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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Oct 26. 2024

나와 나

눈을 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눈이 떨어졌다.


눈을 뜬 병호가 캄캄한 방에서 손을 더듬어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는 휴대폰을 찾아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50분이다.

어제 잠들기 전 맞추어 놓은 4시보다 10분 더 일찍 잠에서 깬 것이다.

병호는 늘 새벽시간에 알람을 맞출 때 그 알람보다 자신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알람을 맞추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오늘은 지방 구미에 있는 지사(支社) 신입사원 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예정되어 있어서 어제 잠들기 전 새벽알람을 하고 잠들었다 지금 잠이 깬 것이다.

오늘과 같이 지방으로 강연을 갈 때 그는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였는데 가지고 가야 할 자료와 재료가 많아서였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았다.

아직 사방은 칠흑의 어둠이 뒤덮고 있다.


침대에 앉은 병호는 혼자지만 실은 둘이 앉아있다.


병호는 그의 부인과 잠을 따로 잔 것이 10년이 훨씬 넘었다.

그것이 둘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고 금실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병호의 잦은 출장 때문에 새벽 기상이 많고 둘 다 잠 귀가 너무 밝아 서로로 인해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서였다.

 

당연히 어젯밤에도 병호는 혼자 잠을 잤는데 침대에 둘이 앉아 있다니ㆍㆍ


새벽 3시 50분에 병호를 눈뜨게 한 것은 육체의 그의 눈이 아니라 늦잠을 자기라도 하였을 경우를 염려하는 영혼적인 그의 정신이었다.

병호의 영혼이 이른 새벽 눈을 뜨게 한 것이었다.


병호는 컴퓨터프로그로머(programmer)이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논리나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테스트하는 소프터웨어 엔지니어이다.


처음 입사는 대한전자 구미지사에서 하였지만 입사 2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에 있는 본사로 발령받아 올해 15년째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가 컴퓨터회사에서 근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병호가 10살 때 그는 자주 아버지를 따라 집 근처 오락실을 따라갔다.

그때 한참 유행하였던 오락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갤러그(galaga)였다.


단계가 지날수록 점차 난이도가 높아지는 게임인데 그 난이도라는 것이 내가 쏜 레이저 총에 대적하는 파리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파리 떼들이 그 총을 피하는 기술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었다.


병호아버지는 틈틈이 오락실에서 갤러그게임을 하였는데 어떤 때는 따라간 아들 병호와 100원짜리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그 오락이 병호가 접한 최초의 컴퓨터였다.

어린 병호는 처음에는 나타나는 파리떼들을 박멸하는데 온갖 신경을 쓰다가 어느 날 문득 도대체 어떻게 텔레비전 화면만 한 이 작은 공간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파리떼들이 쏟아져 나오며 또 어떻게 레이저 총이 그 파리떼들을 공격해서 박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생각 처음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점차 관심으로 변하였고 이윽고 집착하리 만큼 컴퓨터의 미스터리에 빠져 들었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무엇에 한 번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만큼 빠져드는 성격이었지만 컴퓨터와의 사랑(?)은 빠져도 너무 빠져 들었다.


향후 20~30년 후에는 지금의 컴퓨터보다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어쩌면 경이로운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라는 일부 애널리스트들의 예언이 있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은 그저 흘려 들었다.


그런데 병호는 아니었다.

어쩌면 발달된 컴퓨터들에게 지능이 생겨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지경까지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컴퓨터에 빠지게 만들었는지 컴퓨터가 좋아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는지 병호 자신도 잘 몰랐다.


그는 일찌감치 대학을 이과로 선택하고 전공을 컴퓨터 관련 학과를 지원하였다.

그렇게 컴퓨터와 상견례를 하고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컴퓨터와 사귀었다.


공부도 그저 학점을 따고 학위를 취득하여 좋은 직장에 취업을 기 위한 것이 아닌 컴퓨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부하였다.

대학 4년을 마치고 아직 미완의 컴퓨터 사랑을 마저 이루기 위해 2년을 더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또 2년을 컴퓨터 선진국인 미국에서 유학까지 마쳤다.

부모의 애간장을 어지간히 썩이고 부모의 등골도 어지간히 뺐다.


간절하면 이루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었고 하늘이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도왔다.


그는 마침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취업지원생 중 당당히 1등의 성적으로 입사하였다.

처음 입사는 자신의 고향인 지방 대한전자 구미지사에서 하였다.


그가 입사하였을 때쯤 컴퓨터가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을 컴퓨터들이 하였고 컴퓨터들은 그 일을 함에 있어 오류를 발생시키거나 틀리지 않았다.

컴퓨터들은 그렇게 정확한 일을 하면서도 봉급을 요구하지도 휴식시간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로 기업주들은 회사에 대형 컴퓨터 한 대를 들여놓고 종업원 100명을 해고하였다.


병호는 그런 컴퓨터를 설계하고, 기존에 있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없는 기능을 만들었다.

창조라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컴퓨터 중에 소프터웨어를 연구하였다.


병호는 자주 자신이 설계하고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창조하는 컴퓨터들에 의해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큰 곤욕을 치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고 그 생각은 틀림없을 거라는 확신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구미까지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이다.

8시경에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12시가 조금 못 되는 시간에 구미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구미지사에서 지사장과 회사간부들이 병호를 반겨 주었다.

간부중 몇몇은 병호가 구미지사에서 근무했을 때 같이 근무한 직원도 있었다.


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병호는 이내 장비를 챙겨 자신이 강의를 해야 할 회사 대강당으로 갔다.

강당에는 이미 직원들이 병호가 강의할 수 있게 모든 것을 세팅해놓고 있었고 병호는 그곳에다 자신의 장비를 더하고 얹었다.


오늘 강의를 들을 대상은 입사 3년 미만 직원들과 올해 입사한 신입직원들이었다.


강당에는 이제 막 점심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이내 마련된 좌석이 꽉 찼다.

총무팀 직원 중 한 사람이 오늘 수강생수가 230명이라 하였다.


지금껏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주 강의를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많은 인원이 모인 적은 없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떨리고 긴장되었다.


'전에 했던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병호야~~'

병호가 병호에게 말했다.


총무팀장이라는 사람이 230명 직원들에게 병호를 소개하자 그들이 박수로 병호를 맞았다.

밀폐된 곳에서 치는 박수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미리 준비해 온 목차대로 강의를 하였다.


언제나 신입들은 푸르렀다.

눈빛이 빛나고 표정이 진지하고 밝았다.

얼굴 가득히 의욕이 비치고 의욕 앞에서 희망이 빛났다.


'내게도 저런 싱싱했던 시절이 있었겠지'

강의 중에 아련한 그 무엇이 병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병호에게 주어진 1시간 30분의 시간 중에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났고 10분의 휴식시간도 지났다.


조금 전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은 신입사원들 손에 커피잔들이 들려있었다.

'내가 신입 때는 강의실에 커피는 택도 없었는데ㆍㆍ'

살짝 격세감(隔世感)이 들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격세감의 어색함보다 '나 때는'을 달고 다니는 꼰대의 프레임이 더 무겁게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남은 30분은 질문을 받는 시간으로 설정하였다.

미리 나누어준 강의 일정표 목차에 그렇게 써놓았다.


"강사님은 대한전자 全 직원 중에서 컴퓨터 관련 학식이 가장 높으시다 들었는데  언제, 어떤 동기로 컴퓨터와 인연을 맺었나요?"


맨 앞줄에 앉은 도수가 꽤나 높아 보이는 뿔테안경을 쓴 직원이 첫 번째 질문을 하였다.

병호는 자신이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한 갤러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구미가 좋으냐 서울이 좋으냐

근무지로서의 본사와 지사의 장단점이 무엇이냐

대한전자에서 어느 자리까지 가보고 싶으냐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


수강생들이 하는 질문 중 자신의 전공과는 조금 동떨어진 질문에는 가볍게 대답하였다.

대답 중간중간에 농담까지 하는 여유도 생겼다.


"강사님께  컴퓨터는 무엇입니까?

컴퓨터를 만든 인간과 만들어진 컴퓨터는 어떤 관계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중간쯤에 앉은 사원중 하나가 물었다.

말하는 품새나 자세로 보아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은 아닌 듯 보였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질문들과는 꽤나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병호는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탁자 위에 얹힌 컵 속의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답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시간을 물을 마시면서 조금 벌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인간들은 꾸준히 그리고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어떤 것을 연구하고 무엇을 만들고 개발하고 개척하였지요.

그 결과 인간들의 삶은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편리해졌습니다.


석기시대에는 돌로 생활도구를 만들어 편리해졌고 철기시대에는 쇠로 그것을 만들어 삶이 윤택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돌로, 쇠로 생활도구만을 만들지는 않았어요.

그것으로 창을 만들고 칼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켜 윤택해진 만큼의 삶을 뒤로 후퇴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병호는 가끔 오늘과 같이 컴퓨터와 관련한 강의를 하였다.

얼마 전까지 병호의 강의는 100% 컴퓨터와 관련한 기술적인 것만 하였지만 최근부터는 기술 외적인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컴퓨터만 사랑하며 살아오면서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 질문한 사원께서 말씀하신 컴퓨터와 인간의 유관(有關)에 관한 말씀을 지금부터 드리겠습니다.

이는 어디까지 순수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판단이니까 만약 여러분이 생각과 저의 생각이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드시면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이 맞습니다.

다만, 여러분과 저의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강의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하였다.


"저는 지금껏 30년이 넘는 세월을 컴퓨터에 관한 연구를 하고 탐구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컴퓨터 중에서도 소프트웨어 쪽을 연구하였지요.

그러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음 하나가 제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손에 커피잔을 들고 있던 강의실 직원들의 손에서 커피잔을 놓고 눈을 병호에게 두었다.


"역설적이게도 컴퓨터를 만든 인간과 인간에게 만들어진 컴퓨터는 참으로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똑같다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익히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컴퓨터는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곤충이 머리, 가슴, 배로 삼등분이 되어 있는 것처럼요.


흔히 컴퓨터의 외곽을 이르고 있는 이른바 화면, 자판, 마우스 같은 것을 우리는 컴퓨터의 하드웨어라 부르고 컴퓨터의 프로그램 및 그와 관련한 문서 같은 것을 우리는 소프트웨어라 부른다는 것을 이미 여러분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즉,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하드웨어를 통해서 밖으로 표시되고 출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소프트웨어를 가진 컴퓨터라 하더라도 밖으로 출력하는 하드웨어가 없다면 이는 하나 쓸모없는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고 반대로 아무리 좋은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라고 하더라도 기억되고 저장된 프로그램이 없다면 이 또한 아무짝에 쓸모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지요.


이 사실은 사실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최근부터 이는 비단 컴퓨터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컴퓨터를 만든 인간도 컴퓨터와 똑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컴퓨터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수강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병호를 응시하였다.


"만약 A라는 인간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는 나이 50이 될 때까지 몸 어디 하나 곳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영혼은 늘 부정적이고 호전(好戰)적이며 파괴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과연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또 B라는 인간이 있다고도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는 나이 40에 공자와 맹자의 사상과 주역을 공부한 학식이 가득한 유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그의 몸이 너무나 연약해서 오만가지 병을 몸에 달고 살고 있고 그 병으로 인해 앓아누워지는 날이 더 많다면 그 사람은 과연 자신이 가진 학식과 덕망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요?"


병호가 탁자에 있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흔히 자신을 일컬어 '나'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말하고 나는 그저 단 한 사람의 나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은 내가 혼자만의 나는 아닙니다.

나는 분명 둘입니다.

육체를 이루고 있는 하드웨어적인 나와 영혼을 이루고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나

이렇게 나는 둘인 것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아침을 챙겨 먹고 서울에서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곳 구미까지 온 저 손병호와 저의 하드웨어 입을 통하여 소프트웨어의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생각을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한 저 손병호는 이렇게 둘입니다.


만약 이렇게 둘인 저 손병호 중 어느 하나가 아프고 병들면 어떻게 될까요?


컴퓨터와 관련한 저의 지식이 아무리 높고 해박하다 하여도 저를 서울에서 이곳 구미까지 데려올 육체의 제가 없으면 그 지식은 그냥 저의 머릿속에서 사장(死臟)될 것이고 저의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제 미리 속이 지금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지식이 하나도 없다면 이 또한 공염불이 될 것이 뻔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께서는 둘의 자신을 전부 사랑하고 아끼고 가꾸십시오.

영혼은 버려두고 밖으로 보이는 외모에만 신경을 쓰는 여러분은 되지 마십시오.

또 육체의 건강은 버려두고 지식만 후벼 파는 누를 범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은 둘의 여러분입니다.

몸이 아프면 정신도 맑지 못하고 정신이 맑지 못하면 그 몸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세존(世尊)이신 붓다께서도 몸의 고통이 따르는 수행을 멈추시며 '고행(苦行)만이 수행은 아니다'라며 고행의 수행을 거두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정보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를 통해서만 출력이 됩니다.


훗날 여러분의 하드웨어가 수명이 다 되어 폐기를 하여도 여러분들의 소프트웨어는 따로 저장되어 영원히 보관될 것이니까 내면이 아름다운 여러분이 되십시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은 혼자의 내가 아닌 둘의 나입니다."


병호가 강단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수강생들에게 인사하자 230명 전부가 일어나 기립박수로 그의 강의에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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