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더 이상 흙이 아니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논바닥은 금이 쩍쩍 가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마른 먼지가 허옇게 솟았다. 갈라지고 뒤틀린 대지는 숨을 죽이고 있었고, 개미 한 마리조차 기척이 없었다. 논두렁은 메말라 돌처럼 굳어 버렸고, 한때 무성했던 감나무 잎은 늘어진 천 조각처럼 나부끼며 바스라졌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햇살은 눈을 찌르듯 뻗쳐왔다. 집에서 키우는 개돼지 할 것 없이 그늘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메마른 세상, 숨조차 버거운 시간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넓은 들판의 논마다 초록빛 모가 줄지어 심어져, 찰랑거리는 물결 위로 싱그거운 푸른 내음이 가득 찼었다. 살랑살랑 실바람이 불면 어린 모들이 덩달아 고개를 흔들며 춤추고, 청명한 하늘 아래 햇살은 따사로운 온기를 내려주며 반짝거렸었다.
아이들은 논두렁을 따라 물장난을 치며 깔깔 웃고, 어른들은 구부러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모를 심으면서도 말끝마다 웃음이 묻어났었다. 새참을 준비하는 아낙네들도 흥에 겨운 타령을 부르며 덩실대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웃음도, 생기도 모두 말라버린 기억 속 그림자가 되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새벽부터 나와, 저 멀리 산등성이 위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다가, 한숨만 쉬어댔다. 하지만 하늘은 잠깐 스쳐가는 가랑비 한 줄기만 허락할 뿐 비를 품을 생각이 없었다. 마치 사람들의 고통을 조롱이라도 하듯,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했다.
날마다 타는 듯한 햇살 아래 물이 자꾸 말라 가자, 못자리는 불길이 스친 듯 붉게 타들어 갔다. 모들은 뿌리째 타는 갈증에 숨을 헐떡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농부들의 가슴도 참혹하게 타들어 갔다. 그들은 밤새도록 논두렁 옆에 물웅덩이를 파고 두레로 퍼나르며 마른 목이나마 축여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바닥은 두레줄에 까여 피가 맺히고, 허리는 휘어져 부러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일꾼이라도 써서 품삯을 줘가며 물을 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마저도 여유가 없는 사람은 하루도 쉬지 않고 퍼야 하니 산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인근 마을에서는 물쌈이 나고 자기네 논으로 흘러들던 물길을 막았다는 이유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물 한줄기가 목숨값보다 더 귀한 시기였다.
“어이, 만석이! 자네 모도 이러다간 다 말라 죽겄구만!”
두레로 물을 퍼서 갈라진 논바닥에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춘식이 영감이 혀를 끌끌 찬다.
“그러게요, 어르신! 이 놈의 하늘이 정신을 놔븟는지...
한 해 농사 망치면 우리 식구들 굶어야 되는디...
이렇게라도 해봐야지 어쩌겄어요.”
만석은 쉬지 않고 두레질을 한다. 손에 쥔 두레가 점점 무거워지고, 어깨가 쑤신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정말 내일이라도 비가 와야지 큰일이네. 저 넓은 논을 놔두고 그렇게 물을 품어서 겨우 한 마지기나 심어 놓으면 뭣에 쓰겄는가? 지주놈한테 곡수나 제때 내면 다행이지.”
춘식이 영감은 못마땅한 듯 하늘을 쳐다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만석이는 있는 힘껏 두레줄을 당기며 물을 품어보지만, 천 두레가 넘어가도 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물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모는 생기를 잃고 노랗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논바닥은 뜨끈뜨끈한 불길 속에 갇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 아래, 마을 어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만석도 부인과 함께였다. 동구 밖까지 나가면 보이는 산등성이 너머 하늘엔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었다. 이장 박노인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겄구만. 천지신께 빌어야지. 하늘 말고는 이제 기댈 데가 없겄어.”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기로 했다. 딴에야 뭘 믿는다고 저러냐 싶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만석도 알고 있었다. 땅도, 하늘도, 사람도 모두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중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되어 팔을 걷어붙였다. 들녘 중턱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 터를 닦고, 풀을 베고 흙을 고르며 제단을 쌓았다. 소를 잡을 형편이 못 되어, 닭 한 마리를 정성껏 씻겨 바구니에 담고, 햇곡식이라 할 것도 없는 보리쌀을 깨끗이 씻어 제물로 바쳤다. 볕에 달궈진 항아리에서는 물이 아니라 먼지가 날렸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을 그러모아 그 위에 놓았다.
그날 해질녘, 마을 남자들 일부는 짚단과 장작을 이고 산으로 올라갔고, 남은 사람은 모두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채 제단 앞으로 줄지어 섰다.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눈가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는데도, 모두 무거운 침묵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서 일제히 불이 당기자, 크고 검은 산들이 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불길은 점점 더 커졌다. 말라버린 바람으로 불길은 퍼지지 않고 하늘로 곧추 올라갔다.
“저 연기를 보면 하느님도 목이 탈 게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제주(祭主)는 산봉우리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곧바로 제단에 향을 올렸다. 연기는 기도를 담아 하늘로 올랐다.
"상천지신이시여… 자비를 내려 주소서…
이 아이들, 이 어미들, 이 백성들 살길을 열어주소서…"
제주의 목소리는 바람도 물기도 없는 공중을 뚫으며 떨렸다.
여인들은 제단 뒤쪽에 따로 모여있었다. 그들은 모두 흰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맨발로 땅을 밟으며 절을 했다. 울음을 삼키듯 애원하는 목소리로, 아이의 손을 잡고 하늘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느님, 우리 막둥이가 이제 젖도 못 빤디요. 저 물만 좀 내려주시요…”
젖이 돌지 않아 배고파 울던 순동이를 품에 안고, 무릎이 갈라지도록 절을 올리는 만석의 아내 허리는 구부러지고, 그 기도는 마치 마른 나뭇가지가 꺾이는 소리처럼 스산했다.
아이들은 제단 근처에 몰려 기우제를 구경하듯 서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도 어딘가 깊은 구멍처럼 텅 비어 있었다. 배고픔과 갈증이 이미 일상처럼 녹아든 얼굴이었다.
기우제의 마지막에는, 만석을 필두로 하여 동네 사내 몇이 북을 두드리고 징을 울리며 소리를 높였다. 그는 흰 무명천을 허리에 묶고 맨몸으로 들판을 돌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발바닥이 돌에 찢기고 피가 베어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비여! 내려라! 하늘이시여, 우리를 잊지 마소서!”
제주의 음성이 메아리치자,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만석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어떤 이는 땅을 치며 밤새 통곡했다. 어떤 이는 제물로 바친 닭의 피를 손바닥에 묻혀 이마에 찍었다. 하늘이여, 우리 피를 보시요, 이토록 간절허니 눈을 돌리지 마소서— 그런 심정이 전해져 만석의 가슴을 콱 눌렀다.
기우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만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너무도 맑았다.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은 새벽이슬조차 머금지 못한 채 메마르게 갈라져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국만 남은 그 자리는 먼지바람만이 쓸고 지나갔다.
누군가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누군가는 흐느낌을 삼킨 채 돌아섰다. 그날 이후 마을은 더 조용해졌다. 아이들의 울음마저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기도가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하늘은 매정했다. 구름은 마른 연기처럼 흩어지기만 할 뿐, 단 한 방울의 자비도 이 메마른 땅에 내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저수지도 새로 파보고 고지대에 우물을 내보려 굴착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메마른 돌 층에 막혔다.
예로부터 이 마을은 산 너머 북으로 너른 들이 펼쳐져 있어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다. 밭 가는 소의 풍경 소리가 한가히 들려왔고 논두렁길로 지게를 진 농부들이 느긋하게 걸어오던 모습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 지붕 너머로 까치들이 날아다니고, 담장 아래 돋아난 애호박 줄기는 느릿하게 덩굴을 뻗고 있었다. 남으로는 바다를 끼고 있다 보니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크고 작은 섬이 둘러 있는 푸른 바다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청명하고도 눈이 부셨다. 해변가에서는 부인들이 김칫거리를 씻으며, 수평선 너머로 고깃배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집집마다 널어놓은 생선비린내가 골목마다 풍겨져 나왔다. 물결은 조용히 모래를 핥고, 그물을 건져 올리는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하지만, 개항 이후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걷어 올린 곡물과 바다의 자원이 이곳 목포 항구로 쏟아졌다. 물산을 집결하고 유통하는 길목으로 성장하면서 개항장 주변으로 일본 상인들과 관리들이 거주지를 넓혀갔다. 그리고 지금은 어떠한가. 이곳은 그야말로 곡물과 자원 수탈의 근거지가 되어버렸다.
만석이 살고 있는 북촌 마을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농촌 풍경을 지니고 있었지만, 항구를 끼고 있는 남촌 마을은 크나큰 변화의 물결이 일렁였다. 남쪽 해안가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기와집들이 늘비하고, 번듯하게 잘 닦인 신작로 양옆으로는 상점들과 근대식 건물들이 세워졌다. 은행, 병원, 학교, 교회, 관공서가 들어서면서 목포는‘도시’라는 이름을 걸치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조선 사람들은 유달산 비탈 아래, 짐승의 우리처럼 좁고 습한 판잣집을 억지로 이어 붙여 살았다. 문간은 천 조각 하나로 가리고, 천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삐걱대는 서까래뿐. 숨만 쉬어도 땀이 배어 나오는 그곳은 인간의 온기가 담기기엔 너무 메마르고, 너무도 비좁았다. 그 풍경은 마치 돼지우리를 닮아 있었다.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이를 감당하기에 이 지역의 물줄기는 터무니없이 인색했다. 목포는 본디 바다를 메워 만든 땅이 대부분이었다. 모래를 이고 선 땅은 물을 품을 줄 몰랐다.
만석이는 조상 대대로 북촌 마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농사꾼이었다. 농사일 말고는 손대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물을 품어가며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가서 해거름까지 허리를 굽혀 일하다 보면, 허리는 장작처럼 휘었고, 손바닥은 갈라진 논바닥처럼 거칠어졌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땀방울을 닦을 새도 없이 지은 농사였지만, 그 땅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절반은 지주집 마당에 먼저 들어갔고, 남은 것에서 일꾼들 품삯과 하루 세끼 밥값을 제하고 나면, 식구들이 겨우겨우 입에 풀칠할 만큼만 남았다.
그래도 만석은 아이들만은 배워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처럼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 윽박 받고,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밟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농사일로는 부족했다. 하루 종일 들에 나가서 모진 일을 하고 고달픈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희미한 등불 아래서 밤새 짚신도 삼고 새끼를 꼬았다. 아내 역시 아이들을 재워놓고 눈이 침침해지는 밤까지 반짇고리를 붙잡고 바느질로 품을 팔았다. 손끝은 터지고 눈은 쉬이 붓곤 했지만, 그 손으로라도 아이들 앞길을 조금이나마 덜 험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고, 손마디가 뒤틀어지도록 일했건만, 윤기가 번지르르 흐르는 흰쌀밥은 늘 그림의 떡이었다. 만석이 가을걷이를 끝내고 때때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기 위해 남촌 항구를 지날 때면, 산더미처럼 쌓여 하얀 천을 덮고 배에 실리기를 기다리는 쌀 포대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얀 포대기 위엔 일본어로 쓰인 까만 글씨가 큼직하게 찍혀 있었고, 부두에는 헌 옷차림의 조선인 짐꾼들이 그 무게를 등에 지고 헉헉대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 땅에서 자란 곡식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조선 사람의 몫’은 없었다. 그런 쌀 포대들을 보고 있노라면 목구멍에 돌멩이 하나가 꿍꿍 박히는 것 같았다. 속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응어리져 묵직해진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분노는 말로 뱉지 못하고 늘 목구멍에 걸려있었지만, 그저 두 주먹을 말없이 꽉 진 채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그런 만석에게 있어 올해 가뭄은 삶 전체를 송두리째 휘몰아갈 만큼 끔찍하고 두려운 재앙이었다. 사람들의 숨결마저 말려버릴 듯, 지독하고도 잔인하게 마을을 조여왔다. 이제 마을의 공동 우물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집 당 하루에 세 동이씩 길어갈 수 있던 물은 어느새 두 동이로 줄었다. 하루하루가 고된 날이었다. 농사는 아예 포기한 지 오래였고, 씻는 일은 커녕 먹는 물도 여의치가 않다 보니 동네 여기저기 울음 섞인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구정물까지 모두 받아서 빨래를 하고 가축에게 먹이다 보니, 남자들과 아이들은 거의 다 웃통을 벗고 살 지경이었다.
말라붙은 대지 위에, 여름 햇살을 맞으며 저마다 고개를 떨구고 기도를 드려도 식민지 백성의 허리처럼 구부러진 어두운 그림자만 길게 드리울 뿐이었다. 하늘은 이 땅 위에서 애써 살아보려는 이들의 기도를 모르는 듯 그저 뜨겁고, 묵묵했다. 사람들의 눈동자엔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무거운 회색빛 체념만이 담겨 있었다.
“저기..복순이 아버지, 오늘은 일당을 준다고 합디까?”
채근하는 듯한 아내의 물음에 만석은 숟가락을 든 손을 멈추고, 밥풀을 씹다 말고 눈길을 피했다.
“아그들 학교에 밀린 월사금은 고사하고 쌀 값이라도 벌어와야 먹고 살거 아니요?”
아내의 목소리는 메마르고 애가 탔다.
“아, 긍께 작업반장이 오늘은 꼭 준다고 혔어!”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왠지 자신이 없는 만석은 밥숟갈을 툭 놓고 바짓단을 털며 집을 나선다. 입안에 미처 씹지 못한 밥 알 몇 알이 그대로 남아, 뒷맛이 쓰다.
여름 햇살은 화염에 싸인 듯 들판을 달달 볶고 있었다. 메마른 논은 벌겋게 갈라진 살결을 드러낸 채 이미 숨을 멈춘 지 오래였다.
만석은 쟁기를 놓은 손으로 남촌 항구 부두에 나가 짐을 지기 시작했다. 부두에서는 배에서 내린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어깨에 굳은살이 박힌 채 팔을 뻗고, 허리를 구부리며 쉴새 없이 짐을 나르는 그는 이제 더 이상‘농사꾼 최만석’이 아니라 ‘짐꾼 최만석’이었다. 이름마저 무게에 눌려 구겨진 듯 했다. 그래도 하루 벌이라도 그나마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그는 묵묵히 몸을 놀렸다. 한낮의 불볕 속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고역이었다. 얼굴이며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이 흘러내릴 때마다 젖먹이 막내의 젖 빠는 소리가 귀에 맴도는 듯했다.
쉬면 굶는 삶.
그가 등에 짊어진 것은 짐짝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가 슬그머니 기세를 꺾고, 마을 골목골목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만석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어깨가 무너질 듯 짐을 날랐지만, 손에는 흙먼지만 남았다. 작업반장은 또 내일을 기약했다.
“내일은 꼭 절반이라도 쳐줄 테니 기다리소!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떼먹겄어!”
그 말을 믿는 게 어리석단 걸 알면서도, 만석은 쌀 한 되라도 팔고, 밀린 집세에 아이들 월사금까지도 어찌어찌 될 것 같은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내를 마주하는 일만큼은 그 어떤 품팔이보다 두려웠다.
“으흠... 나왔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엌 쪽을 향해 불러보았지만,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 열 살 난 장녀 복순이가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아버지께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부지 오셨어요. 더운디 많이 힘드셨죠?”
“느그 엄마 어디갔냐?”
“순동이가 젖달라고 하도 울어 싸서.. 외할머니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온대요.”
만석은 짜증이 났다.
“이 놈의 여편네가 말도 없이 가브렀네!”
“근데요, 아부지...엄마가 보리죽도 제때 못 묵어서 젖도 제대로 안 나오니 콩물이라도 좀 얻어 올 수 있을까 해서 간 건디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두 살 어린 남동생 금동이가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 외할머니 콩물은 뽀얀게 구수하고 걸죽해서 참말로 맛나지라이.
나도 따라가고 싶었는디...아버지도 좋아하믄서 그라요.”
시원한 콩물 한 그릇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아들을 본채만채하며, 만석은 땀에 절은 웃통을 벗어 툇마루 한 켠에 던져놓고 퉁퉁 부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밥상에는 보리밥 조금, 김치 두어 조각이 수줍게 놓여있었다. 만석은 밥 몇 숟가락을 꾸역꾸역 넘기다 말고 그대로 몸을 뉘었다. 지친 몸은 꾸깃꾸깃한 홑이불 위에 닿자마자 천근만근, 곧 깊은 잠으로 가라앉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듯이.
만석이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복순이는 남동생 금동이를 데리고 슬며시 방문을 나섰다. 고무신 끄는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움직였다. 복순이는 아버지가 깨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입술을 깨물며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순동이가 엄마 젖도 못 먹고 계속 울잖아...
쌀도 못 사먹는 우리가 물 사먹을 돈도 없고...
저기 남촌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좀 길어오자이.”
마을 안의 공동 우물들은 이미 말라붙어 바닥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저 언덕 넘어 남촌에는 복순이 외할머니가 틈만 나면 얘기하시던 우물이 있었다. 물 맛 좋고 양도 많아 용이 품은 수정 같은 우물이라고 해서‘용수정(龍水丼)’이라고 불렸다. 예전에는 누구든 물동이만 들고 가면 퍼올 수 있었던 곳.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일본인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그 땅을 차지한 뒤로는 그 우물 주변으로 조선인은 그림자 조차 들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상태가 되니 일본인들이 집 당 순번을 정해서 눈에 불을 켜고 밤마다 지키고 있었다.
"조선 사람이 그 우물가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눈을 부릅뜨고 뭐라 카던데..."
금동이의 목소리는 겁이 묻어 있었지만, 복순이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여름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흙길 위로 두 남매의 발걸음이 조용히 스쳤다.
한걸음, 또 한걸음.
달빛은 그들의 걸음 위에 고요히 넘쳐흘렀다.
우물가에 다다랐을 때 다행히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운 좋게 교대 시간이랑 맞았던 것 같았다.
“금동아, 너는 저쪽 골목 끝에 숨어 사람이 오는지 망 좀 봐라이.
누나가 딱 한 동이- 정말 딱 한 동이만 물을 길을 테니까 잠깐이면 돼.”
복순이는 동생을 향해 애써 웃어 보였지만, 가슴 한복판에서는 심장이 북처럼 요동쳤다.
이 밤, 이런 짓을 하다 들키면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이 되면서도,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칭얼대는 순동이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그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두 팔에 기운을 밀어 넣었다.
복순이는 조심스레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집어 던지고 물을 길었다. 깊은 우물 속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물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그 순간-
“거기, 누구냐?”
마치 뒷통수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일본인의 고함이 어둠을 찢고 튀어나왔다. 몸이 얼어붙은 복순이는 한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딱 한 동이면 된디... 이거면 된디...’
복순이는 물이 넘칠 듯한 물동이를 꼭 끌어안고 금동이와 같이 뛰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길, 바닥은 울퉁불퉁 했고, 기워 신고 또 기운 고무신은 발을 붙잡기에 너무 헐거웠다.
“누나! 빨리 달려! 잡히면 우리 죽어야!”
금동이의 숨이 넘어갈 듯 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금동아, 너 먼저 가! 누나는 괜찮어!”
복순이는 이러다가 둘 다 잡힐 것 같아서 동생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유인했다.
“이 년 봐라! 누구 맘대로 남의 우물에 손을 대! 거기서!”
벼락같은 유키코의 외침이 공기마저 찢어놓았다.
그 순간, 복순이 발이 그만 돌 틈에 걸려 고무신 한 짝이 속절없이 벗겨지고 말았다.
‘저 고무신...작년에 아버지가 내 생일이라고 엄마한테 한 소리 들어가며 큰 맘 먹고 사주신 건디...’
그녀가 벗겨진 고무신 때문에 주춤하는 사이 매서운 낚싯줄처럼 유키코가 그녀의 머리채를 확 낚아챘다. 머리가 휙 젖혀지며 시야가 흐트러졌고 달리며 이미 반쯤 쏟아버린 물동이의 물이 출렁이며 흥청거렸다. 복순이는 간신히 품에 안은 물동이를 꽉 끌어안았다. 남은 물이라도 지키겠다는 듯이...
“이 도둑년이 어디서 감히 남의 물을 훔쳐?
다시는 못 오게 다리몽둥이를 확 분질러 놔야겠군.”
앙칼지게 쏘아 보는 유키코의 눈빛이 서늘했다.
복순이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다.
학교에서 배운 일본말로 복순이는 유키코에게 사정했다.
“제발요..한번 만 봐주세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참말이에요...”
복순이는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며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바람 한 줌에도 쓰러질 듯, 한 줄기 갈대처럼 부들부들 온몸이 떨려왔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몽둥이가 그녀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다. 눈앞이 번쩍! 섬광이 번개처럼 스치고 머릿속에 아지랑이가 일더니 이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무너졌고, 동시에 생명수처럼 들고 있던 물동이가 넘어져 바닥으로 쏟아졌다. 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는 끈적함과 비릿함이 공기 중에 퍼져나갔다.
“여보! 아무리 그래도 아직 어린 애 같은데 이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유키코가 옆에서 같이 우물을 지키던 남편 나까무라를 향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까무라는 싸늘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이 정도로 되게 혼을 내야 두 번 다시 저 벌레 같은 조선놈들이 여긴 얼씬도 못하지 않겠소?
오늘은 그만 들어갑시다. 더는 물 훔치러 오는 놈은 없을 테니까.”
일본인 부부는 그렇게 처참하게 쓰러진 복순이를 내버려두고 자리를 떠났다.
만석은 깊은 밤,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에 눈을 떴다. 주변을 더듬어보니 옆에서 곤히 자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 놈들이 어디를 간 거여....’
왠지 모를 불암감이 가슴 한쪽을 조여왔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그를 불렀다. 금동이였다.
“아부지! 아부지!”
만석이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선 금동이의 얼굴이 달빛에 떠올랐다.
“아니, 이놈아, 이 한밤중에 어딜 갔다 오는 거여?
느그 누나는? 누나는 어딨어?”
금동이는 입술을 달달 떨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부지...누나가...누나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금동이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온 듯, 그의 짚신은 너덜너덜하게 해졌고, 엄지발가락이 삐죽 나올 만큼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순간 만석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듯, 눈앞이 아찔했다.
“뭔일이여? 정신 차리고 말을 제대로 해봐야!”
만석은 답답함에 금동이를 다그쳤다.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금동이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더듬었다.
“그그..그게요... 누나랑 남촌 우물에서 물을 좀 길러올라다가...
근데 일본놈들이 쫓아와서...누나가 그 놈들한테 붙잡혔을 것 같은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겄어라. 저는 겁나서 도망쳐 오느라 제대로 못봐서...”
말끝을 흐리는 금동이의 눈동자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만석은 더 묻지도 않고 아들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얼른 느그 누나한테 가보자.”
그의 머릿속은 온통 복순이 생각으로 뒤엉켜 가슴이 조여 왔다.
‘아이고..우리 복순이가..어찌된 일이다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발목을 잡아 당기는 듯, 가는 길은 달리면 달릴수록 더 멀어지는 듯 했다. 한 여름밤의 찜통 같은 더위는 숨통마저 조여왔고, 후텁지근한 습기가 온몸에 흐르는 땀과 뒤엉켜 끈적한 절망이 되어 그를 짓눌렀다. 발바닥의 감각은 없어지고, 시야는 점점 흐려져서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복순이를 찾아야 했다.
용수정 우물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스름한 길바닥 한복판에 검은 형체 하나가 어른거렸다. 만석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복순이...?”
직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복순이가 쓰러져 있었다.
하얀 적삼은 뒤통수에서 흘러내린 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옆으로 넘어진 물동이는 물이 반도 남지 않은 채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만석은 복순이를 와락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절규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슴을 갈기갈기 찢듯이 하늘로 울려 퍼졌다.
“복순아! 아이고, 복순아!
정신 좀 차려봐라이.
아가야, 제발 눈 좀 떠봐야! 제발 좀...!”
복순이를 애타게 부르는 만석의 울림이 하늘에 닿았을까?
그 순간,
“우르릉 — 쾅!!”
하늘이 비로소 울분을 토해냈다.
한 방울, 또 한방울...
거미줄처럼 갈라진 논바닥 위로, 숨죽인 나뭇잎 위로,
비쩍 말라버린 우물의 돌 틈 사이로
생명의 물방울이 촘촘하게, 그리고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만석은 복순이를 들쳐 업고 미친 듯이 뛰었다. 발밑은 진창처럼 질척였고, 헛디딜 때마다 진흙이 튀어 올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휘청거려도 두 팔에 매달린 복순이의 체온이 점점 식어가는 게 느껴질수록 심장은 미친 듯이 고동쳤다.
입술은 말라붙고, 목은 타들어갔지만,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살아야 혀야.. 무조건 살아야 혀. 제발.. 복순아 살아다오.
너를 잃고 이 아비는 못 산다..
하느님...하느님이시여..
우리 딸 좀 살려주시오...제발 살려만 주시오...”
그 목소리는 간절함을 넘어 하늘을 붙잡고 울부짖는 듯 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도는 절망 속에서 마지막 남은 숨 한 자락까지 쥐어짜는 소리였다.
그 뒤를, 금동이도 헐떡이며 따라 달렸다. 작은 두 팔에 꼭 껴안은 건, 누나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고무신이었다. 세 사람 모두 비에 흠뻑 젖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비였건만..그 순간, 어느 누구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빗줄기는 생명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한 아버지의 절규와, 한 동생의 두려움, 그리고 한 소녀의 희미해져가는 숨결을 함께 껴안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장대같은 빗줄기를 뚫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땀으로 얼룩진 옷자락처럼 짠내음 풍기는 바닷 바람을 맞으며 달려온 길이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만석은 복순이를 들쳐 업은 채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는 병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본인이 운영하지만, 그나마 이 지역에서는 입원실과 수술실도 있고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어 밤에도 운영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은 이미 땀과 비로, 그리고 흙탕물로 얼룩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병원 문턱 앞에서 그는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하늘이 노랗게 번지고, 땅이 빙그르 돌았다. 온몸이 무너지는 듯한 탈진 상태였지만 그는 쓰러질 수 없었다. 복순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다시 일으켰다.
“아이고..살려주시오...제발....우리 딸 좀 살려주시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온 간호복 차림의 일본 여자가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뒤이어 흰 가운을 입은 일본인 의사가 나왔다.
“오이! 나니 시떼루노다! 고코와 닛폰진다케노 병원이닷!
(야! 뭐 하는 거야! 여기는 일본인만을 위한 병원이야!)”
그는 일본어로 거칠게 쏘아붙이며 만석이를 내쫓았다.
만석은 고꾸라지듯 무릎을 꿇고, 복순이를 들어 보이며 울부짖었다.
“우리 딸이요. 죽어가고 있소. 제발 살려주소! 살려주소!!”
하지만 의사는 새벽에 소동을 일으킨 게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기며 손사래를 쳤다.
병원 입구에 붉은 글씨로 써 붙여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인 출입 금지-외래진료 불허”
간호사는 코끝을 찡긋하며 손으로 병원 밖을 가리켰다.
만석은 그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머리는 땅에 닿을 듯 수그러졌고, 입에선 꺽꺽 숨이 터졌다.
“이 썩을 놈의 세상..이래도 되는 것이여..
사람 목숨보다 뭣이 더 중한디? 뭣이 더 중하냐고!!”
만석의 외침은 찢어진 천처럼 빗 속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러나 우뚝 선 병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철문 너머, 희미하게 번지는 불빛은 차디찬 무심함, 그 뿐이었다.
그 순간, 복순이의 입에서 짧은 숨이 흐느적 나왔다.
만석은 다시 정신을 붙잡고 복순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병원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승의 문이 닫히는 것만 같았다.
만석은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며 속삭이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복순아! 정신차려봐라이...복순아...아가야..우리 딸아..”
그러나 복순이는 마지막 숨을 고르더니 이내 조용히 멈췄다. 뼈만 남아 앙상한 팔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무거운 이별이었다.
“안된다...복순아! 이렇게 가면 어쩐다냐...
이 못난 애비를 둬서 맘껏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느라 지 몸 돌봄 틈도 없이 살더만..
이라고 실없이 가불면, 나는 어떻게 산다냐...
제발..눈떠라..아가야..우리 착하고 예쁜 딸아...”
만석의 손이 복순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떨렸다.
그의 뒤에서 넋을 놓고 있던 금동이는 복순이의 고무신을 품에 꼭 안은 채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누나..안돼야...누나!
누나 없이 나는 어찌 살라고야..내가.. 내가 그때 누나를 두고 와서....
끝까지 같이 있었어야 했는디...
내가... 죽일 놈이여..누나, 제발 좀 눈 떠봐야...한번 만...제발!”
금동이의 울음은 어린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땅바닥을 때렸다.
비는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만석과 금동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뒤흔들 듯 사방으로 퍼졌지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대답하지 않았다.
딸 아이의 허망한 죽음 앞에 만석은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복순이를 두 팔에 고이 안고, 그는 떨리는 다리로 목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경찰서로 향했다. 아직 따뜻한 체온이 조금 남은 듯했지만, 그건 만석의 체온이 스며든 것일 뿐, 복순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불과 해 질 무렵만 해도, 복순이는 생글거리며 동생과 놀고 있었다.
어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고, 식사 후엔 그릇을 조용히 치우던 아이,
찡얼거리는 순동이를 업고는 등을 토닥이며, 제 몸보다 동생을 더 챙기던 아이,
금동이 옆에 앉아 공부를 봐주며, 틀려도 나무라지 않고 격려해 주던 아이,
월사금을 제때 못 내서 학교에 못가는 날에도,
“괜찮허요, 아부지. 똑똑한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하겄구만요.”
하고 씩 웃으며 오히려 아버지를 안심시키던 아이였다.
그 모든 모습이- 그날 밤을 끝으로, 다 끝났다. 그 환한 얼굴도, 다정한 말투도, 모두 마지막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그 애가 왜, 어찌해서 이렇게 됐는지, 만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물 한 동이 뜨러 간 것뿐이었다. 그 물조차-조선 땅에서 솟은 물 아닌가.
만석은 그날 새벽, 피가 맺힌 입술을 깨물고 복순이를 안은 채 다리를 질질 끌며 골목을, 언덕을, 이 마을을 헤매듯 걸었다.
‘이 땅은 누구를 위한 땅인가?’
‘이 들녘은 누구의 것이며, 그 곡식은 누구의 배를 채우는가?’
‘왜 내 자식은 물 한 동이 때문에 쓰러져야 하는가?’
‘우리가 겪는 이 피맺힌 고통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그의 가슴을 찔렀다. 심장이 쪼개지는 듯 했다.
‘내 아그들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살아남는 게 고통인 시대.
그는 더 이상 딸을 안고 있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비명을 끌어안고 있었다.
밤새 퍼붓던 장대비는 어느새 가늘어졌고, 바닥은 눅눅했고, 새벽 안개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동이 틀 무렵, 그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계단을 기어오르듯 올랐다.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고통을 꾹 참고,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며 드디어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남은 어둠을 밀어내는 가운데, 그는 천천히 입구로 들어섰다. 경찰서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경비를 서고 있던 일본 순사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순사의 눈이 번득였고, 곧 총구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소코니 이루노와 다레다?(거기, 누구냐?)”
순사는 복순이를 안고 있는 만석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만석은 입술이 달라붙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내뱉었다.
“우리 딸..억울함 좀 풀어주시오..아무 죄도 없는 아인디, 이라고 죽을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일본 순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눈빛엔 연민도,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게 싫다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이마와 킨무지칸쟈 나이카라, 카에레!(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니, 돌아가라!)”
그는 고함처럼 내뱉고는 만석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표정은 싸늘했고, 차가운 눈동자를 굴리며 만석의 등을 떠밀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경찰의 태도에 만석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복순이의 머리칼이 무릎 위로 흘러내렸고, 한 줄기 새벽 바람이 그 갸냘픈 머리카락을 쓰다듬 듯 스치고 지나갔다.
경찰서 벽에 크게 내걸린 일장기만이 바람에 퍼덕이며,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롱하듯 무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만석의 눈은 붉게 충혈됐고, 가슴 속 깊이 끓어오르는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밤새 내리던 빗줄기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길바닥에 고인 웅덩이엔 새파란 하늘이 고스란히 비쳤고, 나뭇잎 끝엔 영롱한 물방울이 매달려 반짝였다. 지붕마다 흘러내린 빗물은 마당을 따라 졸졸 흘렀고, 닭 한 마리가 날갯죽지를 털며 경쾌하게 울었다. 하늘은 맑디맑았다. 비에 씻긴 공기는 유난히 상쾌했고, 햇살은 따스하게 들판을 감싸 안았다.
사람들은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하느님이 불쌍한 우리 조선 사람 살려주신 거제잉...”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두 손을 모은 노인 한 분이 거리에 나와 중얼거렸다.
하지만 만석은 달랐다.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
그는 홀로 죽어있었다.
허망하게, 너무 쉽게 스러져버린 어린 딸아이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슴속에서 뾰족한 가시들이 쿡쿡 찌르며 고통을 주었다. 눈물은 말라붙지 않았다. 울다 지쳐도,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변의 생기있고 맑은 풍경이 오히려 독처럼 그의 가슴에 퍼졌다. 햇살의 따스함은 복순이의 싸늘하게 식은 손끝을 녹여주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데,
그의 시간만 복순이가 마지막 숨을 거둔 그 순간에 멈춰 버렸다.
사람들은 웃고, 감사하고, 안도했지만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캄캄하고, 어두웠다.
‘이 망할 놈의 세상!
우리 딸 하나 살리지 못하는 세상이 무슨 세상이여...’
비는 말라버린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가득 채웠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구멍엔 무엇 하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뿐이었다.
복순이를 묻은 다음날 새벽, 만석은 삐끄덕 거리는 창고 문을 열어 먼지가 켜켜이 쌓인 선반을 뒤져 조용히 낫 한 자루를 꺼냈다. 날은 오래 쉬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웠다. 만석은 그것을 낡은 헝겊에 싸서 가슴팍 깊숙이 눌러 넣었다.
그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복순이가 쓰러졌던 남촌 우물가를 향해.
한 걸음, 또 한걸음.
가슴 속에 품은 낫의 시퍼런 서슬이 한줄기 햇빛 아래 번들거리며, 고요히 날을 세웠다.
그날 만석의 눈빛은, 그 어느때 보다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더 이상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묵힌 분노처럼, 땅속에 묻은 씨앗 하나가 조용히 틔우는 싹처럼,
너무 조용해서, 더 깊었다.