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있던 모든 시설들은 사람의 수에 비하여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하였는데도 시람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시설의 부족을 슬기롭게 잘 해결해 나갔다.
작은 빨래터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누구 집이, 또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누구 집에 써가며 하나밖에 없던 빨래터를 6개가 있는 듯 쓰며 살았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짧게 자른 머리에 파마를 하고 양팔과 다리는 건장한 남자의 그것과 비슷하였다.
어떤 날 아주머니의 패악을 다른 곳 주민이 파출소에 신고를 하였는데 출동한 경찰의 멱살을 잡고 집밖으로 끌어낸 적도 있는 여걸 중의 여걸이셨다.
이 집에서 쫓겨나면 길거리에 나 앉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돌아가면 누나 둘이 작은 소리로 생모께 말했다.
"엄마
우리도 테레비 한 대 사자."
그런 누나들의 제안에 생모의 대답은 늘 같았다.
"느그 엄마 팔아서 사라."
주인집 마당을 지나 칠 때 세입자들은 하나같이 주인집 안방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주인집은 남자아이 둘과 딸아이 하나를 두었는데 이들 셋 모두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들 모두를 종이나 머슴으로 알고 그렇게 취급하였다.
큰 딸은 자신의 어머니뻘인 세입자 아주머니들에게 잔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주인집 아이들이 방문을 열어놓고 테레비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전부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테레비를 보았다.
더 운이 좋은 날은 주인집 아이들이 테레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을 때이다.
손으로 과자를 쩝쩝거리며 테레비를 보는 주인집 아이들 머리 위로 보이는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기루와 같았고 우주에 온 듯 신기하고 행복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집 아이들은 방 안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테레비 속으로 들어가고 세입자 아이들은 방문 앞에서 선 채로 테레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낀 주인집 아이 중 하나가 방문을 닫아 버렸다.
아이들은 빠져 있던 테레비 밖으로 나와야 했다.
마당에 서서 도둑시청(?)을 하던 세입자 이이들은 일순간 얼음처럼 변해 옴짝달싹도 못하고 문 앞에 서서 두껍지 않은 문 하나가 만들어 내는 두 개의 세상이 보여주는 차이를 온몸으로 실감해야 했다.
주인집 아이가 방문을 쾅 닫을 때는 늘 테레비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눕히기 일보직전
악덕 사또 앞에 나타난 암행어사가 마패를 꺼내 보이기 일보직전 같은...........
나와 두 동생들은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창문으로 어른거리는 테레비를 보았다.
아니다
문에 달린 유리를 보고 있었다.
주인집 방 유리창은 입체형 유리였는데 닫힌 방문 안으로 보이는 테레비는 어른거리며 형상이 다 망가진 모습을 바깥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바로 밑 동생이 문 앞에 선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극적인 다음 장면을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닫힌 방문을 어쩔 수 없어해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은 울었고 주인집 아이는 또 아주머니께 누구누구가 방 문 앞에서 울었다고 일러바치고 생모는 그날 저녁 주인집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주인집 식구들이 테레비를 가지고 일방적인 횡포(?)만을 일삼은 것은 또 아니었다.
어떤 날은 방문을 활짝 열고 테레비를 보라고 허락을 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날은 아예 방으로 들어와서 보라고 까지 한 적도 있었다.
방으로 초대된 세입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방 안에서 거의 무릎을 꿇은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렇게 3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두 칸 화장실 바로 옆에 살고 있던 병훈이네 집에서 테레비를 한 대샀다.
병훈이네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마음씨 좋은 흥부부부 같은 분 들이었다.
그들은 늘 방문을 열어놓고 같은 세입자 아이들이 테레비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들이 열어놓은 방문 안으로 바로 옆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와 파리가 날아들었다.
병훈이 집 안방과 부엌, 마당에 사람들이 꽉 차는 날이 있었다.
박치기왕 김일선수가 레슬링을 하는 날
주말 저녁에 방영하는 수사반장, 웃으면 복이 와요를 하는 날
일일드라마 여로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서로 바짝 붙어 앉아 어떤 장면에서는 어깨를 부딪히고 어떤 장면에서는 서로의 등을 때리며 포복절도하며 또 어떤 때에는 서로의 가슴에 기대어 울기도 하였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서 살다가 방학 때 잠시 생모집으로 놀러 온 나는 그렇게라도 테레비를 볼 수 있음을 천운으로 알고 지냈다가 다시 돌아간 시골에서 아아들에게 김일 선수를 이야기하였다.
"느그 김일선수 아나?
잘 모르제?
내가 대구에서 테레비로 봤는데 아있나.
머리로 헤띵(박치기)을 해뿌니까 양푼이 만한 쇳덩어리가 박살이 나뿌더라."
내 말의 허풍만큼 시골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제 밤
TV를 켜 놓고 잠이 들었다가 밤늦게 혼자 켜져 있는 텔레비전을 한참 동안 끄지 못하고 내가 어렸을 적 잠시 살았던 달동네 테레비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배우들 얼굴에 있는 모공까지 훤히 보이는 TV를 보면서 그래도 그때 테레비가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