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시작한다

이 길이 언젠가 누군가의 발걸음과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by 이연


60대에 글을 다시 시작한다는 말은
아직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50대 늦깎이로 인문학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지었던 표정이 떠오른다.

“현실적인 공부를 해야지.
자격증이라도 하나는 있어야지.”

그 말들이 다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오래 품어온 마음이 사라질까 봐,
다시 꺼내면 상처만 남을까 봐
조용히 숨겨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꿈이 있었다.
어릴 적 방학이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또 읽던 그 시간.
조용한 공간에서 글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그 어린 마음을
나는 한 번도 잊지 못했다.

살아오며 참 많은 일을 했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길의 밑바탕에는
늘 ‘글을 좋아하는 나’가 있었다.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며
손으로 벌어 책임을 지던 장사의 시간들,
팀을 이끌고 성과와 책임을 함께 감당하던 영업관리,
전국을 다니며 마음을 배우던 통신사업,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
한옥마을을 꾸리던 그 시절까지.

어떤 길도 쉬운 적은 없었지만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조용한 방 한 켠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삶에 눌려 글을 다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무나 글을 쓰는 게 아니지.”
그 말은 내 마음속에 견고한 벽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벽을 진짜라고 믿어버렸다.

내게 글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많이 배우고 시간이 남는 사람들이 하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늘 살아내느라 바빴고,
내 안의 마음을 들여다볼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사치’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꿈이라는 것조차
감히 손에 쥘 용기가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내 마음을 조용히 눌러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모든 건 잊혀져도
글만은 잊히지 않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설 때마다
내 안의 어떤 소리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다시 써도 돼.”

요즘 나는 글을 쓰다 보면
눈물이 고여 글씨가 흐려지는 날이 있다.
아직도 두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눌러야 하는
독수리 타법인데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 줄은 몰랐다.

60이면 어떻고,
70이면 또 어떠랴.
늦은 시작은 늦은 것이 아니라
이제야 제때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결정을 하고
작게라도 한 걸음을 내딛자
내 앞에 보이지 않던 문이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문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은
큰 용기가 아니라
조용한 결심 하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라도 쓰기로 했다.
쓰는 동안
내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고
내 삶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는 다시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 시작이
내 삶을 새롭게 데리고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용히 바란다.

이 길이 언젠가
누군가의 발걸음과도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