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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Mar 25. 2024

개미와 베짱이 後記

개미들은 늘 새벽별을 입에 물고 집을 나서고 초저녁 별을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미가 집을 나설 때 아직 산 언저리에 새벽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개미가 하루에 열 번도 더 왔다 갔던 길을 지나 집으로 들어와 고단한 신발끈을 풀 때 초저녁별이 반짝였다.

한 여름 어느 날은 반딧불들이 초저녁 별 인양 반짝이며 날았다.

 

집을 나설 때 아무것도 없었던 자신들의 입에 집으로 들어올 때는 양식들이 물려 있었다.

고단한 하루였고 고단한 일생이었다.


입이 너무 작아 한꺼번에 많은 양식들을 물고 다닐 수도 없었고 그 입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머리에 달린 눈은 앞에 있는 땅만 볼 수 있어 피고 지는 벚꽃도,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가는 신록도 볼 수없었다.

몸으로 몇 방울의 비를 맞고서야 지금 비가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게 먹고 하루의 거의 전부를 걷고 걸어 허리는 곧 끊어질 듯 잘록하였다.

옆집 어느 곤충들은 개미허리라고 하며 자신들의 허리를 목표로 운동하고 다이어트하였다.

그들이 참으로 잘 타고 태어난 팔자로 보여 부럽기까지 하였다.


머리양쪽으로 길게 난 두 개의 더듬이는 그들이 일을 할 때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감지하고 피하는 것에만 쓰였지 사랑할 때 서로를 느끼고 만지는 용도로는 쓰이지 못하였다.

애당초 사랑의 용도는 매뉴얼에 조차 없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개미의 집에 양식이 쌓인 만큼 그들의 고단함도 함께 쌓여갔다.


아침에 100마리의 개미들이 집을 나섰는데 일을 마치고 들어온 집안 신발장 앞에 놓인 신발은 80개밖에 없다.

스무 개의 신발주인 개미들은 필시 같은 길을 가던 덩치 큰 짐승들의 발에 밟혀 죽었거나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쓸려 집과는 너무 떨어진 곳으로 떠내려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슬프지도 않다.

애달프지도 않다.

그러려니~


이것이 자신들의 운명이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스무 개의 신발은 그 운명을 따라갔을 것이다.

어쩌면 내일의 나도 그 운명의 강을 건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고단하다.

이 생각 저 생각할 겨를도 틈도 없이 곯아떨어졌고 잠의 깊이는 너무나 깊었다.

잠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눈을 붙이자마자 어느새 앞산 언저리에 어제 떴던 새벽별이 또 반짝인다.

저 별이 반딧불이었으면 좋으련만 앞산 언저리에서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새벽별임이 분명하다.


또 신발끈을 조여매고 집을 나선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너희 양식을 보관하고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가서 몇 번 해보았던 보물 찾기가 평생의 업(業)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줄 그때는 몰랐었다.


집안 거실 중앙에 대대로 내려온 가훈이 낡은 모습으로 걸려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셨다고 몇 번이고 들었다.

                         - 가 훈 -

<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고진(苦盡)후에 감내(甘來)한다 >


개미가 지나는 길가 나무에는 늘 베짱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베짱이가 부를 때 나는 노랫소리는 늘 사람들이 베를 짤 때 나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베짱이 이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베짱이는 개미가 지날 즈음에 방금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내 친구 개미야

어찌 그리 바쁘게만 사시는가.

어제 왔던 청춘이 오늘 가고 오늘 왔던 청춘이 내일이면 또 가는 데 가는 청춘이 아깝지 아니한가.

청춘은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고 한번 간 세월은 다시는 뒷걸음은 하지 않는다네.

쉬면서 살아가세.

쉬엄쉬엄 살아가세.

즐기면서 살아가세.

늙어지면 못 놀 것일세."


시간은 빠르게 가는 듯 느리게 갔고 느리게 가는 듯 빠르게갔다.

여름 내내 그렇게 힘차게 울어대던 매미들 노랫소리가 힘이 빠진 듯 약간은 서글프게 들렸고 힘차게 날던 잠자리들의 배가 빨갛게 익어가고 메뚜기와 사마귀는 누렇게 익어갔다.

 

가을이다.

몇몇의 여름친구들은 온다 간다 말없이 가버려 어느 순간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 말벌과 사슴벌레들이 가을과 함께 전학 와서 날아가고, 기어가고 있었고 밤에는 귀뚜라미들이 떼로 울었다.


개미들의 고단한 삶은 계절의 오갊에도 변함이 없었다.

새벽별과 초저녁별만 더 늦게 뜨고 더 일찍 졌다.

그제는 올 들어 처음으로 서리가 내렸다.


개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개미들에게 여름은 청춘이고 젊음인데 청춘의 길이가 짧아지고 젊음의 길이가 줄어들고 있다.


어느 하루~

아침에 방문을 열었을 때 마당 어느 곳에 얕은 얼음이 얼어 있었고 눈을 들어 본 들녘에 눈발이 흩날렸다.


이제는 양식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다.

이제는 양식을 구할 수 없다.

내린 눈에 양식들이 묻혀 잘 보이지가 않고 춥고 바람이 거세어서 잘 걸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수 없다.


오늘부터는 집에서 쉬자.

이제는 쉬어도 된다.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모아놓은 양식들이 창고에 가득하니 이제는 그 양식으로 겨울을 나면 된다.


지금부터는 베짱이처럼 잘할 수는 없겠지만 노래교실에 가서 노래도 배우고 나비처럼 춤도 배울 것이다.

또 백화점으로 가서 비싼 명품으로 호랑나비처럼 화려하고 곱게 몸 단장을 하고 삶을 즐기면서 살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노후준비를 잘해두었다.


밤새 매서운 바람이 불어 대었다.

바람 소리가 밤을 보내는 내내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고 심술 맞은 도깨비가 흔드는 양 창문을 흔들었다.

겨울의 중간을 지나고 있었다.


바람은 늘 밤과 함께 다니는 듯 보인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밤새 세상을 다 날릴 듯 거세던 바람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방문을 열고 대문으로 나가 우체통으로 가서 신문을 꺼냈다.

겨우내 하던 아침 루틴이다.


오늘은 신문 말고도 몇 장의 종이들이 더 우체통에 들어 있었다.


세금고지서였다.

재산세, 보유세, 부가가치세................

거기에다 건강보험료까지 세금이라도 생긴 것들이 모두 자신들의 이름을 목에 걸고 우체통 신문사이에 끼여 있었다.


기가 찬다.


먹지 않고

쉬지 않고

아끼고 절약해서 모은 재산인데 무슨 세금이 이렇게나 많이............


그래

납세자가 세금을 많이 내어야 나라가 부유해지지

자긍심을 가지고 기분 좋게 내자

그리고 노래교실, 댄스교실, 백화점으로 가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몸이 이상하다.

얼마 전부터 속이 매스껍고 가슴이 답답하다.

기억력이 자꾸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노래, 춤이 귀찮아진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명품들도 그까짓 것 싶다.


의욕이 없고 매사가 성가시고 귀찮다.

그리고 보니 요 몇 달 새 몇 번이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넘어졌다.


일주일 전 자식들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받은 건강검진 결과 설명을 들으려고 병원으로 갔다.

난생처음 받아 본 건강검진이었다.

병명을 적은 글자가 결과표의 두 페이지를 넘긴다.


의사가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이 젊었을 때 몸을 너무 혹사해서 생긴 병이라고...........


허무하다.

젊었을 때 고생하고 늙어서 편안하고 행복하려고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편하지 않으니 행복하지도 않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자꾸 눈물만 흘렀다.

살아온 날이 후회스럽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후회의 마음은 자신을 더 초라하게만 하였고 시간을 되돌리려고 하니 살아왔던 세월이 여름날 한차례 아름답게 떠 있던 무지개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베짱이처럼 노래하고 나비처럼 춤이나 추면서 여름날을 보낼 것을 하는 마음이 자꾸만 허한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아참, 그래

베짱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베짱이 생각이 불현듯 난다.


여름 내내 내가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할 때 시원한 나무그늘에 누워 노래하고 기타나 튕기던 베짱이는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양식이 없어 굶어 죽었거나, 바람을 막아줄 집이 없어 얼어 죽었을지도 몰라.


걱정이 되었다.

건너 마을에 살고 있는 베짱이 집으로 가 보았다.


베짱이 집으로 가는 개미의 마음속에 걱정의 마음 반(半) 만큼의 크기로 다른 마음이 한켠을 차지하고 얄미운 마귀처럼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지.

열심히 일한 내가 이리 오만가지 병을 다 가지고 아픈데 게으른 베짱이가 잘 살면 안 되지.

그러면 세상이 공평하지 않지."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건너마을에 도착한 개미의 눈에 베짱이의 집이 들어왔다.

딱 봐도 베짱이 집이 자신의 집보다는 훨씬 작고 초라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이래야 세상이 공평하다 생각하였다.


벨을 눌렀다.


베짱이는 아마 목에 두꺼운 목도리를 두르고, 낡아빠진 외투를 몸에 걸치고, 가누기도 힘든 자신의 몸을 작은 지팡이에 의지해서 피를 토할 듯 폐부에서 나오는 깊은 기침을 하면서  억지로 문을 열어줄 것이야.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지.


문이 열린다.

그런데 베짱이는 너무나 건강해 보이고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얼굴 어디에도 그늘이라고는 없고  몸 어디에도 병색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베짱이는 문 앞에서 반갑게 개미를 맞이하였고 개미는 어색하게 베짱이와 마주 섰다.


베짱이의 안내로 집 거실로 들어섰다.

베짱이 아이들이 쪼르르 거실로 나와 양손을 배꼽에 대고 공손히 배꼽인사를 하였다.

아내가 고개를 숙여 반배(拜)로 개미를 맞이해 주었다.


가정교육이 잘 된 듯 보인다.


자신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베짱이 집 평수만 한 지들 방으로 들어가 하루종일 게임을 하면서 집에 누가 오던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베짱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에 묻혀 이런 기본적인 것도 가르치지 못한 회한이 또 밀려들었다.


한 톨의 쌀도 없을 거라 걱정하였던 베짱이 집 창고에서 과일과 고구마가 먹을 만큼 나와 거실 식탁에 놓였다.


개미가 물었다.

"자네 걱정을 많이 하였네.

여름 내내 겨울을 준비하기는커녕 단 한 푼의 돈조차 모으지 않는 자네를 걱정하였네.

그런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베짱이가 대답하였다.

"개미 자네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을 해서 양식(糧食)을 모았지.

자네가 양식을 모을 때 여름 내내 열심히 노래하고 기타를 튕긴 나는 양식 대신 행복을 모았다네.

청춘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모르고 일만 한 자네는 아픈 병을 얻었지.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청춘의 시절에서 나는 소중한 가족을 얻었다네."


베짱이가 말을 이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지 않으니 세금이 작게 나오고 재산을 관리할 걱정이 없었다네.

걱정이 없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니 몸에 병이 없고 행복하였다네.

겨울이 되어 계절이 황망하니 벗들이 나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고 기타 연주를 하라고 찾으니 이 또한 나의 행복일세.

나라가 부유하니 나 같은 늙은이들에게 어렵지 않은 일거리를 주어 굶지 않게 하니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행복하다네."


말을 하는 베짱이는 행복해 보였고 듣고 있는 개미는 아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개미가 거실에 걸려 있는 가훈을 떼어내어 다시 쓰고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말하였다.

                   


                                  - 가 훈 -

  <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늙어서도 행복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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