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청년회관을 기억하며..
서늘한 밤공기를 가르며,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 찬 가을밤.
환한 달빛 아래, 옥분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ㄱ’자로 굽은 허리를 오래된 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그녀는 이 낯익은 석조건물 주위를 그렇게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달빛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낸 회관의 낡은 벽돌 위로 하얀 비단처럼 흘러내려, 굴곡진 표면에 새겨진 깊은 주름마다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기다랗게 늘어선 창문들과 아치형 정문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예전의 푸른빛을 잃고 검게 그을린 채 고독한 밤하늘을 거울처럼 품고 있었다. 낡은 창틀 사이에 끼인 투명한 유리창은 속살이 비칠 듯 수줍게 고개를 떨구며, 스치는 바람에 한 겹인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짙은 어두움 속에서도 은빛 달빛은 은은히 빛나며 이 건물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목포청년회관은 달빛과 어우려져 역사의 무게와 시간이 쌓아 올린 세월의 증인처럼 차분한 자태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 또 여기 계셨어요?
중학생 손녀 지혜가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며 다가왔다.
도대체 날이면 날마다 목포청년회관 건물은 왜 오시는 거에요?”
그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걱정이 반쯤 섞여 있었다.
“지혜야, 이 할미가 재미난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옥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달빛이 비추는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얼굴엔 오래 묵힌 기억이 불쑥 피어오르는 듯한 표정이 스쳤다. 그리고 한참 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날도... 이렇게 달빛이 환하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던 밤이었단다.
내가 딱 너만한 나이였었지...”
7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옥분은 그 날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27년 가을.
석유램프 불빛이 노스름하게 흔들리며 회관 안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벽에 오래 붙어 있던 격문들이 가장자리부터 바래 있었고, 나무 기둥에는 손때 묻은 자국이 무늬처럼 번져 있었다. 공기 중에 묵향이 은근히 배어 있었는데, 갓 갈아 쓴 붓 끝에서 번진 검은 먹물 냄새가 가만히 코끝을 스쳤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와, 창문 틈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 바람은 램프의 불꽃을 살짝 흔들어 놓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옥분은 오래된 나무 책상에 낮아, 칠판에 쓰인 글자를 또박또박 따라 읽었다.
“가, 갸, 거, 겨,...”
낯선 소리를 내는 입술이 조금 어색했지만, 목소리에는 설렘이 묻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보통학교에 다닐 수 없던 그녀에게, 목포청년회관에서 야학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은 꿈같은 일이었다. 이곳은 목포 청년들의 집회 장소로, 학술강연과 사회문제 토론회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그녀는 열다섯 살의 나이였지만,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은 잠깐이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달랐지만 오직 배우려는 마음 하나로 사람들은 한데 모여 앉아 있었다. 농민, 노동자, 아이, 노인, 그리고 그녀. 모두가 진지한 눈빛으로 붓과 연필을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두운 밤하늘 속에서 총총히 빛나는 작은 별빛 같았다.
오늘의 강사, 김철민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토의 도시샤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유능한 인재였다. 그는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가르쳤다. 조선의 청년들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글을 배우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까요?”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철민은 잠시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글은 눈을 뜨게 해줍니다. 눈을 뜨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한줄기 빗방울이 되어 옥순의 마음에 조용히 젖어 들어왔다.
그는 구김살 하나 없는 양복 차림에 반듯하게 빗어넘긴 머리, 오똑한 콧날과 깊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위엄있고 기상이 넘치는 선생님의 국어 수업은 옥분에게는 항상 기다려지던 시간이었다. 철민은 언제나 옆구리에 작은 시집 하나를 끼고 다녔다. 옥분은 한글을 빨리 배워서 선생님의 시집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님..의...침...묵”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집 제목을 읽었을 때, 철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옥분아, 내일은 이 시를 한번 배워보자”
다음날 밤, 그는 학생들에게 낡은 시집을 나눠주었다.
“오늘은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함께 읽겠습니다. 큰 소리는 내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 보세요.”
책장을 넘기자 낡은 종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옥분은 머리를 살짝 들고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님은 갔습니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곧 다른 학생들도 조용히 따라 읽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그들의 눈빛은 점점 진지해지고, 숨을 죽인 채 시에 집중했다. 교실 한 켠에서는 누군가 창밖을 살짝 쳐다봤다. 혹시 경관이 들을까 봐, 두려움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시 속 ‘님’은 우리의 조국이자 자유라는 것을. 침묵은 억압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기다림은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그렇게 낭독은 계속되었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곁을 떠난 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바람은 차갑게 불었지만, 회관 안의 작은 불빛과 목소리들은 꺼지지 않았다.
옥분은 시를 통해 힘을 얻고, 마음속 깊이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그녀는 왜 선생님께서 이 시집을 놓지 못하고 다니셨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몇 해 뒤, 달빛이 환하게 비치던 어느 가을밤.
정적을 찢는 군화 발소리가 거칠게 골목을 울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금속 단추, 검은 정복 차림의 일본 경관들이 회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제보가 들어와서 오늘 밤 확인하러 왔다!”
목소리는 날이 선 칼날처럼 회관 안의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철민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글을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경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발소리와 서랍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뒤엉켜, 회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뒤, 한 경관이 교탁 아래를 더듬어 꺼낸 책 한 권을 높이 들어 올렸다. 검은 표지 위에 ‘조선역사’라는 하얀 글자가 불빛 아래 번쩍였다.
“이건 불온 서적이다!”
그 말에 화가 난 어린 학생이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물었다.
“왜 우리 말을 배우면 안 됩니까? 왜 우리 역사를 잊어야 합니까?”
순간, 경관의 눈동자가 매서운 칼끝처럼 번뜩였다. 그의 손아귀에서 책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하얀 깃털처럼 힘없이 공중에 흩날렸다. 옥분은 책장이 한 장씩 찢겨질 때 마다 마치 살갗이 벗겨지는 것처럼 고통과 따가움을 느꼈다.
“저 선생놈을 잡아라!”
명령이 떨어지자 경관들이 일제히 철민을 붙잡았다. 거친 손길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책상과 의자가 발길질에 힘없이 넘어졌다. 칠판은 쩍 하고 금이 가며 부서졌고, 책과 노트들은 바닥에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문밖으로 몰려 나갔다. 옥분은 끌려가는 철민을 도와줄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선생님, 안돼요! 우리 선생님, 데려가지 마세요!”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지만, 경관들은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철민은 끌려가면서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여러분, 저는 괜찮으니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오해가 있어서 그런거니 안심하시구요.”
그 말이 그의 마지막이 될 줄, 옥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날 밤, 회관은 폐쇄되었다.
달빛만이 주인 잃은 건물 위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옥분은 매일같이 소식을 기다렸다.
하루하루 애타게 기다렸지만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고, 끝내 선생님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청년회관을 떠나지 못하고 날마다 찾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선생님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결에 스치는 흙과 나무 냄새조차 그와 나누었던 수업의 한 페이지 같았다.
그렇게 회관을 찾던 어느 고요한 밤. 그녀의 시야를 가르며 하늘 위에서 한 줄기 별똥별이 길고도 눈부신 꼬리를 그었다. 그 빛은 한순간 온 세상을 밝히더니, 자기 몸을 다 태운 채 사라졌다.
옥분은 그 찰나의 빛 속에서 철민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하루를, 아니 생을 태워서라도 세상을 밝히려 했던 선생님과 꼭 닮아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나도… 저 불빛처럼, 어두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히는 사람이 되리라.”
그 순간, 목포청년회관은 단순한 벽돌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어난 사람들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등불이었다. 그녀는 알았다. 폐허가 된 청년회관이지만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야학 수업을 같이 듣던 동무들과 뜻을 모았다.
밤마다 몰래 모여, 일본 경관들의 감시를 피해 부두 창고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책상 대신 나무상자, 등잔불 하나. 그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글자와 역사를 가르쳤다. 철민이 자신에게 가르쳐 준 그대로.
그녀의 옆구리에는 늘 한 권의 시집이 끼워져 있었다. 표지는 닳아 글씨가 흐릿했고, 페이지는 손때와 눈물로 눅눅해져 있었다. 그건 바로 ‘님의 침묵’이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녀는 시 구절을 천천히, 조심스레 읊었다. 그 목소리는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심지처럼 작지만 단단하고 굳건했다. 까만 밤은 그렇게 하얗게 새어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옥분은 남교동 뒷골목 한 귀퉁이에 국밥집을 차렸다. 하얗게 피어오느른 연기 속에 밥을 말고, 손님들에게 국물을 퍼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세월은 수백 번 해와 달을 바꾸었고, 청년회관은 이름과 주인을 갈아입으며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켰다.
그렇게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목포청년회관’이라는 본연의 이름을 찾게 되었을 때, 옥분은 선생님께서 살아돌아오신 것처럼. 떠난 님이 다시 돌아 온 것처럼 한없이 떨리고 기뻤다.
그녀에게 목포청년회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 존재로 그녀의 젊음이었고, 투쟁이었고, 사랑이었으며, 삶이었고....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