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유산(遺産)

by 이종열

[일진불염 : 티끌만큼도 물욕(物慾)에 물들지 않음)


혼란스럽다.

머리가 복잡하고 지금껏 가만히 정(靜)하게 있던 마음이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하게 요동친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삶의 지표로 삼았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스스로 정의라 여기며 살아왔던 모든 것들도 통째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순을 넘긴 지금 쯤 이미 이순(耳順)의 원리를 깨닫고 터득하여 편히들 잘살고 있을 터인데 자신은 나이 예순이 훨씬 넘은 지금의 나이에도 마흔의 나이에 이미 졸업했어야 할 불혹(不惑)의 늪에서 아직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허탈하고 실망스럽다.

영석의 마음은 지금 순항하던 배가 좌표를 잃은 듯 어쩔 줄 모른 채 옴짝달싹 못하고 항구에 정박하고 있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한낮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치졸한 변명처럼 느껴지고 자신이 정한 인생철학대로 살아왔다는 자긍심도 한낮 허술한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느껴졌다.


... 내가 인생을 헛살았어.

내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을 이리도 허망하게 저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잘못 살았어.


영석의 자책 섞인 생각은 가끔 그가 혼자 있을 때 독백의 말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세상사는 늘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理想)과 그 이상을 가로막는 눈에 보이는 현실(現實)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상은 현실을 뛰어넘어야 하고 현실은 이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했다.


이상과 현실은 한 몸에서 같이 살고 있으면서 다른 곳을 보는 이 두사(二頭蛇)와 같았다.


영석은 늘 이상만 추구하고 존중하였고 현실은 비루하고 볼품없는 하찮은 범인(凡人)들의 자기변명의 핑계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영석이 지금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있다.

지금껏 추구하며 살아왔던 이상은 실체 없는 신기루처럼 투명하게 보이고 하대(下對)하며 살아왔던 현실의 실체는 거대한 벽의 모습으로 눈앞에 버티고 서 있다.


영석에게 이상(理想)은 집 거실에 걸린 9대째 가보(家寶)로 내려오고 있는 선조(先祖)의 유산 한자표구였고 현실(現實)은 지금 자신의 몸 깊숙이 들어와 자리한 고약한 병(病)이었다.


한자표구는 영석의 9대 조가 직접 쓴 글이었다.

영석의 9대조는 당시 정이품(正二品) 정헌대부 (正憲大夫)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성품이 정의롭고 호기(豪氣)로웠으며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다.

벼슬을 하면서도 청렴결백하고 정직하여 관록(官祿) 외에는 그 어떤 재화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는 문무(文武)를 고루 갖추어 검(劍)을 잘 썼고 필체가 남달라 조정에서 중국으로 서신을 보낼 때 그의 필체를 빌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는 그의 청렴을 지키는 대신 늘 가난과 함께 살았다.

5년의 벼슬동안 그의 집 살림살이는 매양 그 자리였지만 그의 가솔들은 청백한 가장의 그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


이듬해 그는 왕족 외 친의 부정축재를 조사하다가 그의 모략으로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갔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죽기 전 유배지에서 쓴 글 한 필을 고을수령이 보관하였다가 그의 가솔들에게 전하였는데 그것을 자손들이 보관하며 아랫대로 물려주었다.


고을수령은 평소 그의 인품을 존경하고 흠모하였다.


2년 전

영석은 아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하나 받았다.

-여보

당신과 아버님이 그토록 애지중지 목숨처럼 여기고 보관하는 저 액자가 돈으로 따지면 얼마가 될까?

그래도 모름지기 가보는 값진 것이어야 하는데 그 값을 돈으로 하면?


아내가 거실 한가운데 걸린 9대조 표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때 영석은 내심 아내의 말이 불쾌하고 야속했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아빠 우리 저 할아버지 유품 TV진품명품 코너에 한번 내어봐요.

그 액자 진짜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쓰신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괜한 너스레였는지 한번 확인도 해볼 겸요.

그곳에는 유명한 명품감정사가 계신데 그분이 의뢰품의 진가를 사실에 근거해서 잘 판정해 주시더라고ㆍㆍ

아내 옆에 앉았던 아들도 거들었다.


-가보를 어떻게 돈으로 ㆍㆍ


영석의 말을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가로막았다.

-그냥 의뢰 한번 해보자는데 당신은 무슨ㆍㆍ


짧은 순간 영석의 뇌리에 지금껏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던 9대조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화난 얼굴이었다.


-네 이놈.

너는 어찌 세상 모든 것의 값어치를 돈으로 매기려 하느냐?

고얀 놈

못난 놈


영석이 고개를 숙이고 숙여진 고개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 아내와 아들이ㆍㆍ

9대조는 영석의 변명에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뇌리에서 멀어졌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이놈아

이 못난 놈아


답하지 않았다.

가보의 값어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영석 스스로의 상식과 9대조 할아버지의 노기(怒氣)가 영석의 입을 다물게 하였다.


며칠 후

영석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의 전화가 두어 번 왔다.

02 - **** - ****


받지 않았다.

서울번호로 자신에게 올 전화가 만무하였고 지금까지 02의 번호 대부분은 광고성 전화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같은 번호의 전화가 두 어번 더 왔지만 영석은 받지 않았다.


감기가 꽤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 옷차림이 거의 반팔이고 며칠 전 어느 날은 잠자리까지 보았을 따뜻한, 어쩌면 더운 날씨인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였다.

수시로 오한이 오기도 하고 뼈마디가 쑤시고 아렸다.


달포가 넘게 그랬다.


그리고 보니 자신은 60 평생 살면서 감기를 앓아본 기억이 몇 번 없었다.

대여섯 번 앓기는 하였는데 그것은 추운 날씨에 체온관리를 잘못해서 앓았었다.


대부분이 동지섣달 즈음이었다.

대부분 이틀, 사흘 앓고 이내 나았다.


그런데 지금의 감기몸살은 이상하다.

지금이 감기를 앓을 계절도 아니고 낫는 기간도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뼈까지 아픈 적은 없었다.


-제가 소견서를 한장 써드릴 테니까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셔서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보세요.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혼자 가지 마시고 가족이랑 가십시오.


이상한 생각에 찾아간 동네 병원 의사가 영석에게 한 말이다.

평소 영석에게 잘 웃고 농담도 잘하였던 주치의의 목소리가 다소 떨렸고 얼굴은 심각하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대학병원.

가족과 함께라는 의사의 말이 불길하게 영석의 귀를 맴돌았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병원을 30여분 걸려서 집에 도착하였다.


돌아온 집에 사람이 없었다.


밥솥에 밥이 가득하고 가스레인지 위에 국냄비가 얹힌 것으로 보아 아내의 외출은 잠깐 외출이 아닌 듯 보였다.

교사임용 발령을 한 달여 앞둔 아들은 이제 곧 발령이 나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며 거의 매일 새벽에 들어왔다.


주방식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죽음이 막상 닥쳐도 의연하게 인정하고 맞이하자 다짐해 왔던 것들이 더운 날 얼음 녹듯 허물어졌다.


지금껏 틈날 때마다 해왔던 죽음의 공부가 허사라는 생각에

... 부처님이 이제 나더러 가자고 하시네.

사바세상 여행은 여기까지라 하시네.

가라시면 가야지

내가 별수가 있겠는가?

부처님이 가자시니 가야지 내가 별수가 있겠는가?


눈 밑이 뜨거워졌다.

이 삶에 미련과 아쉬움은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이 뜨거움은 무엇인가 싶었다.


-가자 영석아

미련 없이 가자.

훌훌 떠나자.


혼잣말이 흐느낌으로 내뱉어졌다.


저녁 7시 뉴스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들어왔다.

10년 넘게 해 오던 아들 고등학교 학부모 모임에 갔었다고 영석이 묻지 않는 대답을 아내가 하였다.


아내가 손을 씻고 부엌 싱크대 앞에 섰다.

저녁을 차리려는 모양이었다.


-여보

차려놓은 점심 챙겨 먹었죠?

당신 감기에 좋으라고 시원한 북엇국을 끓여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는데...

밥그릇이 깨끗한 것을 보니 챙겨드신 것 같기도 하고 먹고 설거지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내는 남편한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르게 작은 소리로 영석에게 등을 보인채로 말했다.


영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 점심 안 챙겨 먹었어요?


아내가 영석을 보며 말했다.


-여보

내일 미리 정해놓은 약속 있어?


아내를 쳐다보는 영석의 눈이 흔들렸다.


-약속 없는데 왜 나랑 어디 갈 때 있어요?

아내는 영석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지 못하였다.


-응

별일 없으면 내일 나와 병원이 같이 가보자고.

집 근처 제일병원 돌팔이 원장이 나더러 내일 큰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하네.


아내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땅에 떨어트렸다.


황급히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옆에 앉은 아내한테 오늘 동네병원에 간 이야기들을 하였다.

영석의 말을 들은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여보

아무 일 없을 거야.

제일병원 원장님이 감기를 잘못 보았거나 다른 사람 진료차트를 당신 것으로 착각했을가야.

내가 보증해.

당신 지금껏 이렇게 건강했는데...


영석은 이런 아내의 말이 더 두렵고 무서웠다.


지금껏 자신이 큰 병 진료결과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왔던 위로의 말들이었다.

자신이 해주었던 위로의 말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거의 큰 병을 이기지 못하였다.


아내가 하겠다는 운전을 영석이 고집을 부려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운전하는 차를 아내가 몇 번을 더 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보다 지금 운전대를 맡기면 큰 병의 확진 시간을 지금으로 당겨 놓는 것 같은 거부감이 더 커서였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모습은 여여하였다.

파란불에 출발하고 빨간불에 멈춰서는 자동차들도 그제, 어제, 지금이 똑같았다.


영석은 세상에서 자신만이 그제와 다른 모습으로 지금 거리에 나선 것 같아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지나다녔던 이 거리도 낯설게 느껴졌다.


계절은 더 깊이 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 찍자는 대로 다하고 결과를 기다라는 시간은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였다.

시간이 멈춘 듯 드디게 느껴졌지만 영석은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 자신에게 몸서리가 쳐졌다.


...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영석의 자위적인 생각이 병원건물의 높은 천장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조영석 님.


대기실 안에서 하얀색 가온의 간호사가 문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일순간 정적이 깨졌다.


-예

아내가 대답했다.


간호사를 따라 들어간 진료실에 몸무게가 10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의사가 앉아 있었다.


영석은 의사의 표정부터 살폈다.

의사의 표정이 밝으면 자신의 병은 가벼울 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간절함의 눈빛으로 표시되었다.

-조영석 님

의사의 목소리는 의외로 보이는 육중한 외모보다 가늘고 더 섬세하였다.


영석과 아내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조영석 님의 병명은 혈액암입니다.

최근 들어 중년의 사람들에게 많이 발병하고 있는 조금은 흔한 병입니다.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았다.

영석은 오늘 병원에 오기 전 미리 인터넷으로 자신의 증세를 확인해 보았다.


자신의 최근 증세는 여러 가지 병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크고 고약한 병이 혈액암이었다.

'설마 내게' 하는 마음과 '어쩌면' 하는 두 가지 마음이 영석의 가슴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지금 의사는 '설마 내게'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의사는 혈액암의 특징과 발병 원인, 지금의 상태, 앞으로 치료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하였다.

영석은 그런 의사의 말을 귀에 담아 두지 못하였다.

영석이 흘린 의사의 말을 아내가 주워 담았다.


영석은 의사의 긴 말 중에 두 가지만 기억하였다.

-지금부터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될 것입니다.

-치료비가 조금 부담될 것 같습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은 온전한 자신의 몫이라 얼마든지 참고 견디면 될 일이지만 부담된다는 치료비는 자신이 감당키에 한계가 있는 듯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교사 임용일을 미루려는 아들을 영석은 떠밀듯 그 자리로 보냈다.

평생을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였던 영석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사가 진단한 혈액암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암은 영석의 몸에서 살과 머리카락을 빼앗아갔다.

심한 구토로 실신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씩 병원 원무과에 다녀온 아내의 표정은 영석이 감당키 어려웠다.

구체적인 병원비 액수를 말해주지 않는 아내의 풀 죽은 얼굴은 영석의 더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천 원 단위의 숫자가 화면에서 멈추었다.

000원

그다음은 만원 단위의 숫자가 화면에서 반짝거렸다.

000,000원

백만 원 단위의 숫자는 8,000,000원이었다.

천만 원 단위의 숫자는 58,000,000원이었다.


설마 억 단위에서도?

영석 아들의 눈이 TV화면에서 동공을 키웠다.


그런데 숫자는 천만 원 단위에서 멈추지 않고 억 단위에도 깜빡였다.

최종 결과가 나왔다.

158,000,000원


영석 아들이 아버지의 치료비가 1억 원이 넘는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얼마 전 농담처럼 제안하였던 가보액자를 TV진품명품 프로그램에 내놓았다.


아들로서는 다른 차선책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평수 작은 아파트를 팔더라도 아버지 치료비로는 턱없이 모자라고 설사 된다 하더라도 이후 가난으로 힘들어하며 남은 삶을 살 부모님의 노후가 편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TV프로그램 담당자들의 주선으로 구매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 액자가보를 팔았다.


구매자는 고서(古書)를 모으는 것을 취미로 하는 재력가였는데 그의 배려로 2억 원의 가격으로 팔 수 있었다.


영석은 이후 6개월간 치료로 암을 이기고 퇴원하였다.

아직 완치는 아니니까 한 달에 한 번 내원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꼬리표를 퇴원이었다.


영석은 퇴원하는 길에 아들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9대조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 할아버지

보살펴 주신 덕분에 저 병치료 잘하고 이렇게 퇴원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가보의 월력(越力)이라 여깁니다.


거실로 들어선 영석은 가장 먼저 액자가 걸려있던 벽으로 시선에 두었다.


휑하다.

9대조 할아버지의 유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영석이 환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들이 먼저 영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중병으로 입원해 있는 아버지와 살고 있는 아파트라도 처분해야 할 만큼의 큰 병원비의 무게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는 말을 설명의 끝자락에 넣었다.


아버지께 허락을 받으려 방송국에서 두어 번 전화를 하였으나 아버지가 받지 않았다는 것도 이야기 하였다.


화가 났다.

9대째 내려온 가보를 지키지 못한 죄쓰럼에 화가 났다.

지키지 못한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이 화가 났다.


아들한테 소리쳤다.

그 소리는 자신한테 지르는 소리였다.


-야 이놈아.

나하고 상의를 했어야지.

2백 년이 넘게 9대째 내려온 귀한 가보를 팔아 겨우 20여 년 목숨을 연장한 이 애비가 나중에 죽어 조상님들을 어떻게 보라고 이 생각 없는 놈아.


영석의 소리는 기운이 달려 갈라지고 흩어졌다.


-아버지

제가 만약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신 가보를 지키려 아버지를 지켜드리지 못하였다면 제 남은 삶은 어땠을까요?

또 어머니의 삶은요?


저는 아마 할아버지의 그 액자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는 액자를 좋은 마음으로 보지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께 가보면 저한테도 가보지요.

할아버지께서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고요.

아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가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 9대조께서 오늘 이런 일을 미리 예상하시고 붓을 드셨나 봅니다.

그리 생각하세요.

할아버지는 자신이 쓰신 글자를 지키려 당신이 주신 목숨을 버린 후손을 더 꾸지람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더는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영석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청렴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친필 글씨가 값진 유산인지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의 생명이 값진 유산인지 영석은 알 수 없었다.


가늘고 약한 기침이 났다.


어느새 한 해를 보내는 세모의 풍경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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