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자, 불씨가 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그늘

by 공감의 미학

새벽 어스름이 아직 골목 안에 짙게 깔려 있을 때, 동수는 낡은 사립문을 삐걱이며 조용히 집을 나섰다. 문짝이 내는 소리는 마치 긴 밤의 마지막 신음을 토해내듯 거칠었다. 그는 닳아빠져 밑창이 훤히 드러난 짚신을 신은 발끝으로 흙먼지를 차며 집을 빠져나와 만호동에 있는 ‘유달 차력인(車力人)’ 가게로 향했다.

골목길 끝에는 벌써 수십 명의 인력거꾼들이 몰려 있었다. 줄지어 세워진 인력거들은 뿌연 새벽 안개 속에서 커다란 벌레의 등딱지처럼 어슴푸레 빛났고, 하나둘씩 주인에게 몸을 내어주는 짐승처럼 끌려 나갔다. 동수 역시 주머니 속 푼돈을 움켜쥔 채, 하루 선금 오십 전을 내고 자기 덩치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인력거를 받아 끌었다. 무쇠 바퀴가 땅을 긁는 소리는, 이미 그에게 익숙한 고단한 하루의 북소리였다.

아침밥 한술 뜨지 못한 탓에 속은 텅 비어 울렁거렸고, 그는 찬물 한 바가지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냉수는 순간적으로 배를 채우는 듯 했지만, 곧 다시 허기와 피로가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날은 밝아오고 있었지만, 목포 시가지는 이미 일인(日人)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잘 닦인 신작로 위로 상점들이 빼곡히 늘어선 목포역 앞 ‘긴자 사거리’는 번쩍이는 유리창마다 빛을 반사하며 새날의 활기를 드러냈다. 조선인들에게는 그림자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에, 저들은 빛의 중심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동수는 유달산 노적봉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목포에서도 가장 전망 좋은 곳, 적산(敵産)으로 불리는 일본인 부자들의 거주지였다. 붉은 기와와 단단한 석축으로 둘러싸인 저택들은 마치 성채처럼 위세를 뽐냈다. 허름한 인력거꾼의 발자국은 그곳의 번쩍이는 돌계단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이 한 건물에 닿았다. 회색 벽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웅장하다 못해 차갑게 빛나는 2층의 석조 건물. 불과 이 년 전,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고통의 원흉이 거기에 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동척’이었다.

그 건물은 동수의 기억 속에서 늘 괴물로 살아 있었다. 기둥처럼 곧게 뻗은 창문은 겉으로는 근대 문명의 상징을 흉내내고 있지만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알처럼 서늘했고, 두꺼운 돌벽은 수탈한 곡식과 빼앗은 땅을 꿀꺽 삼킨 괴수의 배처럼 탐욕으로 불룩했다. 동수의 가슴속에서는, 그 벽돌 틈새마다 울부짖던 아버지의 목소리와 땅을 빼앗기던 날의 참담함이 되살아났다. 건물 정면에 보이는 태양문양과 좌측 상단부로 이어지는 벚꽃문양의 장식은 화려하다 못해 뻔뻔해 보였다. 그는 무거운 인력거 손잡이를 꼭 쥐며, 땀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억눌렀다.

“쳇, 저 놈의 동척, 볼 때마다 재수가 없어!”

동수는 눈알을 부라리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고는 이 년 전, 그에게 닥쳤던 시련을 되새김질했다.

동수네 집안은 할아버지 대에 척박한 들판을 일구어 얻은 몇 마지기 땅으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왔다. 많지 않은 땅이었지만, 그 땅은 곧 삶의 뿌리였고, 가난한 밥상에 푸성귀 하나라도 올릴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씨앗이었다. 유달산 뒤편, 성당 이북 마을에 자리한 그 논밭은 봄이면 푸른 이랑 사이로 물결처럼 번져가는 모내기 소리가 정겹게 울렸고, 소의 방울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며 한가로운 풍경을 이루었다. 동수는 부모님과 함께 흙을 만지고 햇볕을 마주하는 이 삶이 그저 좋았다. 흙냄새와 땀방울 속에서 삶은 비록 거칠었지만 정직했고, 그만큼 따뜻했다.

그러나 불행은 마치 지리한 여름 장마 뒤 쏟아지는 폭풍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일제는 모든 토지를 정부에 신고하라 명했다. 대대로 개간해 일궈온 땅이라 증서 따위 있을 리 없었고, 설령 신고를 하려 해도 한자를 읽고 쓸 수 없는 농민들에게 ‘호적에 기재된 이름과 획까지 똑같이 쓰라’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 문장은 검은 먹물로 씌어진 단순한 지침처럼 보였지만, 농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칼날이었다.

“여보, 우리도 어여 신고해야 하지 않겄어요?”

아내 정순은 눈빛 가득 걱정을 담아 남편을 바라보았다.

삼식은 손에 쟁기를 쥔 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설마 신고 안 한다고 내 땅이 남의 땅이 되겄어! 그런 걱정할 시간에 피라도 하나 더 뽑으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심장 한구석에서는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땅은 피와 땀으로 적셔진 삶의 전부였다. 밭고랑마다 할아버지의 숨결이 서려 있고, 논두렁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것이 종이 한 장, 글자 몇 획에 의해 남의 손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삼식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날 저녁, 붉게 가라앉는 노을빛이 논두렁을 감싸며 서글픈 기운을 드리웠다. 삼식은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빛 구름 사이로 스미는 노을은 마치 불길한 징조처럼, 그가 지켜온 삶의 뿌리를 서서히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그렇게 신고 기한은 허망하게 지나가고, 결국 삼식은 대대로 이어온 땅에서 쫓겨나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상의 땀방울로 일군 논밭이 하루아침에 남의 이름으로 바뀌는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뿌리가 뽑히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겉으로는 소작료가 5할이라 했지만, 조세(租稅), 공과(公課), 수세(水稅) 따위의 세금이 줄줄이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는 6할, 7할을 내야 했고, 풍년이 든다 한들 삼식의 손에 남는 것은 겨우 쌀 한 줌, 보리 두어 되뿐이었다. 풍년조차 허기진 밥상 위에선 그림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마름은 흡혈귀 같았다. 소작지 관리자라는 명분으로 농민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중간착취를 당연한 듯 해댔다. 그들의 횡포는 지주보다 더 했다. 소작료를 제멋대로 올리거나, 종이에 몇 획 보태어 고의로 세를 인상해 버렸다. 때로는 금품을 요구했고, 때로는 삽과 쟁기를 들고 마름의 논까지 공짜로 일하게 했다. 땀은 땀대로 흘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빈손에 먼지만 남은 모멸감 뿐 이었다.

삼식에게 이제 남은 선택은 굽신거림이었다. 허리를 굽혀야 하루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고, 머리를 숙여야 내일의 논두렁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참다 참다 못한 그는 굽신거림 속에서 끝내 한 번, 목소리를 높이고야 말았다.

“아니,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오!

죽어라 일해도 목구녕에 풀칠하기도 힘든디, 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요!

칼만 안 들었지 아주 날강도가 따로 없네, 없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참 동생 뻘 되는 마름한테 고개를 들이밀며 두 눈을 치켜뜨고 대든 것이었다. 그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마름은 벌게진 얼굴로 삼식을 노려보며 씩씩대며 말했다.

“이 양반이, 말이면 단 줄 안가?

어디 두고 보소! 앞으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소!”

분노에 찬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름은 삼식의 소작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 버렸다. 한순간에 삼식의 삶터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논밭은 그대로였으나, 그 위를 밟는 발자국의 주인은 달라져 있었다. 자신이 평생 일하며 흘린 땀이 마치 모래 위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는 허탈감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삼식은 흙 묻은 손바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 손바닥에는 굳은살과 갈라진 핏자국만이 남아 있었고, 거기엔 더 이상 ‘내 땅’이라는 따뜻한 체온이 스미지 않았다.

땅을 잃고, 소작권마저 한순간에 빼앗긴 뒤 삼식은 결국 화병에 쓰러지고 말았다. 평생을 흙과 씨앗만 붙들고 살아온 그에게, 더는 논밭을 갈 수도, 낫을 휘두를 수도 없는 현실은 재앙이자 사형선고 같았다. 한 줌의 흙이라도 쥐고 있어야 숨통이 트였던 그가, 이제는 눕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버지가 몸져 눕자 집안은 하루아침에 기둥이 꺾여버린 집처럼 휘청였다. 그 빈자리를 메워야 했던 사람은 이제 갓 소년티를 벗은 열다섯 살 동수였다. 아직 손에 물집도 덜 잡힌 나이였으나, 그는 더 이상 아이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어린 누이를 데리고 새벽마다 솜공장으로 향했다. 허공에 흩날리는 솜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하는 탓에 늘 기침이 잦았지만, 생활비 한 푼이라도 벌어야 했다. 동수는 아버지의 약값이라도 마련하고자 인력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무거운 바퀴가 땅을 긁는 소리가, 그의 젊은 어깨에 채찍질을 가하는 듯했다.

살림살이는 갈수록 기울어갔다. 일터 근처로 이사하려 해도 마땅한 집이 없어 결국 유달산 동쪽 기슭, 쌍교리 근처의 무덤 자리에 세워진 쌍교촌 판잣집에 자리를 잡았다. 돌무더기와 잡초 사이에 움막처럼 엎드린 집은, 돼지막보다 조금 나을까 싶은 초라한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동수네에게 그곳은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울타리였다. 무너진 흙벽과 새는 지붕 아래서도, 네 식구가 함께 몸을 기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동수가 인력거를 끌고 나서던 어느 6월 아침, 햇살은 유난히 따스했으나 거리의 공기는 이상스레 무거웠다. 목포경찰서 앞에 이르자, 그의 눈에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암태도에서 발생한 소작쟁의로 체포된 농민들의 가족이었다. 흰 옷을 입고 흰 천을 머리에 두른 늙은이, 사내, 아녀자가 뒤엉켜 경찰서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땅을 치며 울부짖을 때마다, 유달산에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은 일제 경찰의 편파적 처사와 지주의 부당성을 규탄하면서 암태도 소작회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 내 아들이 뭔 죄가 있다고 이라고 잡아 갔오!”

“ 당장 내 남편을 풀어주시오. 남편 없이 아그들만 데리고 어찌 살란 말이오!”

“ 차라리 나도 끌고 가 죽이시오. 소작인의 목구멍은, 살아 있는 게 웬수요!”

사람들은 일제히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땅을 치고 통곡했다. 그러나 그 절규는 곧 폭력으로 짓밟혔다.

순식간에 몰려온 일본 경관 수십 명이 달려들어 남녀 가리지 않고 군화발로 사람들을 차며 쓰러뜨렸다. 곤봉이 휘둘러질 때마다 사람들의 몸이 부러진 나무토막처럼 쓰러졌고, 아녀자들은 머리채가 잡힌 채로 땅바닥을 질질 끌려 다녔다. 사내들은 개머리판에 머리를 얻어맞아 피투성이로 쓰러졌다. 경찰서 앞마당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암태 사람들의 하얀 옷은 붉은 빛으로 얼룩지고 살이 터지고 팔다리가 꺾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신음하며 몸부림쳤다. 그 참상을 지켜보던 동수는 머리끝까지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가슴속에서는 불덩이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금세라도 폭발할 듯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뒤이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포 노동단체와 청년단체 사람들이 합세하자, 동수는 그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인력거에 실어 병원으로 옮겼다. 그의 두 손은 피에 젖었고, 인력거 바퀴 자국은 경찰서 앞 붉은 흙바닥을 따라 길게 남았다.

동수는 암태 소작인들의 피맺힌 절규 속에서 자신의 심장 깊은 곳이 불길처럼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더는 침묵하며 땅을 잃고, 사람됨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억울함을 삼키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살아 있음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는 일이었다. 그는 비겁자가 되지 않기로, 역사의 증인이 아니라 그 길을 개척하는 이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마침내 떠날 시간이 되자 동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철로 위를 달리는 바퀴 소리가 그의 결심을 북처럼 두드렸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 사이로 유달산의 능선이 멀리 푸른 물결처럼 물러가고, 기슭 어딘가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판잣집은 점처럼 작아졌다. 아들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모습에 눈물 짓던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손끝에서, 잃어버린 조국과 가족의 눈물이 한 덩어리로 뛰고 있었다. 기차는 북쪽을 향해 거침없이 달렸고, 동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환히 타오르는 불꽃이 있었다. 그것은 곧 그가 살아가야 할 길, 싸워야 할 내일의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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