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서무계에서 안내 말씀 드립니다.
오늘 업무를 종료하신 직원들께서는 퇴근하실 때 각자의 단말기를 꺼지 말고 퇴근하시기 바랍니다.
금일 저녁 전산부에서 우리 지점 단말기 교체작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ㆍㆍㆍㆍ
19**년 어느 때쯤
서무계(총무과) 주임이 지점 내 마이크로 방송을 하였다.
그때 당시 지점에는 직원수가 보통 20~30명가량 될 만큼 많아 지점의 급한 공지사항은 서무주임이 지금처럼 지점 내 마이크로 방송을 하였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 지금껏 지점에서 사용해 왔던 모든 단말기를 성능이 더 좋은 단말기로 교체를 한다는 것이 방송내용이었다.
이럴 때 지점직원들은 지금껏 퇴근할 때 반드시 off 하였던 각자의 단말기를 오늘은 on상태로 두고 퇴근하였고 직원들이 전부 퇴근한 이른 저녁부터 늦은 저녁, 더 늦을 때는 다음날 새벽까지 본부에서 파견되어 나온 전산부직원들이 구(舊) 단말기들은 회수하고 성능 좋은 단말기들로 교체작업을 하였다.
단말기교체 작업을 하였던 그때 전산부직원들은 직원들이 켜놓고 퇴근한 단말기에 접속하여 단말기에 남아있는 정보들을 남김없이 back up작업으로 디스켓으로 옮겨 담았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런 사실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내게는 한 번씩 있어왔던 연례행사에 불과하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였을 때 지점 안 구석진 곳에 어제 교체한 단말기들이 질서 없이 나 뒹굴어 있었고 내 책상 위에는 치워진 단말기들보다 훨씬 얇고 날씬한 성능 좋은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날 업무시간 중에 지점 주차장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오고 구석진 자리에서 나뒹굴던 여러 대의 단말기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갔다.
지나고 보니 나의 은행생활은 어쩌면 컴퓨터와 함께 하였던 것 같다.
81년 11월
은행에 처음 입행하였을 그때 지점 안에 컴퓨터(은행에서는 단말기라 칭하였다)는 3대가 전부였다.
당시 내 초임지 울산지점에는 거의 60명 정도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직원 20명당 컴퓨터가 한 대꼴로 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나마 단말기들은 고객님들이 자신들의 통장에 입금과 출금을 하실 때 입, 출금 금액을 등록하는 역할 외에는 다른 기능은 거의 없었다.
그때 당시 은행 계정 중에 온라인이 되어 단말기로 등록할 수 있던 것은 보통예금과 저축예금 딱 두 계정뿐이었고 나머지 계정은 비온라인, 즉 직원들이 종이로 된 원장에 입출금과 잔액을 손으로 기록하였다.
비온라인이었다.
당시 여자 선배 직원 세 분이 단말기 조작을 하였는데 은행에서는 그들을 오퍼레이터라 불렀다.
그때 어리바리한 신입이었던 내 눈에 단말기 자판을 다루는 손놀림은 가히 경이적으로 보였다.
첫 출근 날
그 여자선배님 중에 한 분이 나를 부르더니 종이로 된 신청서를 내밀고 빈 곳을 채워 적어라 하셨다.
그 신청서에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집 주소, 전화번호 등을 빈칸으로 남겨 놓았고 내가 그곳을 볼펜으로 채워 적었다.
내가 적은 신청서 내용을 여선배님이 단말기에 입력하였는데 나는 그때 난생처음 단말기라고 이름을 쓰는 컴퓨터와 만났다.
그때의 단말기들은 속도가 참으로 느렸다.
기능도 단순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애가 너무 잦았고 한번 난 장애는 복구하는데 너무 긴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center busy
잠시 후 재처리 요망.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내용의 문구가 단말기 화면에 표시되었고 그때마다 창구밖 고객님들은 전산이 복구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그 시간 직원들의 애간장도 타들어갔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 화면이 단말기 화면에 머문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대부분의 고객님들은 그런 상황들을 이해해 주셨다.(물론 강하게 항의하셨던 분들도 계셨지만ㆍㆍ)
-컴퓨터 지가 피곤해서 퍼짓뿟는데 은행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는교?
안그런교?
허허허~~
하며 웃으셨던 마음씨 후덕하셨던 고객님들 미소가 지금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이후 은행의 단말기들은 급속히 성능이 좋아졌다.
처리속도는 나날이 빨라졌고 고객님들과 직원들의 애간장을 어지간히도 태우던 장애는 거의 없다가 이마저도 얼마지 않아 전무(全無)하였다.
어쩌다 장애라도 발생하면 그날 저녁 전국방송 메인뉴스에 나올 만큼 드문 일이 되었다.
단말기 기능들은 놀랍도록 업그레이드되었고 기능 업그레이드만큼 역설적이게도 단말기 모양은 더 작아지고 더 얇아졌다.
가히 컴퓨터 혁명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이었다.
퇴직하고도 나는 컴퓨터와 이별하지 못하였다.
퇴직 후 내 컴퓨터는 단말기라는 이름대신 노트북과 태블릿 PC, 휴대폰이라고 개명을 하고 모양만 달리 하며 지금껏 나와 함께하고 있다.
딱 1년 전
아들과 휴대폰 대리점에 갔다.
5년 넘게 써왔던 내 휴대폰이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 교체를 하려고 하였는데 아들이 기어이 따라오겠다 하였다.
나 혼자 가면 자칫 불필요한 휴대폰 요금제에 가입을 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날 아들과 대리점 직원이 하는 대화를 들으면서
... 아~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말이 있었구나를 느꼈다.
둘의 말은 꼭 어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隱語)와도 같았다.
:;^-^;!0?/(:"-♤♤☆×=₩{○□□¡
해석이 잘 되지 않는 둘의 대화가 끝나자 대리점 직원이 나에게 구매할 휴대폰을 선택하라 하였지만 그 선택은 아들이 하였다.
-갤럭시 ****으로 할게요.
지금 출시되고 있는 최신폰이라 하였다.
100만 원이 넘는 가격이 비싸 난색을 표시하는 내 얼굴을 본 아들이 이내 말했다.
-아빠
우리 남매 셋이서 아빠한테 드리는 생신 선물이니까 부담 갖지 마셔요.
기특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래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찰나로 지나갔지만 아들 뜻에 따랐다.
(그래도 마음만 받고 아이들 지갑은 열지 않게 하였다)
아들이 선택한 휴대폰을 케이스에서 꺼낸 대리점 직원이 내게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을 달라고 하였다.
... 지금 쓰고 있는 내 휴대폰의 정보를 새 휴대폰으로 옮기려고 하는구나.
여러 차례 휴대폰을 교체해 본 내 경험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내 쓰고 있던 휴대폰과 새로운 휴대폰 사이에 한 줄의 線이 연결되어 있었다.
꽤나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손에 휴대폰이 없는 어색함이 살짝 느껴졌다.
코로나 팬데믹 때 마스크 없이 외출한 것처럼ㆍㆍ
또다시 아들과 대리점 직원과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어색한 공간을 채웠다.
%~?@~~!#♤☆÷\☆]○●□■°《¤¡
둘의 대화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내 양손에 두 개의 폰이 쥐어졌다.
하나는 방금 개통한 최신폰
또 하나는 지금껏 5년간 써왔던 휴대폰이었다.
최신폰은 반짝거리며 빛이 났지만 5년간 나와 함께 해왔던 휴대폰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몸에서 풍겨내고 있었다.
케이스가 낡고 휴대폰 색상도 바랬다.
-자
다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휴대폰을 쓰시면 됩니다.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점 직원의 인사를 뒤로 하고 아들과 나는 가게를 나섰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내 양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았다.
오른손에 들린 새 휴대폰은 충전이 50%였다.
내 왼손에 들린 썼던 휴대폰은 아직 충전이 80%가 남아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새 휴대폰에 대한 호기심보다 썼던 휴대폰에 대한 미련의 마음이 더 많이 남아있다.
썼던 휴대폰에서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희한하게 5년 쓴 휴대폰에서 어느 친척의 마지막을 보았다.
임종이 임박하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내 눈앞에서 그분은 아직 떠나지 않고 계셨다.
그분 머리맡에 놓인 심전도 모니터에는 숫자가 아직 표시되어 있기도 하였지만 힘겹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서도 그분은 아직 떠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자분
방금 사망하셨습니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 17분입니다.
간호사의 목소리와 모니터에서 나는 삐이이~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조금 전 힘겹게 보였던 그분의 모습은 없었다.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직 따뜻한 체온이 그분 온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시간만 오후 3시 17분을 계속 넘기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가 걸려왔다.
새로 바꾼 휴대폰에서 소리가 났다.
친구 전화였다.
휴대폰을 바꾸고 처음 오는 전화였다.
얼마 전까지 내게 걸려온 전화를 다 받아주던 5년 쓴 휴대폰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침묵하였다.
컴퓨터와 인간.
묘하게 닮아있다.
둘 다 처음 태어났을 때 주변의 온갖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삶을 시작하고 그 삶의 정점은 불타고 뜨겁다.
가지고 있는 온갖 능력들을 다 발휘하는 그 모습은 아름답고 어쩌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정점의 삶을 지나면서부터 기능들은 하나씩 느리게 둔해지고 망가져간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성능이 떨어진다.
아침에 한 100%의 충전이 오후가 되면서 급격히 떨어지고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충전이 거의 바닥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토록 불꽃같은 삶을 살아왔으니 지칠 때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삶의 끝 지점에 다다른다.
이제는 숨이 가빠지고 충전조차 쉽지가 않다.
켜져 있던 화면이 꺼지기도 하고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기억들 조차 가물거리고 지워져 간다.
임종의 시기
사람들은 병원에서,
휴대폰은 대리점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는다.
나는 내가 은행에 다니고 있었을 때 교체되었던 낡은 구형단말기들이 트럭에 실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제 폐물이 되었으니 폐기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마음바닥의 본능에 이는 내 마음을 맡겼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어느새 나도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세월들을 살아왔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게 남았다.
지금에사 오래전 교체되어 트럭에 실려간 그때 구형 단말기들은 대체 어디로 실려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느 고물상으로 넘어가 지금껏 몸속에 품고 있었던 쓸만한 부속품들 마저 다른 사람들 손에 넘기고 부서지고 해졌을 것이다.
그것으로 컴퓨터로써의 몸의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컴퓨터들이 몇 년간 일하면서 습득하고 수집하였던 정보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같이 폐기되고 해졌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 살아서 활동했던 삶의 기록들은 USB나 다른 back up장치들에 의해 저장되어 지금껏 컴퓨터가 있었던 자리로 다시 들어온 새 컴퓨터의 머리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내 옛날 휴대폰과 새 휴대폰에 연결되었던 한가닥의 줄이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떨까?
사람들은 죽어서 숨이 멈추고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으면 그것으로 그만일까?
그는 그저 수십 년 살아온 삶이 끓어진 숨과 멈춘 심장과 함께 끊어지고 멈추어 정말 죽을 것인가?
그것으로 한 사람의 생이 끝이 날까?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의 삶은 그의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멈출 때 절대권자인 신의 손에 의해 그의 삶을 담은 USB가 따로 보관되어질 것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 지은 선악의 결과에 따라 선업을 행한 사람은 천당으로 가고 악업을 지은 사람은 불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사후에는 천당도 지옥도 없다고 하였다.
다만 그가 살아생전에 행하였던 업의 모양이 비슷한 사람들과 같은 곳으로 보내진다고 하였다.
이를테면 살아생전에 행실이 바르고 마음이 선해 배려심이 많고 양보심이 많은 이타적인 삶을 산 사람은 그와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보내지고 반대로 살아생전에 마음이 고약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한 이기적인 사람은 또한 그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하였다.
그가 있는 그곳이 천당이고
그곳이 지옥이라 하였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나는 지금 내 인생 USB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내가 죽었을 때 절대권자이신 신은 나를 어느 부류의 무리에 데려다주실까 생각해 본다.
나는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속이는 그런 부류는 결단코 싫은데 말이다.
바꾼 휴대폰으로 매일 아침 좋은 글을 보내주고 계시는 분의 글이 또 왔다.
습관적으로 글을 보내는 그분에 대한 성가신 마음보다 '그래도 나를ㆍㆍ'이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답장을 보내드렸다.
"오늘 하루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