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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ul 09. 2024

떠날 준비

인간이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면서 쓰고, 해야 할 양(量)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평생 동안 흘려야 할 눈물

평생 동안 먹어야 할 음식

평생 동안 해야 할 말

평생 동안 자야 할 잠ㆍ ㆍㆍ


어리고 젊었을 때 내 눈에 눈물이라는 것이 도대체 있을까 싶을 만큼 울 줄 몰랐던 내가 60의 나이인 지금은 뒹구는 낙엽에도 눈물이 난다.

어리고 젊었을 때 깨적이며 억지로 먹었던 맛없었던 음식들이 지금은 꿀 맛이다.

젊었을 때 말(言)로 먹고살았던 내가 지금은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을 닮아있다(은행원들은 아침 셔터가 올라가서 저녁에 내려올 때까지 쉼 없이 고객들과 말을 해야 한다.)

어리고 젊었을 때 나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새벽잠이 이제는 시루에 걸려 하나씩 시나브로 빼먹은 곶감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날도 이른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떨어지고 잠이 깨였다.

한번 깨인 잠은 도무지 다시 들지를 못하고 맑은 정신에 맑은 정신을 더했다.


이제는 애써 다시 잠드려 하지 않는다.

다 헛수고라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따뜻이 물을 데워 마셨다.

물이 끓는 동안 바라본 거실 밖 하늘이 훤하다.

산을 오를 때는 보지 못하였던 골짜기 안 시냇물과 제비꽃이 산을 내려올 때 비로소 보았다는 어느 성직자의 말처럼 젊었을 때 보지 못하였던 새벽 동트는 모습을 이 나이에야 보고 있다.


그 경이로움에 저절로 두 손이 합장되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지(夏至)가 지난 새벽의 모습을 눈에 담고 가슴에 간직한 채 다시 방으로 들어와 휴대폰시계를 보았다.

05:12라 쓰여있다.


휴대폰 화면에 노란색 불빛이 나도 좀 봐 달라며 귀엽게 반짝인다.

지금 카톡이 와 있다고 말하는 듯하였다.

 

새벽 2시 30분에 누가 카톡을 보내왔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깜빡이며 내가 봐주기를 기다렸다며 통통거리며 앙탈을 피운다.


'누가 이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카톡을ㆍㆍ'

하는 마음에 카톡을 열어 보았다.

골프친구들 단체 대화방에 친구하나가 동영상을 보내 놓았다.

한번 웃고 말 시답잖은 골프 관련 동영상이었다.


다 자는 시간에 보낼 만큼의 중요한 것도 아닌데 꼭 이른 새벽에 보냈을까 싶은 마음보다 평소 이 친구의 생각과 영혼이 워낙 엉뚱하고 순박하여 그랬을 거라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것을 모임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이 친구는 틈틈이 내 글을 읽어주고 소감을 댓글로 남겼다.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극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 역시 자네야'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날 늘 오전에 해 오던 일을 마치고 서실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는 내 휴대폰에서 카톡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수 휴대폰에 울리는 카톡 중 대부분이 광고성 문자와 누군가가 보내는 '좋은 글' 같은 글이라 그러려니 생각하고 열어보지 조차 않고 글에 집중하였다.


얼마 후~~

연이어서 오는 카톡에 휴대폰이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계속 울어 대었다.

단톡에서 나는 소리이리라.


열어 보았다.


새벽 2시 30분에 친구가 골프 동영상을 보낸 그 골프친구들 단톡에서 나는 소리였다.


총무가 글을 올렸다.

"xxx회 친구들~

 잘들 지내고 있지요?

비통하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심히 유감입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보통의 부고문자 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 뭔가 불안함이 머리를 엄습하였다.


총무가 글을 이었다.

"우리 xxx회 친구 000가 금일 별세하였습니다.

자세한 사인(死因)은 알아지는 대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였다.


머리가 하얘졌다.

온몸이 굳어진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조차 할 수 없었다.


000 친구는 하필 2시 30분에 단톡방에 동영상을 올린 그 친구였다.

이 무슨 조화(調和)인가?

총무가 장난으로 글을 올린 것일까?

아니야

이런 일을 장난으로 하면 안 되지.


잠시 후 총무가 다시 단톡에 글을 올렸다.

"000 친구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밝혀졌습니다."

너무나 건강했던 친구였는데 심근경색이라니ㆍㆍ

급성이라는 단어하나로 멀쩡했던 사람을 단 한순간에 데려가다니ㆍㆍ


나중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젊은 시절 경찰공무원을 하다가 경찰직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음을 느끼고 교사로 전직하여 평생을 근무하다 3년 전쯤에 명예퇴직을 하고 마을 이장직을 맡아 마을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이리저리  봉사하며 나름대로 바쁘게 생활하였다고 했다.

그 이장직에서 자긍심도 많이 느꼈다고 하였다.


그러다 이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재선(再選)에 도전하였다가 실패한 후 지금껏 줄곧 집에서 쉬며 지냈는데 아직 쉬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친구는 서너 달 전에 대구에 있는 건설현장에서 건설장비를 지키는 야간경비일을 했다고 하였다.

(친구의 집은 대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영천에 있었다)


그날도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자 가족들이 회사에 연락을 하였고 그를 찾아 나선 회서 동료들 눈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총무가 말했다.


총무가 단톡에 친구의 유고소식을 올리고 이내 스무 명이 넘는 골프친구들이 일제히 댓글을 올렸다.

댓글의 내용은 하나같이 똑 같이 이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아직 친구가 떠났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데

아직 친구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마치 오늘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 양 댓글에 댓글을 보탰다.


두어 시간이 더 지나자 총무가 또 다른 글을 올렸다.

친구의 장례식에 관한 안내 문자였다.

장례식장은 어디이고 유족은 누구누구이고 장지는 어디이며 발인일자는 언제라는.......


지난달까지 나와 같은 조(組)에서 골프를 하였던 친구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검은색 리본이 쳐졌고 사람들은 친구의 사진을 영정사진이라 명명하였다.


기가 찼다.

오늘 새벽 2시 반까지 멀쩡히 살아 동영상을 올렸던,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였던 친구가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였는데 세상은 어찌 한치 흔들림 없이 시곗바늘이 돌아가 듯, 잘 만들어진 기계톱니가  돌아가듯 착착 돌아갈 수 있을까 기가 찼다.


저녁 산책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친구의 급작스런 떠남에도 아무 흔들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무정하고 무심한 것이 아니고 우리 나이가 이제 하나씩 떠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이제 우리 나이에는 누가, 언제 떠나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구나 싶었다.


어리고 젊었을 때 없었던 눈물이 지금 나는 것처럼

어리고 젊었을 때 없었던 입맛이 지금 다시 도는 것처럼

어리고 젊었을 때 많았던 새벽잠이 지금 없어진 처럼 

어리고 젊었을 때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도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새 떠남의 열차가 곁에 바짝 다가와 언제든 우리를 싣고 떠날 준비를 마치고 플랫폼에서 기적을 울리며 서 있다.


지금부터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지금 바로 떠남의 기차가 나를 싣고 기적을 울리며 바퀴가 하나씩 서서히 움직여도 하나의 미련도, 하나의 후회도 없이 창 밖으로 보이는 내가 살아왔던 세상을 향해 혼잣말로 말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

'한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노라'라고....................


내가 떠나고 먼 훗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며 하는 말이 하나같이 같은 말이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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