완성되었다.
어디를 갔다 와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믿음.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확신. 세배를 드리고 엎드려 있을 때
들리던 어른들의 웃음, 세뱃돈을 받아 쥔 손의 온기, 눈밭을 밟을 때
뽀드득 나던 소리까지 또렷하게 살아났다.
정지용의 시어는 시간을 건너 정확히 심장을 두드린다.
잊고 지낸 줄 알았던 풍경들이 음표를 타고 줄줄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감나무 잎이 두툼한 그늘을 만들었고, 겨울이면 마루 끝에 고드름이 매달렸다.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이던 눈, 설빔을 입고 괜히 어깨를 으쓱하던 어린 날의 나.
세월은 집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그 집도, 그 마당도, 그때의 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노래 한 곡이면 시간은 순식간에 접힌다.
2026년의 설 명절 부엌에서 듣는 노래가, 수십 년 전 설날 아침으로 나를 데려갔다.
향수를 들으며 깨닫게 된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고향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목소리, 한 끼의 냄새, 함께 웃던 식탁의 풍경이 쌓여 고향이 된다는 것을.
지금 나는 또 다른 고향을 만들고 있다.
밥을 짓고,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이 일상이 언젠가 그들에게도 그리움이 되겠지.
의연하게 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이런 노래가 생길 것이다.
설날 아침 엄마의 물소리와, 웃음 섞인 떡국 냄새를 떠올리며 자기들만의 ‘향수’를 부르게 될것이다.
노래가 끝났다.
싱크대의 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그릇은 아직 몇 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아직도 흙 냄새와 파 향기가 은은히 맴돌고 있었다.
향수는 끝났지만,
내 안의 고향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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